한겨울 속에 한랭한 공기와 칼바람이 목덜미 옷깃 속으로 파고들어 한기와 추위를 더욱 느껴 몸을 움츠러들게 만들고 있다.
석양으로 향하는 공원의 숲에는 지는 해가 아쉬운지 한줄기 햇살을 붙잡아 놓았고, 그 햇살은 지난 가을 찬란했던 시절을 보냈을 몇 잎 안남아 나뭇가지에 매달려 찬바람에 시달리고 있는 단풍잎을 비추고 있다. 잎이 다 떨어져 앙상하고 쓸쓸하게 덩그러니 비어있는 나목들이 늘어선 숲, 아무런 유별난 색깔도 남아있지 않은 숲에서 지난가을의 흔적을 본다는 것, 청명한 하늘의 빛을 받아 화사하고 화려했던 색색의 고왔던 단풍들의 모습은 어느덧 사라지고 앙상하고 가련스럽게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내맡기고 이리저리 휘날리는 그 모습이 너무나 불쌍하고 처량하게 보인다.
우리 인간들도 젊고 풍성한 한때를 저렇게 풍요롭고 화려하게 구가하고 누리다가 나이가 들어 인생 말년이 되면 저 나뭇잎이나 나목같은 신세로 전락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에 잠기게 한다. 자연의 순환은 저렇게 가고 봄은 또 그렇게 오는가 싶다.
겨울의 숲은 하늘을 가리지 않아서 좋다. 나뭇잎을 다 떨구어 내어 이제는 온통 가리지 않아 좋은 숲, 자기의 속내를 보여주는 숲, 핏줄 같은 자신의 뼈대를 가감 없이 보여주는 나무, 사람도 저렇게 자기의 속내를 숨김없이 꾸미지 않고 보여줄 수 있다면 참으로 좋겠다.
찬란했던 여름날의 수액이 말라 비틀어져 죽은 가지들은 마른 잎과 함께 한겨울의 눈바람을 맞으며 아직도 둥지에 매달려있었다. 우리가 세상을 떠나가야만 하듯이 봄에 다시 생성될 수없는 죽어가는 생명체들의 삶은 우리들의 생과 같아보였다. 그리고 그 밖의 다시 소생하는 것들은 돌아올 봄의 숲속에 기쁨과 환희를 가져올 것이며 죽은 듯 숨을 죽이고 있던 숲의 생물은 다시 깨어나서 대지에 힘찬 기운을 불러올 것이다. 그러나 숲의 모든 것들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사람보다 더욱 값진 일생을 살고 있으므로 그에 비하여 사람의 한세상은 덧없다는 생각을 하였다.
봄에 피어나는 그 어떤 작은 풀잎 하나라도 어느 한순간에 불쑥 돋아나올 수는 없는 법이다. 엄동설한 속 혹한의 눈바람과 겨울의 추위를 참고 견디고 이기며 오랜 기다림과의 대응 끝에 미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 결과 철갑같이 얼었던 땅과 두터운 얼음장을 밀어내고 마침내 노릇한 새싹을 틔운다. 하지만 물러설 줄 모르고 혹한이 계속 밀어닥칠 땐 지상이나 지하의 어떤 생명도 한때 절망과 좌절감에 사로잡힌다.
이러한 시련과 역경의 악조건 속에서도 모두는 현실을 굳건히 버티며 극복한 결과를 나타낸다. 삼한(三寒)도 결국 냉이이파리하나를 이겨내지 못한다. 곧 입춘이 올 것이라는 것을 모든 생물들은 감지하고 있다.(올해는 2월4일이 입춘이었지만) 그러다가 오랜 인내와 기다림 끝에 마침내 움직일만한 기후조건에 다다랐을 때 비록 연약하지만 조그만 움을 살프시 펴며 지상 밖으로 뾰족이 내미는 것이다. 생존에 대한 무한의 굳은 의지와 끈질긴 정신을 우리는 이러한 식물들의 탄생과정에서 터득하게 되고 배우게 된다. 극한상황을 이겨내고 견디며 눈 덮였던 겨울 숲에서 나타나는 봄이 그래서 아름다운 것이다. 우리들의 삶도 마찬가지라고 생각이 든다.
겨울의 한낮, 한적한 숲속에서 홀로 하늘을 본다. 성긴 나뭇가지사이로 그물처럼 드리워진 시퍼런 하늘이 서늘하고 차갑게 느껴진다. 매섭고 차가운 바람이 이어지는 겨울하늘은 금방이라도 눈을 쏟아낼 듯 잿빛이었다가 청명한 파란 빛깔로 뒤바뀌는 변화무쌍하기만하다. 고즈넉한 겨울숲속에서 2월 달이 속절없이 흘러가고 있다. 헐벗은 나무들에서 세상의 이치를 살펴본다. 늦가을 떨켜를 준비하는 나무들은 제 스스로 살아가는 일에만 골몰하지는 않는다. 낙엽이 질 무렵 잎자루와 가지가 붙은 곳에 떨켜라는 세포층을 만드는 나무들은 여름내 부드러웠던 제 스스로의 몸을 경직시킨다. 수분이 통하지 못하게 하여 얼지 못하게 하고 잎새가 떨어진 상청의 자리를 지키려는 것이다. 만약에 나무들이 푸르던 잎을 떠나보내지 않고 무성한 상태로 겨울을 맞는다면 우리의 겨울은 훨씬 더 모질 것이다. 이리저리 제멋대로 불어 젖히는 설한풍에 견디지 못해 흐느끼듯 마구 흔들리는 무성한 나무를 볼 때마다 사람들의 추위에 대한 사무침은 뼛속까지 치달아 더 힘겨운 겨울을 보낼 것이다.
한 몸이던 나뭇잎을 속절없이 떠나보내고 맨가지로 북풍한설을 맞는 나무들은 어쩌면 제 몸 구석구석 바람을 스쳐 지나가게 하며 그리하여 흔들리지 않는 몸으로 휘날리거나 떨리는 모습을 감추는 겨울의 또 다른 이미지이기도하다. 그런 나무들에서 사람들은 그만큼의 떨림을 덜 느끼게 되는 그런 겨울이다.
새해가 되었지만 올해에는 참으로 많은 일들이 거듭되고 있다. 간혹 어떤 사람들은 작년한해에 이어 금년에도 일 년 내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거라고 여길 만큼 물질과 재정적 여유를 누리며 풍요롭게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우리이웃들은 노상 불안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청년실업이거나 미처 준비하지 못한 채 궁핍한손으로 맞아야하는 노년의 서러움, 그리고 또 어떤 이들은 아직도 창창한 세월과 열정에도 직장에서 쫓겨나야하는 서러움에 떨리는 새해를 근심으로 채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새해를 맞고 나서도 세상에 넘쳐나는 고통 받는 사람들은 그저 아무런 손길을 전할 엄두도 못한 채 생각만하고 있다. 세상에는 나를 비롯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고통을 모르는체하면서 외면하고 살고 있는지……..삭풍이 몰아치는 겨울 숲에서면 몸이 먼저 반응하여서 움츠러들게 된다. 그럼에도 떨리거나 흔들리지 않는 나무들의 천연함에서 우리는 어쩌면 깃발의 힘찬 나부낌을 기다리는 줄도 모른다. 나무의 연연함을 사람들이 미치지 못하니, 아무것도 없이 텅빈듯한 겨울 숲, 그러나 숲은 충만하다. 속내를 다보여주어도 부끄럽지 않은 숲, 나도 내 속내를 다보여주어도 부끄럽지 않은 삶을 추구하며 살아야겠다. 올해에는 작년보다 조금 덜 부끄러운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항상 겸손하게 나무를 닮으며 살아가자.

myongyul@gmail.com  <1011 / 0209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