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나의고향 충청도 (멍청도, 핫바지)

<칼럼리스트 / 탬파거주>
충효와 충절의 고향인 충청도가 어느 때부터인가 충청도 핫바지라는 서식어가 붙어 불려지는 이유가, 지금 생각해보면 특정 정당의 정치놀음과 정권을 연장하기위하여 권모술수를 교묘히 이용해 만들어진 것 같다. 아울러 흔히 한국사회에서 충청도사람을 일컬어 행동이 느리고 말(언어)조차 느린 만년 느림보의 상징인물들로 표현들을 해왔다. 그러나 느릿하고 엉뚱한듯하지만 결코 녹록치 않은 것이 충청도사람들의 기질이다. 여기에 그 기질을 비유한 우스갯소리를 소개해드리겠다.
1)서울사람이 차를 몰고 충청북도 충주에 갔다가 앞서가던 충청도차가 너무 느릿느릿 가길래 신경질이 나서 경적을 울렸다. 그랬더니 사거리 신호등에 걸린 그 차에서 덩치가 큰 우람한 체격의 한 남자가 문을 열고 나와 서울차 손님 옆으로 다가와서는 손짓으로 운전석 창문을 내리라고 한다. 서울사람은 겁이 나서 공연히 경적을 울렸다가 흠씬 두들겨 맞는 것은 아닌가? 그랬더니 그 충청도 덩치 큰 사내가 느릿느릿 하는 말, “정히 그러케 바쁘믄 어저께 오지 그랬시유, 왜 사람을 놀래켜유” 하더란다.
또 하나 다른 이야기, 충청남도 공주에 사는 한 아주머니에게 입금을 해줄 일이 있어서 전화로 계좌번호를 물었다. 그런데 아줌마가 불러 주는 계좌번호가 이상하게 길었다.
29649632967296……..숫자가 너무 길다고 했더니 아줌마가 하는 말 “뭔 소리유? 네 개밖에 안
불렀는디유 그럼 다시 부를께유. 2구유 4구유 3이구유 7이구유….” 그 소리를 듣고 나는 미칠 뻔했다.
나의고향은 충청북도 음성땅 어느 시골마을이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바로 나의 옆에 있는 면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나는 이곳에서 태어나 중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유학을 왔다. 학교에 다니면서 충청도사투리가 몸에 배어 급우들이나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했을 때가 많았었다. 2~3년이지나 대학에 입학할 때는 거의 완벽할 정도로 서울말솜씨에 익숙해졌는데, 그러나 내가 이곳에 이민 와서 몇 십 년 동안 사는 동안 가끔씩 나도 모르게 충청도의 방언이 터져 나와 사람들을 웃기곤 했다. 특히 내가 10여 년 동안 한인낚시회와 산수회 회장을 역임하며 회원들을 이끌 때도 충청도의 사투리, 방언이 한두마디씩 튀어나와 회원들이 “충청도양반 회장님, 멍청도 회장님”하고 사랑스런 농담을 건넬 때 모두가 한바탕 웃음꽃을 피우곤 했었다. 최근에는 내가 적을 두고 다니는 교회의 H권사님께서는 나를 보고 멍청도 권사님, 충청도 양반회장님이라고 농담반 진담 반으로 나를 놀려주고 있다. 나는 나의고향 충청도를 떠나온 지 수십 년이 지났어도 고향의 숨결과 향토색이 물든 충청도의 방언(사투리)을 아직도 나에게서 털어내지 못하고 있는가보다.
한국의 ‘현대정치사’라는 책의 표지는 10명의 사진으로 장식되어있다. 그들은 임시정부에서 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최고 권력자들, 즉 김구, 이승만, 장면,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등이다. 여기에 이명박, 박근혜대통령을 추가하면 12명이 되는데 그중 애석하게도 충청도 사람은 한명도 없다. 관점을 바꿔서 이번에는 다른 이름을 나열해보자. 이상설, 신규식, 김좌진, 신채호, 이동녕, 윤봉길, 한용운, 박헌영, 유관순 등이다. 이분들은 하나같이 지순한 독립투사 및 지사들이다. 동시에 이분들 모두는 충청도사람들이기도하다. 이처럼 충청도에는 유달리 순도 높은 독립지사가 많다. 이점만으로도 충청도가 의기와 충절의 고향이라는 말은 충분히 타당해 보인다.
충청도 출신 대통령에는 유일하게 윤보선대통령이 있는데, 그분은 박정희군사정변의 제물이 되어 2등 공신에 머물게 되었다. 또한 김종필 전임총리도 만년2인자로 꼽히고, 이회창씨도 그렇고, 얼마 전 물러난 단명총리 이완구씨는 2인자총리이다. 정치적으로는 2인자는 되기 쉬워도 1인자는 쉽게 되지 못한다. 흔히들 충청도를 멍청도라고 부르는데 아마 그것은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여기도 아니고 저기도 아니고 무조건 흥흥하는 것 때문에 그런 것 같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자기만의 색깔이 없고 주관이 뚜렷하지 않아서 멍청도라고한것 같다. 한국에서 흔히들 지역별로 부르는 별칭이 있다. 서울 깍쟁이, 강원도 감자바위, 전라도 하와이, 경상도 보리문둥이 등으로 불리고 있다. 충청도 말이 많이 느리다는 인식은 팔도의 방언중 가장 압축율이 높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예를 들면 한국의 표준말~이 콩깍지가 깐 콩깍지인가 않깐 콩깍지인가? 충청도~깐겨? 안깐겨? 이것을 보고도 충청도사람 느리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대단히 잘못된 인식과 판단이다. 이러한 변명과 사실적인 설명을 내가 꼭 충청도가 고향이라서 즉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입장에서 하는 말은 아니다. 뭐든지 충청도사람이 느리다는 편견은 버리는 것이 좋다.
말은 느려도 동작은 빨러유 라는 말이 있듯이, 그 편견을 뒤집는 증거를 몇가지 제시해드리겠다. 멍청하고 느리다는 말은 충청도 사람이 똑똑하고 너무 빠르니까 질투(?)심에서 비롯된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다음은 어느 잡지의 우스갯소리에 실린 것을 인용해 보여드리는 것이다.
서울말, 겡상도말, 즌라도말, 멍청도말, 이렇게 각도의 말 빠르기를 간단하게 설명해 비교해드리겠다.
사례1) 서울말~돌아가셨읍니다. 겡상도~돌아가셨다 아임니꺼. 즌라도~죽어버렸어라. 멍청도~
갔슈.
사례2) 서울말~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겡상도~내좀 보이소. 즌라도~아따 잠간만 보더라고잉?. 멍청도~좀 봐유.
사례3) 서울말~어서 오십시오. 겡상도~퍼뜩 오이소. 즌라도~허벌나게 와버리랑께. 멍청도~빨랑와유.
사례4) 서울말~괜찮습니다. 겡상도~아니라예. 즌라도~됐어라. 멍청도(충청도)~됐슈.
사례5) 서울말~인생이 뭔지 이제 알어들었습니다. 겡상도~헹님, 이제겨우 인생을 알겠심더.즌라도~형님요 인생을 알게 해줘서 고마워버린당께. 멍청도~알었슈.
흔히들 말하기를 일부에서는 충청도는 멍청도가 아닌 양반의고장이라고 추켜세우는 말들을 자주한다. “엽기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조선시대에는 충청도가 지금의 서울과 적당한 거리에 있으면서, 평야도 널찍하여 물산이 풍부한 곳이었다고 한다. 거기에다 산세도 험하지 않아 서울의 똑똑한 양반들이 하나둘 내려와 살게 됨으로써 충청도는(양반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형성되었고, 여기서 충청도양반이라는 별칭이 생겨났다.
충청도로 내려와 사는 양반들은 완전히 낙향하기에는 서울에 미련이 남은 인물들인지라 서울과 적절한 연결고리를 가지면서도 화(禍)는 당하지 않고 후일을 기약하기위해서는 충청도가 안성맞춤이었던 것이다. 충청도특유의 느릿느릿하면서도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말투는, 조선시대의 살얼음판 같은 정국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에서 비롯되었다. 즉 벼슬에서는 물러났다고 하지만 그들은 잠재적 인력풀에 속해있었기 때문에 함부로 말을 내뱉었다가는 언제 어떻게 얽혀서 유배를 당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느릿느릿 말하는 동안에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말을 하더라도 뜬구름 잡는 듯한 선문답으로 좀처럼 자신의 생각을 밖으로 내보이지 않음으로써 가능한 한 설화(舌禍)를 피해갔다는 것이다.
이러한 양반들의 언어형태가 쌓이고 쌓여 충청도특유의 느린 사투리로 정착이 되었던 것이다. 일찍이 정도전이 충청도사람을 이성계에게 평하기를 청풍명월(淸風明月/맑은 바람속의 밝은 달처럼 부드럽고 고매하다)이라고 했듯이 구한말 이전부터 우리의 선조들은 느린 사투리와 환경이주는 여유로움을 대물림하였던 것 같다.
myongyul@gmail.com <1002 / 1202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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