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낙엽과 우리의 인생

<칼럼리스트 / 탬파거주>

어제는 온종일 늦가을비가 추적추적 소리를 내며 청승스럽게 내리더니, 몇잎 안남은 나뭇가지의 잎사귀들마저 바람과 함께 동패가 되어 매정하게 땅바닥위로 내동댕이치고 말았다. 떨어진 낙엽, 비에 젖어 땅위에 나뒹굴며 이리저리 짓밟히는 낙엽들이 불쌍해 보이기도 한다. 정처 없이 이 구석 저 구석 바람의 힘에 밀려 나뒹구는 낙엽을 보면서 때가되면 본질로 돌아가는 우리의 인생을 생각해보게 된다. 저렇게 속절없이 떨어져 비에 젖은 낙엽을 보니 서글픈 인생이 오버랩 되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문득 젖은 낙엽이란 생각에 씁쓸한 웃음이 입가에 맴돈다. 우리가 알다시피 젖은 낙엽은 길바닥에 눌러 붙어서 빗자루로 쓸어도, 바람이 불어도 그 바닥에서 잘 떨어지질 않는다. 치워 버리고 싶지만 쉽게 치어지지 않아 골칫거리다. 젖은 낙엽을 생각하니 어느 누가 은퇴한 노년의 남자를 가리켜 젖은 낙엽족(族)이라고 한말이 떠오른다. 젖은 낙엽족이란 은퇴한사람들을 말한다. 더 이상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는 노년의 남자를 통칭해서, 힘없고 능력 없는 황혼기에 접어든 남자들을 대부분 이렇게 부른다. 돈은 없고, 그렇다고 딱히 할 일조차 없는……아내가 밖으로 외출하러 나가려고 할 때마다 같이 붙어 나가겠다고 억지를 쓰며 눈총과 구박을 받고, 아내와 떨어지면 마치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이면체면 없이 아내 곁으로 착 달라붙는다. 제대로 노후준비도 못한 남자가 아내의 그늘로 파고들어 아내를 졸졸 따라다니니 아내로서도 미칠 일이다.
아무리 떨쳐내려 해도 절대로 떨어지지 않으려는 찰거머리 사촌 같은 집착력으로 아내를 성가시게 조르며 따라붙는다. 그러니 아내의 입장에서는 여간 부담스럽고 귀찮은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젊어서는 아내보기를 돌 같이하고 살다가 나이가 들어 의지력을 잃고 착 달라붙으니 매정하게 내밀칠 수도 없고 뜨거운 감자처럼 뱉을 수도, 삼킬 수도 없는 존재가 늙어서 돌아온 영감태기이다. 이제껏 혼자의생활에 익숙해진 아내의 입장에서는 정말로 버겁고 귀찮으며 멀리하기에는 너무나 가까운 당신이다.
여기에 덧붙여 우스갯소리가 요즘 시중에 나돌고 있다. 그중에서도, 동창회를 다녀온 아내의 이야기가 많이 회자된다. 어느 날 동창회에 다녀온 아내가 남편의 얼굴을 대하고 화를 낸다. 지레 겁을 먹은 남편이 당연히 돈이나 옷차림새나 귀금속걸이 등이 다른 친구동창들에게 뒤쳐져서 그럴 거라고 짐작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보 왜 그래? 무슨 일이 있었어?” 하고….. 그러자 아내가 소리를 버럭 지르며 하는 말이 “나만 남편이 살아 있잖아” 하더란다. 이걸 우스갯소리로 웃어넘기기에는 너무나 끔찍하고 서글픈 이야기다.
젊었을 때 가족을 위하여 뼈골 빠지게 열심히 일하고 직장에서 힘든 경쟁을 벌이며 최선을 다해 돈을 벌어서 처자식을 먹여 살렸는데 이제 나이 들어 늙어 은퇴하여 집에서 쉬다보니 경제력 잃고 능력 없고 근력조차 힘에 부치니 별 볼일 없는 존재가 되었다고 이렇게 괄시하며 살아있지 말라는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우스갯소리로 하고 있는 이 사회가 너무나 끔찍스럽고 무서우며 슬퍼진다. 비를 맞고 땅위에 쓸쓸히 나뒹구는 젖은 낙엽을 보니 애잔한 슬픔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세월의 순회에 순응하며 가을나뭇가지에서 떨어지지만 않았더라면 곱게 타오르는 아름다운 단풍이었을 것이다.
나의 어린 시절 고향마을 뒷산에서 떨어진 낙엽을 갈퀴로 긁어모으며 땔감으로 쓰이는 것을 보고 낙엽은 떨어져 죽어서도 사람들을 위하여 따듯함을 제공해주는 참으로 유익한 존재라고 생각을 했었다. 이효석의 ‘낙엽을태우면서’라는 수필에 나오는 것처럼 저렇게 떨어진 낙엽을 긁어모아 태우면 갓 볶아낸 커피냄새가 날 테니, 커피를 좋아하는 아내들은 떨어지는 낙엽을 앞 다투어 긁어모아 태우면서 커피 향을 음미할 줄도 모를 일이다. 흔히들 우리의 인생은 떨어져가는 낙엽과 비교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낙엽(나무)과 황혼(인생)이 혹여 다른 점이 있다면 나무는 영혼을 갖춘 인간이 되지 못하여 죽은 뒤에 다음에 태어날 새싹에 도움이 되는 거름이 될 것이고, 우리네 인생은 육신을 벗어버리고 영혼은 살아서 영생토록 살아생전의 업보에 따라 천당과 지옥에서 영원불멸의 존재로 살아간다는 점이 다르다고나 할까………..
우리들 인생은 나는 내가 어디에서오고 또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내가 세상에서 존재하는 이유와 어떠한 용도로 세상에서 쓰임 받고 있는지도 잘 모른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확실하게 아는 것 하나, 바로 그것은 나는 언젠가는 꼭 죽을 것이라는 거다. 그런데 내가 가장 모르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죽음이다. 우리네 인생은 오늘도 쉼 없이 어디론가 정처 없이 흘러가고 있다. 그리고 우리들은 언젠가는 낙엽처럼 떨어져갈 것이다. 계절의 가을이 오듯이 인생의 가을이 우리의 마음과 육체에도 물들어 오는 날이 있을 것이다. 낮이 가면 밤이 오는 것처럼 인생의 황혼이 우리를 덮어올 것이다.
고진감래(苦盡甘來), 이 뜻은 쓴 것이 다하면 단것이 온다는 뜻이다. 고진감래의 반대말로는 흥진비래(興盡悲來)가 있다. 즐거운 것이 다하면 슬픈 것이 온다는 뜻이다. 인생은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다는 표현이다. 떨어진 낙엽을 보면서 우리의 인생이 어떠한 존재라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지난 과거사를 상기해보면 우리는 얼마나 많이 다투기도 했고, 알게 모르게 남을 심판하고 정죄하며 살아왔는가……. 잘난 것이 무슨 소용이며 돈 많고 명예를 쌓았던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어차피 우리는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갈 것을…. 사람들은 인생을 어떻게 사는가를 논하지만 실상은 살았다는 그자체가 우리네 인생이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저렇게 제 할일을 다 하고 떨어져간 낙엽을 보며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살고 간 저들에게서 우리의 인생을 조금은 알 수 있는 것 같다.
낙엽을 바라보면서 나의 삶을 되돌아본다. 잘못된 내 습관과 욕심들, 그리고 생존경쟁속의 힘겨운 싸움, 이제는 마음을 비우고 겸손의 자리로 되돌아가고 싶다. 다시 돋아날 새싹을 위하여 자리를 비켜 온몸을 벗고 후손의 거름이 되는 낙엽처럼, 나 역시 희생의 거름으로 탄생되는 사랑 안에 이웃들과 나누며 삶의 안에 비움을 일깨워주고 다독여주는, 이 가을은 그렇게 끝마무리를 서두르며 저편으로 사라져 저물어간다. 우리네 인생처럼………  myongyul@gmail.com <1001 / 1125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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