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가을은 결실의 계절

<칼럼리스트 / 탬파거주>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고 사색의 계절이다. 그리고 가을은 떨어지는 낙엽하나에도 가슴이 젖어드는 시인의 계절이기도하다.
짙은 커피 향에 포옹된 추색(秋色)의 거리를 연인들이 손을 잡고 걷는 모습도 예쁘고, 팔짱을 끼고 걷는 노부부의 모습도 한결 아름답게 보이는 사랑과 낭만의 계절이 바로 지금 우리들을 품고 있는 가을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을은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라는 시구처럼, 한해의 풍성한 열매를 위해 여분의 힘을 모두 쏟아야할 전력투구의 계절이며 지나온 삶의 열매를 살피고 자신을 돌아보는 반성의 계절이기도하다. 독서의 계절, 문화의 계절, 축제의 계절, 여행의 계절 등등 가을만큼 다양한 수식어가 붙는 계절은 없는듯하다. 이모든 수식어의 밑바탕이 되는 명제는 누가 뭐래도 가을이 가진 풍요로움에서 찾아야할 것 같다.
결실의 계절 가을, 지난 계절 무던히도 많은 땀을 흘린 농부들은 일손의 댓가로 영근 황금빛 들판과 자연을 바라만보아도 저절로 배가 부른 마음이 생겨나는 계절이다. 모든 초목들은 초록빛의 옷을 갖가지 색깔로 채색을 하여 차려입고 산천 및 대자연은 그로인해 울긋불긋 단풍이 물든다. 그러한 단풍을 바라보며 겸손한자세로 삶의 소박한 진리를 느끼고 깨닫게 되기도 한다.
이 가을에는 자신의 미래도 좀 더 멀리 내다보게 되고 오늘의 내모습도 세심히 살펴보며 다른 이의 삶에 대한 관심도 더 갖게 된다. 파랗고 맑은 투명한 하늘을 보고 진실을 생각하며 나 자신이 좀 더 투명해지고 맑아지고 싶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이 가을이다. 가을이 되면 이렇게 생각이 깊어지고 우리는 그 생각의 틈새에서 우리의 마음도 한층 더 풍성해지고 여유로워진다. 그래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나의 인생궤도를 수정해 보기도 한다. 앞만 보고 부지런히 달려온 인생, 성공을 위한 부단한 몸부림이 아름답고 좋은 결실을 맺기 위하여 염원하고 노력한 그 댓가가 이 가을에는 좋은 열매로 나타나기를 설레임과 부푼 마음으로 기대해본다. 그렇지만 우리들의 삶의 과정에서 성공만이 인생의 열매가 아니다.
실패도하고 좌절한 허비한 것만 같은 시간들도 모두다 우리들 인생의 열매인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 열매들이 열렸다 떨어진 자리….. 크고 아름다운 열매는 끝물에 열린 것뿐이다. 남자들에게 젊은 날은 성취에 대한 열망으로 살아가는 시기라면, 중년이후는 앞으로의 인생에 남겨질 열매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시기이다. 모든 남자들은 관상목이 되기보다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유실수가 되기를 희망하고 노력한다.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이 나를 인정하고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남자들은 행복해한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어떠한 일이든지 갑자기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한 알의 과일이나 한 송이의 꽃이 피어나는 과정도 그렇지가 않다. 하물며 이렇게 나무의 열매조차 금방 맺혀지지 않는데 우리의 인생열매를 노력도 하지 않고 조급하게 결실이 맺혀지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너무나 잘못된 일이다.
호주 시드니에 사는 어느 한국인동포가 고국에 왔다가 봄날에 노오랗고 아름답게 피어난 개나리꽃에 반해 그 가지를 꺾어다가 호주 자기의 집 마당에 옮겨 심었다. 이듬해 봄이 되었다. 맑은 공기와 따사한 햇볕 덕에 가지와 잎은 한국에서보다 무성하였지만 꽃은 피지 않았다. 첫해라서 그런가보다 여겼지만 2년째에도 3년째가 되어도 꽃은 피어나지 않았다. 이어 4~5년이 지났는데도 꽃은 여전히 피어나지 않았다.
이렇게 되자 그는 비로소 뒤늦게 모든 것을 깨달았다. 한국처럼 눈보라치고 살을 외는 듯한 춥고 얼음이 어는 혹한의 겨울이 없는 호주에서는 개나리꽃이 아예 피지 않는 것이었다. 저온을 거쳐야만 꽃이 피는 것을 전문용어로 춘화현상(Vernalization)이라하는데 튤립, 히야신스, 백합, 라일락, 철쭉, 진달래꽃등이 모두 이에 속한다고 한다.
우리들 인생도 춘화현상의 꽃과 같다. 눈부신 인생의 꽃은 인생의 혹한을 거친 뒤에야 꽃망울이 맺히는 법이다. 꽃을 피워낸 후 꽃샘 추위와 세찬 비바람, 폭우, 가뭄, 각종 병충해 등등의 자연재해와 싸워서 꿋꿋이 견디고 이겨낸 후에 야만 먹음직하고 달콤한 과일의 결실을 맺는 것이다. 이와 같은 비교의 이야기로, 봄에 뿌리는 봄보리는 가을에 파종하여 겨울을 나는 가을보리의 수확량보다 훨씬 적게 결실을 맺는다. 나는 시골에서 자라면서 농사를 짓는 아버지가 봄보리와 가을보리를 씨 뿌리고 거두는 과정에서 직접목격하고 관찰한 바를 이 자리에 옮긴 것이다. 우리들 인생의 열매도 마치 가을보리와 같아서 인생겨울을 거치면서 그 열매는 더욱 풍성해지고 견실해진다. 매년 봄이 되면 예쁘고 화사한꽃들이 각종나무와 풀들에서 수없이 아름답게 피어난다. 그렇게 피어난 꽃도 잠시로 며칠 안가서 그 꽃은 지고 만다. 아름다운 꽃을 보지 못하는 아쉬움, 그러나 우리는 꽃을 볼 수 없다고 하여 슬픔을 느끼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 꽃이 지고나면 새로운 열매가 맺혀지리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인생도 이처럼 지는 것과 같은 과정을 통하여 열매가 맺혀진다.
그때 그 순간, 그 세월이 얼마나 힘들고 어렵고 지치는지, 앞이 보이지 않는 것과 같은 역경과 고난이 있었지만 그것 때문에 슬퍼하진 않는다. 왜냐하면 시간을 통해서 맺혀진 인생의 열매가 우리의 인생을 더 아름답고 가치 있게 해줄 것을 알기 때문이기에………
꽃의 열매는 우리에게 상큼하고 향기롭고 달콤한 과실을 주고, 인생의 열매는 모든 사람에게 꿈과 희망뿐만 아니라 많은 유익과 삶의 보람을 가져다준다. 가난이 부요한 꿈을 키우고, 슬픔이 행복한 미래를 키우고, 탄압이 자유를 소망하게 한다. 그래서 인생의 열매가 많은 사람 곁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인생의 열매가 많은 사람은 나도 행복하지만 주위의 사람들도 행복하기 때문이다. myongyul@gmail.com <998/11032015>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