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위험한 도박을 하고 있는 교회들

최래원목사 / 올랜도 선한목자교회 담임
“ 그들이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그를 그곳에서 치시니 그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삼하6: 7)

웃사의 위험한 모험을 오늘날 교회들이 버젓이 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교회들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교회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행하는 것들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우리가 하는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서 그분이 원하시는 것이라고 말해주길 바라고 있을 것입니다.웃사의 위험한 도박에 교회들이 배팅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바알레 유다 땅 아비나답의 집에 있는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 성으로 옮겨오기를 너무나 소원했습니다. 그것은 충분히 다윗다운 생각입니다. 그 법궤가 어떤 것입니까? 천사들이 호위하는 지극히 높으신 영광가운데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와야겠다는 다윗의 마음은 너무나 귀한 것입니다.
그분의 임재가 자신과 함께 있다는 것은 자신의 정통성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고 왕국의 안녕과 평화 부강한 나라가 될 수 있는 기회이자, 예배자인 다윗에게는 그분의 임재를 매일 느끼며 드리는 예배만큼 비견할만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윗의 모든 의도는 전혀 나무랄 대 없이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방법이 틀렸습니다.
다윗은 법궤를 옮기는데 군사 삼만 명을 뽑습니다. 법궤를 실은 새 수레(금으로 된 수레)를 준비합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안전하고 편리하며, 가급적 빨리 모셔오고 싶어 했습니다.
교회가 저지르는 실수는 마음이 아니라 방법입니다. 마음은 누구 하나 나무랄 때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과 그분의 나라를 위하고, 성도들의 성숙을 위한 것들입니다. 그 마음을 누가 나무라겠습니까? 마음이 뒤틀렸거나, 그 동기가 잘못된 것이라며 그것은 정말 위험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마음을 항상 하나님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오게 하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의 방법을 따르지 않습니다. 자신의 방법, 교단의 방침, 교리 책을 따라 하나님을 옮겨오려고 합니다. 때론 목사들이나, 교회 목회 팀들이 고안해낸 금수레와 같이 번쩍이고, 광채가 나고 참으로 멋진 프로그램들, 계획들과 방법과 그 임재를 가져오기 위해 성대한 축제도 준비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이와 똑같다는 생각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한번도 하나님의 방법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 분의 방법은 너무 시대에 뒤떨어지고, 사람들의 호응을 얻어낼 수 없으면 자극적이지도 않습니다. 사람들이 오지도, 교회가 부흥되지도 못한 진부한 것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을 따르지 않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하나님의 방법에는 관심조차 없습니다. 그 대신 그 방법을 대처하는 새 수레들을 따릅니다. 여기저기 성장하는 교회의 프로그램, 방법, 전략을 쫓아 또 다른 새 수레를 바꿔서 하나님의 궤를 옮겨보려고 합니다. 성공을 쫓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새 수레의 소식만 들으면 돈이 얼마든 상관없이 궤를 옮기기 위해 배우고 익히고, 구입해 옵니다. 그렇게 구입해온 새 수레들이 벌써 헌 수레가 되어 교회 창고 안에서 폐기 처분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이 만든 성공적인 방식의 프로그램들을 가지고 그것이 하나님의 방식이고, 방법인 것처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착각하면서 그분의 교회를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새 수레를 가지고 운영합니다. 마치 그것은 그분의 임재를 사람의 방식을 통해 옮겨오려고 시도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그런 방법을 하나님께서 좋아하실 거라고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심각한 착오이자 실수입니다. “얼마의 돈이 들어도, 얼마나 많은 것들을 소모시킬지라도 하나님의 임재를 우리교회에 머무르게 하라” 혹 이런 특명을 받아 본 적이 있습니까? 목회자의 특명으로 교회는 수많은 돈을 들여 악기들, 연주자들, 찬양 사역자들, 설교자를 급 수입해 하나님의 궤 옮기는 일에 투입합니다. 그들이 마치 하나님의 임재를 교회로 옮겨 올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진 체 말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바로 위험한 웃사라는 사실을 아무도 모릅니다. 그들은 소위 자신들이 하나님의 진동을 손으로 잡아 보려고 시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준비한 새 수레의 덜컹거리는 시끄러운 소리에 질리셨습니다. 세상의 흔들림에 따라 그 궤가 영향을 받아야 하는 것에 짜증이 나셨습니다. 아무런 경외감도 없이 직업적인 찬양 꾼들의 시끄럽고, 의무적인 연주와 찬양 사역자들의 의기양양한 교만의 냄새에 구역질이 나신 것입니다. 그 소리들이 얼마나 거슬리셨고 짜증스러우셨으면 한 타작마당에서 소들을 움직이셨겠습니까? 멋진 프로그램, 청중을 압도하는 설교, 청중에게 감동을 주려는 찬양들로 치장된 교회 이것들은 마치 자신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이 땅에 오게 하기 위해 자신들이 그 분의 임재를 함부로 건드려도 될 것이라는 오만함이 하나님을 너무나 불쾌하게 만든 것 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가 자신들을 통해 오는 것처럼 기고만장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함부로 하나님 자신의 것에 손을 댑니다. 거룩에 손을 댑니다. 그분께 드려진 재물에 손을 댑니다. 그분의 사랑하는 아들과 딸들에게 손을 댑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아닌 자신의 임재를 사람들에게 오염시키고 있는 엄청난 죄를 그 법 궤 앞에서 자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지 않은 것은 다 죄입니다. 그것은 100% 인본주의 신앙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방법을 버립니다. 다윗은 회개합니다. “ 우리가 규례대로 그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라” 그리고 그분의 방법을 찾습니다. 아주 오래되고 한동안 아무도 행하지 않았던 그러나 그분이 명령하신 그분의 방법대로 그 궤를 메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선하고 좋은 의도를 가지고자 합니다. 하나님을 더 영광스럽게 하고 싶어합니다. 더 존귀하게 대접해드리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방식과, 그분이 말씀하신 방법을 찾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진 더 좋은 계획을 지지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하고 성결한 마음으로 따를 때 지지해 주십니다.
어떤 좋은 도구를 사용 한다고 해서 그분의 뜻을 더 빨리 이루시지 않습니다. 그건 순전히 우리의 착각, 자가당착일 뿐입니다. 그런 의도를 가진 웃사를 치십니다. 그 웃사의 생각과 계획을 찢어버리십니다. 우리가 우리 맘대로 하나님을 움직여 보려고 시도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방법은 번거롭고, 세련되지 않으며, 진부한 것일 수 있고,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도 하고,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우리가 해왔던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일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것이 하나님의 원하시는 그분을 위한 방법이라면 그것을 따라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는 웃사의 도박을 끊어 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방법을 따르는 것은 성공이 아니라 바로 그분의 임재 안에 살고자 하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입니다. <998/1103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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