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추석을 맞으며…… 고향생각

<칼럼리스트 / 탬파거주>
사람은 누구나 고향이 있다.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어린 시절의 추억이 함께한, 어머니의 품속 같은 따듯한 정이 느껴지는 곳이 우리들의 고향이다. 고향은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다. 고향이라는 말만 앞에 붙이면 갑자기 새로운 감정이 마음에 느껴온다. 고향 친구, 고향 산천, 고향 음식, 고향집, 고향 역, 고향의 풍경 등등 고향에 있는 것이면 모두가 아름답게만 느껴지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마음이다. 고향은 우리의 과거가 있는 곳이며 우리의 꿈이 있고 우리에겐 언젠가는 돌아가야 한다는 마음의 부채로 남아있는 곳이다.
이번 추석명절에도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고향에 다니러갈 것이다. 고향에 오는 사람, 고향에 가는 사람들은 모습만보아도 벌써 알 수가 있다. 고향에 가는 사람은 단순히 몸만 가는 것이 아니라 고향을 떠나서 이룬 모든 성공을 그 어깨에 메고 고향을 찾게 된다. 그래서 고향사람을 만나면 반갑고 성공하면 고향을 찾는다고 해서 금의환향(錦衣還鄕)이라는 말을 썼다. 명절은 성공의 경연장 같고 성공의 전시장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명절은 고향을 떠나 살았던 과거를 안고 고향에 모이는 절기이다. 어렵게 떠났던 고향 길을 개선장군처럼 들어서는 사람에게서 인생의 행복을 보게 되고, 반면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떠났던 사람이 실패의 부담을 안고 무겁게 고향집을 찾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인생은 고향을 노래해왔고 고향을 이야기해왔다. 고향노래가 사람들에게 많이 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고 고향의 이야기를 다룬 글들이 많은 사랑을 받는 까닭도 이 때문일 것이다.
옛날 중국 한나라의 유방과 초나라의 항우가 전쟁을 할 때였다. 유방이 항우의 군사 10만을 포위하고 있었다. 유방은 가을달밤에 자기의 군사들로 하여금 퉁소로 구슬픈 초나라의 가락을 불게 했다. 그러자 초나라군사들은 고향의 구슬픈 가락을 듣고 고향생각이나 향수병에 걸려 뿔뿔이 흩어져 고향으로 돌아가 버렸다. 퉁소가락으로 유방은 대승을 거두게 된 것이다. 고향이란 인간에게 이렇게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민족의 전통명절인 추석이 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아간다. 명절이 가까워지면 깊은 향수를 느끼기 때문이다. 고향은 어머니의 아늑한 품과 같고 동경의 대상으로 느껴지는 동심의 세계이다. 동물들에게도 고향을 향한 귀소 본능이 있다. 예를 들면 개는 아무리 먼길을 가서도 반드시 제집을 찾아온다.
그리고 비둘기역시 몇백 마일이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곧장 자기 고향을 향해 날아가고, 연어나 숭어는 산란을 위해 출생한 강으로 고향을 찾아 돌아온다. 우리는 연어의 회귀 본능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연어는 원래 민물에서 태어나 자란다. 그러나 얼마쯤 자란다음에는 반드시 바다로 내려가 산다. 바다에서 짜디짠 물을 먹고 그들의 뼈가 자라고 살이 자란다. 그들은 넓고 깊은바다를 마음껏 휘젓고 살아간다. 3~4년을 이렇게 잘 지내고 살고나면 산란할 때가 되어 반드시 본능적으로 자기의 본향인 민물가가 생각난다. 그래서 연어 떼들은 자기가 산란하고 태어난 강기슭으로 향한다. 원래 나이아가라폭포에서는 연어가 살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짓궂은 어류학자가 미시시피 강으로 산란하러 올라오는 연어를 잡아다가 나이아가라 폭포 위쪽에 산란하도록 여러 마리를 풀어놓았다.
이렇게 해서 치어가 태어났고 그치어들은 하류로 내려가 대서양으로 가서 자랐다. 어류학자의 관심은 대서양으로 간 그 연어의 치어들이 과연 나이아가라 폭포 쪽으로 올라오느냐는 것이었다.
즉 연어의 회귀본능이 얼마만큼 인가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몇 년후 그 연어들은 산란의 때가 되자 어김없이 나이아가라 폭포 밑에 나타났다. 그리고 거기에서 그 폭포위로 점프를 시작했다. 세계에서 가장 세차고 거대한 폭포, 연어는 그 폭포의 쏟아지는 거센 물결에 도전했던 것이다. 점프에 실패해 주둥이가 깨지고 아가미가 터져 피가 철철 나지만 연어는 포기하지 않았다. 피로 물든 몸으로 사생결단 끝에 결국 마침내 연어는 나이아가라 폭포를 거슬러 올라왔다. 그곳이 바로 연어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명절 때마다 고향을 찾는것은 회귀본능인 고향을 향한 향수심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연과 혈연이 하나가되어 숨 쉬는 고향, 거기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진학, 취업 때문에 도회지로 진출한다. 도시에서의 삶은 늘 피곤하고 각박하다. 너나없이 삭막한 환경, 긴장된 인간관계속에 찌들게 마련이다. 그런 현실은 고향에서의 과거를 더욱 그리운 것으로 채색해간다.
고향에서라고 모두가 행복했던 것은 아니었건만,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이 아름다운 무지갯빛일수만은 없건만, 당장의 도시생활이 고향에 관한 기억을 바꾸어가고, 소꿉동무는 악동이었더라도 착하기만 했던 아이로 이미지가 굳어간다. 그리하여 고향은 나만의 유토피아로 새겨져간다.
사람은 기억하고자 하는 것은 더욱 깊게 머리에 새기고, 잊어버리고 싶은 과거는 지워버리는 능력도 있다고 하지 않던가……….. 한편으로 고달픈 타향살이를 통해 사람들은 누구나 발전해간다. 놀라운 도시화, 산업화의속도는 그만큼 급격하게 개인도 변모시킨다. 빈털터리가 부자가 되고, 논두렁에서 꼴 베던 소년이 사장이 되며, 소먹이던 아이가 높은 관리가 되기도 한다. 그들에겐 고향이 자기를 비추어보는 거울이 된다. 변해있는 오늘의 나, 그것을 변하지 않는 고향이라는 거울에 비추어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된다. 나의성취를 가장 원점의 어린 시절 나에게 반사해 보고자하는 욕망, 나의 피붙이와 조상의 혼령 앞에, 또 어린 시절의 이웃들에게 드러내 보이고 싶은 심리, 이런 것이 추석을 맞아 매년 명절 때면 고향으로 향하게 하는 측면이 있는듯하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타향에서, 도시에서 승리하고 성공한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쓰러지고, 낙오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한때 잘나가다가 거품경제가 붕괴되고 IMF경제난을 거치면서 넘어진 이들도 많다. 그들에게는 고향에 가는 것이 두렵다. 성취의 과시는 커녕 패자의 얼굴이 드러날까 걱정이다. 안부를 물으러 오는 게 무섭고, 근황을 궁금해 하는 이는 멀리하고 싶다. 추석명절인데도 올해 역시 고향을 찾지 못하는 사람이 적지 않게 고향으로 향하는 귀성행렬을 쓸쓸하게 지켜볼 것이다. 이들이야말로 남북 이산가족보다 더한 슬픔을 삼키고 있을지도 모른다. 타율적인 남북한의 분계선도 아닌, 경제적 여건과 힘들은 처지에 몰려 남들이 다가는 고향땅도 밟지 못하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미국이라고 다를 바는 없다.
눈을 크게 뜨고 내 주위와 이웃을 살펴보면 이와 유사한 처지의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이 많이 있을 줄로 안다. 다가오는 9월 27일, 추석에는 비록 한국과 같은 명절의 분위기가 아니더라도 불우하고 외로운 이웃과 독거노인들을 다시 한 번 살펴보고 따스한 인정과 사랑을 베풀어보도록 하자.
고향이란 내가 처음 세상에 태어나고, 처음으로 울음보를 터트리고, 어머니의 따듯한 품속에서 뽀뽀 받고, 자장가에 잠들었던 곳, 아~…. 나의 인생에 가장 그리운 고향, 추석이나 설 등의 명절이 되면 가장 많이 생각나고 어릴 적 나의흔적과 숨결이 고스란히 간직된 곳, 그래서 우리에게 고향이란 아름다운 구속이었다. 수만리 멀리 타국, 미국에 살면서 가보지 못하는 고향을 생각하며 향수에 젖어본다……… 추석이 되니 내 고향 뒷동산에서 솔잎을
따다 시루에 얹어서 쪄낸 솔잎냄새가 솔솔 나는 어머니가 정성스레 만든 그 송편이 먹고 싶다. 추석날밤에 둥그렇게 떠서 비추는 저 보름달은 어김없이 나의고향에도 비춰주고 있겠지……………….   myongyul@gmail.com <993/0923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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