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열등감을 위대한 자화상으로 만들라

최래원목사 / 올랜도 선한목자교회 담임
저는 이번 주 주일 설교에 찰스 윌리엄 엘리엇의 이야기를 서두에 나눴습니다. 다음과 같은 이야기 입니다.
찰스 윌리엄 엘리엇(Charles W. Eliot, 1834-1926)은 보스턴의 한 가난하지만 신실한 크리스천 부모를 둔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엘리엇은 태어날 때부터 그의 오른쪽 얼굴에 큰 점이 있었고, 그 점은 엘리엇에게 치명적인 상처가 되었습니다. 성장하면서 동네 친구들에게 놀림 받는 일은 다반사며, 점박이라는 별명이 붙여졌습니다. 엘리엇은 얼굴의 큰 점 때문에 자신감을 잃고, 좌절하게 되었고 급기야는 우울증과 열등감에 사로잡혀 버렸습니다. 세상사는 것이 다 귀찮고,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생이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됩니다. 한번은 그를 더 절망시킨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얼굴의 상처를 제거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여기저기 병원을 찾아 상담을 받아 보기로 결정하고 의사들을 찾아 갔습니다. 그를 만난 모든 의사들은 하나같이 “당신의 얼굴의 점은 세상의 의술로는 제거하기 어렵습니다” 는 판정을 내린 것 입니다.
그는 더 이상 어떤 희망도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저 어두운 방 한 켠에 앉아 울고, 낙심하고, 비관하는 것이 그의 하루의 삶이 되었습니다. 그런 아들을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엘리엇의 어머니가 하루는 아들의 어둡고 불 꺼진 방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에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
“찰스야, 너는 분명 너의 오른쪽 얼굴에 큰 점 을 가지고 있다. 그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큰 점은 어떤 의사도 제거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이 네게 가진 치명적인 약점인 것도 사실이란다. 그러나 그 약점이 챨스 라는 너의 인격의 약점이 될 수 없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만약 너에겐 약점이 있지 만 그 약점만을 보고 좌절하고 실망하고 포기하지 않고,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네 마음에 두고 그 말씀을 지키며, 너의 인생을 위해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구하고, 마음 이 뜨겁고 인격이 큰 사람으로 자란다면, 사람들은 더 이상 너를 볼 때 너의 약점인 네 얼굴에서 점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점보다 큰 너의 인격과 믿음을 보게 될 것이란다”그는 어머니의 이 말이 자신의 삶에 닫아 버린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고 어머니가 방문을 열 때 그 열린 문틈으로 들어온 빛으로 인해 그 어두운 자신의 내면의 방문을 열고나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후 엘리엇은 어머니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었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고자 했고, 하나님을 의지하기 위해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이 되었으며, 자신의 인격의 그릇이 더 크고 넓은 사람이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며, 많은 책을 잃으면서 점점 믿음과 인격이 큰 사람으로 자랐습니다. 그 결과 엘리엇은 1639년 하버드 칼리지로 시작한 하버드 대학의 기간 중 은 40년간 하버드 총장으로 일하면서 하버드 대학교를 근대 연구 대학으로 변모시켰으며, 엘리엇의 개혁은 선택 과목, 소규모 강의 등에 관한 변화도 포함하고 있었다. 이런 엘리엇의 노력과 헌신에 힘입어 하버드의 모델은 지금의 미국 대학교육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하버드 대학을 든든한 기초 위에 올려 놓은 하버드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탁월한 총장으로 기억되는 인물이 됩니다.
우리에겐 누구나 숨기고 싶고 감추고 싶은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외부로 드러난 약점이라면 그런대로 고칠 수 있는 기회가 현대의학으로는 충분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내면의 숨겨진 약점이나, 상처라면 그것은 쉽게 치료될 수 없이 평생 그 약점을 가진 체 살아야 합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약점 때문에 힘들어 하고,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남들과 비교하고, 비교당하는 것이 싫어 다른 사람을 죽이기도 하는 안타까운 일들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인정에 목말라 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작은 인정에도 목말라 할 만큼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인정받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공부를 못한다고, 반 친구들보다 성적이 뒤 떨어진다고, 너는 왜 상 못 받았느냐고, 제는 하는데 너는 왜 못해 돈이 없어, 부모가 시원찮아! 뭐가 부족해서 넌 이 모양이니!
세상을 살다 보면 우리가 아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다양한 것들이 공존하고 그 다양한 세상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존재가 각자의 영역에서 자기 역할들을 감당해야 사회, 혹은 세상은 움직여져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꼭 한 가지, 그것만 잘해야 한다고 주입 당합니다. 그 사람의 존재조차도 그 한 가지를 성취하느냐, 못하느냐로 판결을 지어 버립니다. 우리는 엘리엇의 어머니의 사람을 움직이는 탁월한 격려와 인격적 존중과 그 자식의 미래를 걱정하는 진심 어린 사랑의 마음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누구나 크던 작던 우리에겐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는 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인위적으로 가려보려고 거짓말도 하고, 속이고, 감추려고 시도도 해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언젠간 그 거짓말이 드러나게 된다는 사실도 또한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나의 약점을 사람들에게 떠벌릴 필요는 없지만 굳이 숨길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약점보다 더 훌륭하고, 아름답고, 고결한 사람이 되려고 해야 합니다. 그 약점은 우리에게 그대로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가치와 나의 믿음과 나의 인격이 나의 그 약점보다 클 때 사람들은 나의 약점을 좋아하게 될 것입니다. 그 약점 때문에 그런 당신에게 찾아 올 수 있는 작은 비상구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 입니다.
그 약점이 오히려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줄 것입니다. 그 약점이 약간의 유머와 휴머니스트가 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결국 그 약점이 오히려 나에게 인간미를 가진 사람으로 여기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또한 그것이 나에게 치명적인 문제가 아니라 그것 때문에 나를 잘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매개체가 되게 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약점이 강함이 되게 되는 비결입니다. 성경의 인물 중 바울이라는 사람이 그랬습니다. 그에겐 자신을 괴롭히는 약점 있었습니다. 그것이 늘 자신에게 걸림돌이었고 발목을 붙잡는 원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없애 주시도록 기도도 많이 했습니다. “주님 제게 있는 이 약점만 없애 주시면 뭐든지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약점만 지워주신다면 제 전부를 드리겠습니다” 우리도 무수히 많은 시간을 이렇게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그런 약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 약점이 우리의 발목을 붙잡게 하는 원인이 아니라 그것 때문에 도리어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 붙잡고, 기도 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약점이 나중에 돌아보면 나에게 더 귀한 축복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쓰셨던 그분의 수많은 사람들은 처음부터 대단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갖춘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모두 치명적인 약점들을 가진 사람들 이었고, 그 약점 때문에 실수도, 실패도 수없이 경험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약점을 극복해 낸 사람들입니다. 그 자신에게 찾아온 약점이라는 치명적 인 열등감의 문제, 상처의 문제, 약함의 문제를 결국 극복하고, 그것이 오히려 자신을 하나님의 강함으로 채우는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더 이상 자신을 괴롭게 했던 약점에 붙잡혀 산 것이 아니라 약점 때문에 자신이 얼마나 강한 사람이 되었는지 서술하고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쓰신 사람들은 자신에게 있던 그 약점 때문에 자신의 약점의 크기보다 더 큰 인격, 성품, 신앙적인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갈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다윗, 기드온, 삼손, 룻, 갈렙, 베드로, 바울….이 그랬습니다. 혹시 아직도 자신이 가진 큰 점(약점)때문에 실의에 빠져있고, 낙심하고 있고 열등감에 젖어 살고 있다면 위에 언급한 하나님의 사람들에 나오는 성경의 내용을 한번 천천히 읽어보십시오. 여러분들도 그들이 걸어간 약점을 강점으로 만드는 사람들의 반열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991/0909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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