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더 늦기 전에 다시 한 번 도전해보라

최래원목사 / 올랜도 선한목자교회 담임
도전이란 말은 항상 우리의 심장의 박동을 뛰게 하는 말입니다. 젊었을 때 이 말은 우리에게 미지의 세계로의 동경심을 만들어 주었고, 청년 때는 못할 것이 없는 개척자적인 삶의 발판이 되어 주었고, 30대는 한번도 시도해보지 않았던 영역을 위해 시도해 보려는 객기를 만들어 주었으며, 40대의 이 말은 보장되지 않는 미래를 향한 걱정으로 인해 의욕으로만 남게 했고, 50대의 이 말은 다 지난 젊음의 때를 회상하게 만들어 주는 추억의 단어가 되게 해 준 말입니다. 그러나 그 어느 시대, 어떤 나이에도 여전히 도전은 크던 작던 가슴을 뛰게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도전이란 말을 들으면 그 말은 젊은이들 에게나 해당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젊은이들 사이에도 그들에게 다가온 모든 도전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도전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도전을 받아들이는 젊은이들은 고작 10%도 채 되지 않는 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전보다는 안정을 먼저 선택합니다. 뛰어들 자신이 없는 친구들은 미래에 대한 무한한 계산을 그저 계산기에 의존해 수학적인 산술에만 국한하기 때문에 도저히 계산되지 않는 미래를 스스로 가둬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방송매체를 통해 불 가 능한 것을 가능케 분들의 경험담을 들어보게 됩니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에베레스트를 등반한 이야기, 지체장애를 가진 아들을 위해 철인 5종 경기에 도전해 세계를 감동시킨 이야기, 두 팔이 없음에도, 도버 해협을 수영으로 건넌 사람의 도전 정신들의 이야기를 눈물을 흘리며 지켜봅니다. 그들을 통해 내가 이루지 못한 나름의 대리만족을 느끼지 때문입니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Boys be ambitious!) 라는 윌리엄 S. 클라크의 이 한 마디는 과히 청소년 시절을 온통 꿈으로 부풀게 만들었던 실로 우상 같은 명언이었습니다. 가만히 보면 그 뜨거운 가슴의 타오르는 불이 아직도 남아 있나 생각해보면 그것도 한 때 그 시절의 추억이 되어버렸구나! 싶은 마음에 아련한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그때는 윌리엄 S. 클라크가 말한 이 야망이란 말이 어떤 야망을 말한 것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야망은 그가 평생을 쫓아 살았던 예수를 아는 삶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소년의 시기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창조주를 아는 열망, 야망을 가지는 것이며, 그것이 그들의 인생을 바꾸고, 나라의 미래를 바꾸는 것임을 클라크 박사는 알았던 것입니다.
위키 백과에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윌리엄 스미스 클라크(William Smith Clark, 1826년 7월 31일 ~ 1886년 3월 9일)는 (현 ) 초대 교감으로 식물학과 자연 과학 일반을 영어로 가르쳤습니다. 또한, 그는 젊은이들에게 성경을 배부하고 기독교 신앙을 기초한 교육을 강조했고, 그의 가르침을 받은 학생들은 “예수를 믿는 사람의 맹세” 에 차례로 서명하고 기독교 신앙에 들어갈 결심을 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가 남긴 명언(소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은 바로 기독교 신앙을 근거한 것이었습니다. 나라의 미래가 청소년들에게 있고, 그들이 일본이란 나라를 변화시키고, 개혁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들이 예수님을 믿고 성경의 기초 위에 나라를 세워야 한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던 것입니다.

도전이란 사전적 용어는“ 앞에 놓인 장애물이나, 어려운 난관에 대해 정면으로 맞설 수 있는 웅비나 패기” 입니다. 성경을 보면 다윗에게 도전은 골리앗이란 장애물이자 난관을 정면으로 맞서 승리를 얻은 그의 신앙적 패기와 승부근성에서 나옵니다. 기드온에게 도전이란 10만이 넘는 상대하기 어렵고 불가능한 미디안 군대를 대항해 군인 3백명으로 대항한 패기와 대담성 입니다. 이처럼 도전정신이란 앞에 있는 장애나 난관보다 그 뒤에 숨어있는 승리와 성공을 보는 믿음의 과점입니다.
전도서12장1절a 보면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이 말이 얼마나 놀랍고 기가 막인 말입니까? 청년의 때 창조주를 기억하는 것, 누구도 그렇게 하고 싶지 않는 나이 아닙니까? 자기주장과 생각이 가장 옳다고 믿고, 자신 스스로가 우상이자, 자신의 목표의 가장 큰 장애물이 자신인 그 나이에 창조주를 기억하는 것이 시간낭비일 수 있고, 어리석은 일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은 그 나이에 교회 일 열심히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목사 되고, 선교사가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때 알고, 배우는 하나님은 평생 잊혀지지 않는 때입니다. 그때 만난 하나님은 평생 버리지 않고 떠나지 않는 나이입니다. 그때 창조주를 기억하는 것은 진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며,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한 확실한 목적이 만들어 지는 나이 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비극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달성할 목표가 없는 데에 있다고 벤저민 E. 베이스는 말합니다. 인생의 분명한 목적이 생긴다면 전혀 다른 삶의 길을 걸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청년들이 그 나이에 그 반대의 길을 갑니다. 결국 목적 없이 흔들리고 나침반이 고장 난 배같이 세상 파도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유행과 시류와 군중들을 따르다가 결국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이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훌쩍 지나가 버린다는 것입니다. 바람과 파도는 항상 가장 유능한 항해자의 편에 선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유능한 항해자는 분명한 목적지를 아는 사람입니다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진정한 도전이란 먼 미래만 바라보고 언젠간 되겠지! 라고 하는 스스로 주문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두려움 없고, 후회 없이 묵묵히 행하 는 것이 가장 위대한 도전이 아닐까? 라고 말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한계와 인내와 많은 포기의 과정을 거쳐 왔기 때문에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도전으로 만들어진 나름의 성공일 것입니다.
지금의 자신의 일을 도피하고, 지금하고 있는 자신의 역할을 어떤 식으로든 도망하거나, 바꿔 보려고 하는 시도를 위해 도전이란 말을 쓴다면 그것은 도전을 허구로 만드는 자기변명의 탈출구일 뿐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도전은 비굴한 자아도피를 위해 만들어낸 허구의 외침일 뿐입니다. 자신은 꼼짝 하지도, 도전하지도 않으면서 도전이란 말로 사람들을 선동하고, 충동하는 선동가의 외침이 된다면 그것은 도전의 가치를 매우 왜곡시키는 그릇된 발상에서 나오는 것이 분명합니다.

진정한 도전이란 나 자신만의 행복과 성공을 넘어 사회, 이웃, 공동체와 국가와 미래를 위한 세계경영을 위한 것이어야 진정한 도전이며, 도전 정신입니다. 성경에도 이런 도전정신을 가진 사람이 나옵니다. 바로 갈렙입니다. (수14: 6-15) 갈렙은 가나안 땅을 분배 받으면서 자기들 족속의 인구에 비해 분배 받은 땅이 너무 좁았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에게 우리에게 땅이 더 필요하다고 강력히 요구합니다. 그러자 여호수아는 갈렙에게 “평야지대에는 더 이상 줄 땅이 없다. 하지만 저 산 위에 있는 곳은 너희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가질 수 있다. 다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키가 크고 싸움을 잘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단단히 준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갈렙은 “그 산지를 내가 가질 것이고, 그것을 내가 취할 것이다”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국토의 3/2가 산지로 되어 있습니다. 사실 산지는 난공불락의 요새입니다. 그래서 산지를 개간하고 사는 부족들이 꽤 많았습니다. 갈렙에게는 그것이 자신과 자신이 이끄는 유다 족속에게는 중대한 문제였습니다. 단순히 어떤 일을 개척하고 도전하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미래의 자손들이 앞으로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을 결정하는 문제였습니다. 단순히 평야지대의 몇몇 분배받은 땅에 만족하다가 세상말로 객기 한번 부려보는 셈치고 난공불락의 산지를 공격해 들어가려는 무모함이 아닙니다. 그곳에 거주하고 있던 자들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 자 들이고 워낙 그 지역에서 소문나기로 잔인하고 난폭한 키들이 3미터가 넘는 장대한 자들입니다.

정말 도전이란 이전 보다 조금 더 나은 어떤 것을 얻기 위하거나 재미 삼아 시도해 보는 취미가 아닙니다. 그것은 목숨을 걸고, 자신의 족속의 운명을 걸어야 하는 결단입니다. 누구나 도전을 말할 수는 있지만 아무나 그 도전을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정말 도전은 목숨 걸고 감행해야 할 미래의 운명을 바꿀만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쉽게 도전을 싼값으로 팔아넘기지 말아야 합니다. 적어도 진정한 도전을 시도하려는 사람들에게 도전의 가치를 헐값으로 취급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한 번도 안 해본 것을 하는 것이 도전이 아니라 목숨 내놓고, 자신의 운명 전체를 걸고 해야 하는 것이 도전이고, 그렇게 사는 삶이 도전정신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도전해 보지 못하고 우리의 인생을 마무리 하는 나이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작은 것 하나, 보잘것없어 보이는 것이라도 내가 한번도 해보지 않는 것을 시도하고 도전할 수 있다면 아직 당신은 이 땅에서 살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이고, 당신의 삶은 지금까지 살아온 그 어떤 삶보다 보람 있는 삶을 살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혹 나이가 들어가고, 힘도 없어집니까? 그 장애와 난관을 넘어 여러분의 나이에 맞는 도전을 올 한해 한가지만이라도 시도해 보십시오. 60이 넘어 몸짱이 되었다, 60이 넘어 처음으로 선교지 을 방문해 보았다 등. 도전하면 할수록 새롭게 도전할 분야가 눈에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이제 남은 인생을 영혼의 삶을 위해 무엇인가를 의미 있게 도전해 보십시오. 그것은 미래의 영원한 나라에서 당신이 누리게 될 풍요한 삶을 만들어 줄 것입니다. <985/0722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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