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우리는 어떻게 크리스천이라는 이름을 감당할 수 있습니까?

최래원목사 / 선한목자교회 담임
동성결혼 법이 연방 대법원을 통과 해 미국 전역에서 동성애자들이 합법적인 결혼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요즘 미국은 예전의 미국과는 상당히 다른 노선을 향하고 있습니다. 세계 제일의 인권국가라 자부하면서 가장 인권에 취약한 나라 중 하나입니다.

무슬림들은 미국 하면 기독교 국가라는 인식이 뿌리 깊이 박혀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미국은 무슬림들을 통해 막대한 무기나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무슬림들의 인권에 대해서는 엄청 신경을 쓰고,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지만 정작 기독교인들의 박해와 살상과 참수당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수수방관하고 있습니다.

미국에 세워주신 교회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부요하고, 부강한 미국을 상징하듯 대단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고, 엄청난 재정의 유입과 지출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실로 놀라운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많은 재정들은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썰물처럼 흘러 어디론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교회와 교계지도자들은 정치에 참여하고 정부기관에 깊숙이 들어가 그 정부를 변화시키고, 정부를 복음화 시켜야 미국을 바꿀 수 있다고 정치에 참여하는 교회들이 여기저기서 일어났습니다. 그런지 10여년이 흘렀지만 미국은 그 방향을 더 적극적으로 좌회전하고 있습니다.

캘리포니아 웨스트 사이드 크리스천 펠로우십 교회(Westside Christian Fellowship Church)의 셰인 아이들만(Shane Idleman) 목사는 크리스천포스트 기고글을 통해 동성결혼 합법화 등으로 급속도로 타락의 길로 치닫고 있는 미국 사회에 침묵하고 있는 목회자들을 위해 “과연 당신은 ‘공의의 설교자(Preacher of Righteousness)’인가? 아님 ‘동기부여자(Motivational Speaker)’인가? 라며 공개적으로 질문을 던졌습니다.

전문을 다 올리지는 못했지만 위의 말이 지금 미국의 교회의 두 얼굴이라는 것입니다. 한 나라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무너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일이 일어남에도 대다수의 미국의 교회들과 목사님들은 의외로 이 문제에 대해 잠잠하고, 때론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사실 이번 판결은 오바마가 밝힌 대로 자유에 대한 위대한 승리가 아니라 한 나라가 그 동안 목숨 걸고 지켜왔던 미국이란 전통성을 팔아버린 매국적인 행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미국이 나름 숭고하게 지켜왔던 신앙적 이념과 정신을 매도해 버린 것입니다. 분명 역사가 그를 평가할 것입니다. 미국이 이렇게 저급하고, 형편없는 나라가 되게 한 장본인으로 오바마를 가장 먼저 지명하게 될 것이며, 그는 워터게이트로 대통령직을 물러난 닉슨의 치욕보다 더 치욕스럽게 동성애자, 자유주의자, 세속주의 자들과의 야합을 통한 수치스런 미국을 만들어 낸 야합 꾼이 되고 만 것입니다. 이제 서서히 그 숨겨진 발톱을 드러낼 것이며, 음모들이 더 분명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미국은 아합이 지배하고 이세벨이 장악했던 북 이스라엘의 시대적 역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입니다.

특히 미국이 자행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기독교에 대한 보이지 않는 박해와 정치적인 압박의 수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기독교를 가장한 양의 탈을 쓴 늑대와 같습니다. 어느 시대이던 정치가 교회를 대신한 시대는 없었습니다. 정치가 교회를 대신하는 것처럼 보인 것은 그들의 권력을 유지하려는 의도 외에 다른 목적은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현 미국의 대통령은 위대한 사람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는 분명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사실은 더 분명합니다. 그는 단지 수완이 좋은 정치인 일뿐입니다. 교회를 어떻게 자신의 편으로 이용할 줄 아는 여우같은 교활함을 가진 자라는 것입니다. 그 어느 시대에도 영원한 제국, 강대국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미국 역시 영원한 것 같은 교만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역사의 과정을 그대로 밝아 갈뿐입니다.

요즘 미국과 유엔은 이상하리만큼 세계 움직임에 둔감해진 건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 건지 모를 정도로 중동문제, 이스라엘 문제에 잠잠합니다. 지금도 IS에 의해 인권이 말살되고, 참혹한 참수형으로 수없이 많은 크리스천들이 죽어감에도 어떤 인권적인 개입도, 군사적인 개입도 뒷전에 두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폭탄공격으로 팔레스타인의 무슬림 800명이 죽었을 때 미국 정부, 방송매체들이 연일 비판을 쏟아내면서 난리를 피운 것에 비하면 정작 IS에 의해 선량한 크리스천들이 무고하고 무참히 죽어가는 있음에도 성명 발표하나 없습니다. 미국과 유엔은 어쩌면 IS를 통해 오히려 크리스천들을 학살하는 것을 방조하고, 후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들 정도입니다.

랍비 죠나단 칸이 UN에서“메시아를 믿음으로 죽임 당하는 형제들을 수동적으로 지켜보기만 하는 사람은 더 이상 크리스천이라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안락함과 풍요를 주시는 지에만 집중하면서 안락함도, 풍요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의 울부짖음에 귀를 닫아버린다면, 믿음 때문에 갇히고, 고문당하는 형제, 자매들을 보면서 우리가 어떻게 크리스천이라는 이름을 감당하겠습니까? 심판의 날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무엇이라고 대답하겠습니까? 라고 외쳤습니다.

교회는 이슈 몰이를 해서는 안 되지만 분명하게 옳고 그른 것을 알려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시대적 흐름이나 대세란 없습니다. 그 대세를 따르다가 교회가 망하고, 성도들이 믿음에서 떠나고 말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시대적인 대세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대적 대세인 군중의 힘과 세력과 지지에 의해 그분의 심판을 유보하시거나 미루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계도 이상합니다. 자기 밥그릇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싸우고 고성에 난리를 피우면서 성경이 짓밟히고, 하나님의 이름이 망령됨을 당하고 성경적이고, 전통적인 결혼이 뒤틀려 나갔음에도 누구 하나 난리 법석을 피우거나, 반대 성명하나 내는 곳이 없습니다. 동성애자에게 목사 안수를 주고, 설교강단에 세우는 교회와 교단은 도대체 하나님을 두려워나 하고, 그분 앞에 무슨 낯으로 서있는지 궁금합니다. 그건 더 이상 교회가 아닙니다.

처음부터 여성 같은 남성, 남성 같은 여성으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라나는 환경으로 남자가 여성스러울 순 있고, 여성이 남성스러울 순 있습니다. 그렇다고 여자가 남자가 되고 남자가 여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완전히 유전적 변이를 일으키지 않는 한 의학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성전환을 시술해주는 의사들은 정말 사악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돈밖에 모르는 대담히 돈 독에 올라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과 고유한 성의 신성을 파괴하는 악과 결탁한 가면을 쓴 악마입니다. 그들의 죄는 용서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혹 현재의 안락함과 풍요에 만족하고, 집중하면서 어떤 안락함도, 풍요도, 안전도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울부짖음에 귀를 닫아버리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때문에 갇히고, 고문당하는 참수당하고 있는 형제, 자매들을 보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다면 심판 앞에 서서 그들이 우리에게 너희는 너희의 형제와 자매들이 참수를 당하고 애매한 죽임을 당하여 요청하고 호소할 때 너희는 그때 무엇을 했느냐고 묻는 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크리스천이라는 이름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984/0715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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