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아버지의 날, 아버지의 사랑

<칼럼리스트 / 탬파거주>
아버지의 날은 아버지를 기념하는 날이다. 이는 아버지의 사랑과 희생, 헌신을 다시금 기억하고 깨닫게 하는 날이다. 어머니날이 보급되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에서는 6월의 둘째일요일을 아버지의 날로 기념하기 시작하였으며 기타 다른 나라들도 아버지의 날을 정해 기념하고 있다. 아버지날을 기념하는 꽃은 역시 어머니날과 같이 카네이션이다. 아버지가 살아계신 사람은 붉은 카네이션을 드리지만 돌아가신 사람은 흰카네이션을 아버지의 무덤 앞에 올려놓는다.
아버지날의 시작은 1910년 미국의 워싱턴 주에 살고 있는 도토 여사에 의해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이 사람은 어머니날처럼 아버지께서도 가족들을 위하여 일생을 희생과 사랑, 헌신으로서 고생하시는 분인데 이러한 아버지께 일 년에 하루라도 감사를 드려야 하는 날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하여, 그녀는 어릴 때 어머니를 여의고 홀로 길러주신 아버지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기념행사를 펼친 날이 아버지날의 기원이 되었다. 그때만 해도 이 아버지의 날은 좀처럼 공휴일로 지정되지 못했는데 62년 후인 1972년도에 이르러서야 미국에서 공휴일로 제정되었다. 일본에서는 1955년 무렵에 도입하여 서서히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1980년대에 들어와서 일반적인 행사로 정착되었다.
아버지날엔 카네이션 외에도 노란 장미와 해바라기, 흰장미, 흰백합화 등도 많이 선물하는데, 이는 노란색이 고대영국에서 몸을 지키기 위한 색을 의미하였으나 이것이 오늘날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무사함을 기원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 년 전에 중동에서 이라크전쟁이 한창일 때 그곳에 파병된 군인장병들의 무사귀환과 안녕을 빌기 위해 자식이나 남편, 및 가족들을 그곳에 파병 보낸 가정들은 이들의 무사함과 평안을 기원하는 뜻에서 집 앞, 또는 대문이나 정원의 나무, 우체통 등에 노란리본과 테이프를 달아놓고 사랑하는 사람의 안녕과 무사함을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바라고 있었다.
달력을 보니 금년에는 6월 21일, 세 번째 일요일이 미국에서 지키는 아버지날이다. 내가 적을 두고 다니고 있는 교회에서는 이날 아버지날을 맞아서 60세 이상 어른들(어버이님들)을모시고 2박 3일의 효도관광을 다녀온다고 한다. 그동안 평생을 자식들을 위하여 무거운 멍에를 목에 걸고 가정을 이끌어오면서 갖은 고생과 헌신, 사랑을 자식들에게 모두 쏟아버린 어머니, 아버지를 위하여 조금이나마 위로를 해드리고 그 은혜에 감사를 드리고자 목사님을 비롯한 전교인들이 마음과 정성, 사랑을 다해 이날의 효도관광을 마련한 것이다. 효도관광을 가는 날이 아직은 며칠 더 여러 날 기다려야 되는데 나이 드신 어른들은 어린애처럼 마음이 부~웅 떠서 그날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관광을 가서 무엇을, 어떻게 하고 즐겁고 기쁘게 즐기고 올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매년 아버지날이 다가오면 나는 누가 말을 안 해 주고 달력을 보지 않고서도 아버지날이 가까이 온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이때를 보면 홈디포나 씨어스 또는 하드웨어 등의 대형점포들이 신문광고에 연장(Tools) 등을 세일한다고 전면광고로 도배를 시작하면 아~ 아버지날이 가까이 오는구나! 하고 알게 된다. 여기에서 내가 조금은 유감스럽고 기분이 언짢은 생각이드는 것은, 이러한 아버지날에 즈음하여 아버지에게 가정에 필요한 기계, 공구나 잔디 깎는 기계를 사서주라는 의미인데 그 저의가 의심(?)스럽고 곰곰히 생각을 해보면 불쾌하기 까지 하다. 이러한 연장들을 애비에게 사주고 밥이나 먹여가며 집에서 풀 깎고 나무 베고 집안일속에 문짝 떨어져 나간 거나 찬장 부서진 것을 고치며 황소처럼 열심히 일만하라는 의도밖에 생각되지 않는다.(물론 긍정적인 생각으로는 고생하는 아버지에게 좀 더 편리하게 일하시고 불편을 덜어 드리려고 효도하는 마음으로 사드리는 걸로 판단하지만…….) 그러나 공구나 일하는 연장들은 쓰는 사람의 취향이나 손에 맞는 걸로 사는 거지 누가 사주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너무 작동이 어렵거나 동력이 쎈 연장은 나이 드신 아버지가 사용하기에는 근력이 딸리고 힘에 벅차며 잘못하면 사고가나기 십상이다. 차라리 그것을 살돈을 아버지에게 용돈으로 드리면 아버지는 더 좋아하실 것이다. 가령 어머니날에 재봉틀이나 다리미, 진공청소기를 사준다면 그것을 고맙다고 넙죽 받아들 어머니가 몇분이나 될까?
한국에선 자녀를 잘 키우기 위해서 할아버지의 경제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이 필요하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러나 모든 아버지들이 듣기에는 이게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오히려 울화통이 터지고 가족 일원에서 제외됐다는 것이 보통 화가 나는 것이 아니다. 무관심의 의미는 아빠라는 존재는 무슨 일에든지 끼어들면 일이 성사가 안 되고 말썽을 부리며 귀찮은 존재로, 오히려 빠져주는 것이 가족을 위하거나 모든 일을 성사시키는데 도움이 된단다. 아빠는 그저 돈이나 많이 벌어 와서 식구들 굶기지 말고 자식새끼들 과외비와 수업료 잘 대줘서 공부 잘하게 하는 것이 아빠의 의무이며, 마누라 대외활동? 하는데 지장 없도록 돈이나 넉넉히 쓰게 뒷받침해주고 어느 일에든 참견을 안 하는 것이 일등짜리 아빠란다.
그리고 집에서 쉬는 날에는 집이나 보고 막힌 하수구 고치고, 집안 청소하며 애들 뒷바라지
해주고, 아내가 밖에 나가서 무엇을 하건, 늦게 들어오건 간에 찍소리 말고 착하게 집안에 있는 것이 모범가장이란다. 이러한 입장이 되고 보니 남자로 태어난 것이 억울하고 아버지가 된 것이 서럽다. 그나마 일 년에 한번 불쌍한 사람에게 적선하듯 아버지날을 정해서 그날만은 이 불쌍하고 힘없는 가련한 아버지들을 위로해주고 맛있는 것도 먹게 해주며 가정에서 가장의 위치를 인정하고 확인해주는 날이라서 천만다행이며 고맙기 그지없다.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실화이야기이다. 평소에 가진 것이 넉넉지 못해 자식들에게 남들처럼 풍성하게 잘해주지 못했던 가난한 아버지에게 16살 먹은 예쁜 딸이 있었다. 엄마를 교통사고로 어릴 때 하늘나라로 보내야했던 이 딸은 어려운환경속에서도 착하고 예쁘게 성장하였다. 그런데 그 딸이 불행하게도 얼굴이 파리해지고 점점 시커멓게 변해갔다. 감수성이 예민한 소녀가 다른 곳도 아니고 얼굴이 그렇게 변해가자 크게 걱정이 되고 근심 속에 큰병원을 찾아갔다. 그녀는 결국 의사로부터 신장염에 걸렸다는 놀라운 진단을 받았다. 그 딸의 신장을 이식하지 않으면 얼굴이 변색되어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생명까지도 잃을 수 있다는 참으로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되었다. 고민하던 아버지는 자신의 신장을 떼어주기로 했다. 수술이 잘되어 딸아이는 다시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다. 그런데 오래지않아 그 딸의 신장이 다시 문제를 일으켰다. 또다시 신장이식수술을 받지 않으면 생명의 위험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다시 한 번 결심을 한다. 마지막 남은 신장, 그것마저도 딸에게 주어야겠다고…….. 그러나 의사들이 펄쩍뛰며 반대를 했다. 이것은 의술로 할 수 없는 살인행위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의사협회 윤리위원회까지 열어서 이것은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아버지는 요지부동이었다. 자기목숨보다 더 귀중한 딸을 위해 “윤리보다 더 강하고 위에 있는 것이 사랑이다”라고 맞섰다. 그리고 의사들을 설득했다. “하나님도 스스로 만든 법을 어기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보내 죽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법은 살인하지 말라였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사랑하는 사랑을 더 고귀하게 여기셨기 때문에 법을 어기면서까지 예수님을 죽이셨습니다. 그러므로 법보다도, 윤리보다도 더 사랑이 앞서는 것입니다”고…. 이렇게 눈물로 호소하여 결국에는 마지막 남 은신장을 떼어 사랑하는 딸에게 주고 자신은 하늘나라로 가고 말았다. 이것이 바로 아버지의 사랑이다. 이것이 아무런 조건도 없는 아버지의 순수한 사랑이었다. 지금의 우리는 아버지의 사랑으로 인해 이렇게 살아가고 있고 아버지(부모님)의 사랑 때문에 내가 존재하고 있다. myongyul@gmail.com <980/0617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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