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가시나무

<칼럼리스트 / 탬파거주>
내가 살고 있는 동네, 나의 집에 들어오는 정문입구 길에는 장미꽃처럼 빨갛고 아름답게 꽃을 피워낸 가시나무들이 군락을 이루어 줄지어 서있다. 마치 드나드는 주민들의 안전을 위해 서있는 보초병처럼 일 년 열두 달 변함없이 그 자리에 서서 자리 잡고 오늘도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고 있다. 주민 중 어느 사람은 저 가시나무를 가리켜 2천여 년전에 예수님께서 죄악에 빠진 인간들을 구원하기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그 머리위에 씌워진 가시면류관이 바로 저 나무로 만든 것이라고 믿고 말하기도 한다. 그 말이 진짜인지 또는 잘못된 인식인지는 모르겠으나, 날카롭게 솟아나오고 돋구쳐 나온 가시를 볼 때마다 그러한 가시로 이마와 머리를 찔리우고 찢기운 예수님께서는 그 고통과 아픔이 얼마나 컸을까? 추상을 해보니 눈물이 나고 동정심에 가슴과 마음이 아프다.
그리스신화에 신들의 임금인 주피터가 아들 머큐리와 함께 평범한 사람으로 변장하고 세상을 살피러 다니던 중에 필리먼이라는 초라한 늙은이의 집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은데 감동하여 필리먼을 가시나무로, 그의 착한아내 보시스를 보리수나무로 변하게 하여 서로 마주보며
오래오래 살게 했다는 얘기가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 가시나무는 정직과 예의, 그리고 진리의 상징이었다. 그리스속담에 (가시나무를 보면서 말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하늘을 두고 맹세한다는 것과 같은 뜻이라고 한다. 가시나무는 한자로 가시목, 저, 사계청 등으로 쓴다.
가시나무의 종류는 동서양에 걸쳐 여러 가지 종류의 가시나무가 세계 여러 나라에 광범위 하게 분포되어 자생하고 있다. 한국의 가시나무는 대개 잎이 보통의 잣나무 잎보다 작고 두꺼우며 잎의 표면이 반짝반짝 윤이 나고 진한녹색을 띠고 있다. 가시나무는 보통 암.수 한그루로 봄에 황갈색 꽃이 피어 가을에 도토리를 닮은 열매가 달린다. 열매를 가시라 부르며 도토리처럼 묵을 만들어먹거나 가루를 내어 수제비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가시나무는 한방요법으로 담석과 신장결석을 녹여 없애는데 특이한 효과가 있다고 하여 많이 사용되고 있다.
가시나무에 얽힌 전설도 있다. 70여 년 전에 경상도의 어느 산골마을에서 있었던 일이다. 가뭄이 너무 심해 농작물이 흉년이 들고, 산에 도토리나무나 기타 야생의 나무열매들도 열리지 않았던 어느 해의 일이다. 밤이 되면 어떤 짐승이 고구마 밭이나 옥수수 밭에 나타나서 밭을 마구 파헤쳐 엉망으로 만들어놓고 고구마와 옥수수를 훔쳐갔다. 마을사람들이 그 짐승을 잡으려고 덫을 놓고 올가미도 만들고 함정도 파두었으나 잡히지 않았다. 도대체 어떤 짐승인지 궁금하여 고구마 밭에 몰래 숨어서 밤새 지켰더니 한밤중에 뭔가 시커먼 짐승이 나타나 고구마를 캐서 먹는데 날쌔기가 비호같아 자세히 볼 수가 없었다.
다음날 여러 사람이 큰 그물을 준비하여 숨어 있다가 그 짐승을 그물로 덮쳐 사로잡았다. 잡고 보니 온몸이 시커먼 털로 덮이고 머리카락은 엉덩이아래까지 늘어진 벌거벗은 사람이었는데, 카악 카악 소리만 낼뿐 말은 하지 못했다. 손짓발짓으로 의사소통을 하다가 종이와 먹을 갖다 줬더니 종이에다 자기가 산에서 살게 된 사연을 적었다. 놀랍게도 그 털복숭이 사람은 3백여 년 전에 왜구의 노략질을 피하여 산으로 도망쳤던 사람인데 산열매도 흉년이 들어 배가고파서 마을로 내려왔다고 했다.
사람들이 궁금하여 산에서 대체 무엇을 먹고 살았느냐고 물었더니 가시나무열매와 도토리를 야생 벌꿀 속에 오래 담가두고 그것을 식량으로 삼았다고 한다. 경상북도 성주군 월향면에있는 신석사에도 이와 비슷한 얘기가 전해온다. 이곳 역시 350년 전에 임진왜란을 피해 산으로 도망친 사람이 가시나무열매와 도토리를 야생 꿀에 절여서 먹고살다 몇년 동안 가뭄으로 산에 나무열매가 맺혀지지 않자 동네마을로 내려와 먹을 것을 훔쳐 먹다 동네사람들에게 붙잡혀, 그 사연을 듣고 보니 위의 내용과 같은 내용이었다.
매년 부활주일이 되기 전의 주일을 고난주간이라고 기독교에서는 말하고,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 박히심을 기리고 인간들을 위하여 고통을 당하시고 돌아가신 그 은혜와 사랑을 되새기는 주간이기도하다. 고난주간이 되면 예수님께서 겪으신 고통과 아픔의상징인 가시면류관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조롱과 모욕의 대명사라고도 할 수 있는 유태인의 왕이라고 하면서 씌웠던 가시관을 보면서 예수님께서 얼마나 고통과 아픔과 괴로움을 당하시면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 아픈 역사의증표인 가시면류관을 만들어 씌웠던 가시나무를 보면서, 헌신과 사랑과 희생으로 일생을 마친 예수님의 생애를 생각해보았다 . 신약 성경말씀 마태복음27장 27절~30절의말씀에,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官庭)안으로 들어가서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가시면류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 찌어다 하며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우리는 가시라하면 일반적으로 장미과식물의 날카로운 가시를 연상하기 쉽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된 가시는 갈대나무과로 가시가 있는 대추나무의 일종을 말한다. 히브리명은 Atad 또는 Naatsuts라하며 영어의명은 Christ thom, 즉 즉 그리스도 가시라는 뜻이다.
이것은 식물학자인 린네우스가 예수의 가시면류관을 만든 식물이라고 믿고 이름을 붙인 것이다. 이 식물은 지중해연안, 즉 레바논, 팔레스틴, 시나이, 이스라엘 등에 널리 분포하고 있으며 예루살렘 모리아산의 동쪽 경사진 면과 골고다 요단 계곡 등에 흔히 자라고 있다.
예수님께서 쓰신 가시면류관은 인간의 모든 아픔과 고통과 죄악을 대신하는 면류관이다. 사람들에게는 누구에게나 가시면류관이 있다. 가시면류관은 아픔이다. 그리고 고통이며 견디기 힘든 통증이다. 또한 가슴을 쥐여 짜고 칼로 베어 내는듯한 쓰라림이며 괴로움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가시면류관을 써야한다. 그것을 우리는 십자가를 진다고 말한다.
예수님의 길을 따라 골고다의 언덕길을 따른다고도 말한다. 오늘 내가 자원하여 쓰는 아픔과 고통, 괴로움의 가시면류관, 하나님께서는 그 가시면류관으로 하여금 의의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을 만들어 당신에게 주실 것이다. 남을 위한 헌신과 봉사, 희생, 사랑이 여기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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