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가을과 인생의 추수

<칼럼리스트 / 탬파거주>
공원과 길가의 수목들이 색동옷으로 곱게 차려입은 자태를 벗어버리고 한잎 두잎 낙엽을 떨구며 앙상한가지를 내보이고 있다. 가녀린 코스모스는 북쪽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의 냉기 속에 온몸을 떨구고 홀씨 흩날리며 서리 결에 메말라 시들어서 앙상하게 말라간다. 신록을 자랑하던 초록빛 은행잎도 소슬한 바람에 파르르 떨며 어느새 노랗게 변색되어 한잎 두잎 떨어져가며 세월의 무상함을 대변해 주고 있다. 어릴적 초등학교시절에 학교울타리 담벼락에 키다리처럼 자라 올라온 은행나무밑을 거닐며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은행열매를 주워 들고버리지도 못하고 주머니 속에 넣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자세로 손바닥 안에서 주물럭대던 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그동안 세월은 참으로 많이 흘러갔다.
이제는 성년이 되고 어른이 되어서 세상물정 이것저것 알 것은 어느 정도 다 알고 사는 늦가을 인생이 되었는데, 내안에 담은 가을은 또 이렇게 깊어만 가고 세월의 흐름 속에 마모되고 지친 내 그리움은 하루하루 야위어만 간다. 세상살이 풍파 속에서 인내심에 익숙해진 일상이지만 가슴속 한켠을 후비고 지나가는 웬지 모를 허무와 공허는 나 혼자 만이 느끼고 한숨짓는 마음속의 시려움인가보다.
지나간 과거 찬란한 햇빛 속에 꽃의 향기에 취해 몽롱한 정신 속에 보낸 풍요로움과 피 끓는 젊음의 화려한 영광의 그리움으로 하루의 문을 열고 또 하루의 문을 닫으니 깊고 깊은 외로움의 가을 병(病)을 무엇으로 견뎌내야 할지?……….
잡을 수도 막을 수도 없는 강물처럼 속절없이 흘러가는 세월과 시간이 참으로 무상하기만하다.
깊어 가는 가을의 오후, 밝은 햇살을 한줌 손바닥에 받아본다. 따사롭다! 오늘도 어영부영 하다가보면 이 따사로운 햇살을 놓치고 말 것이다. 그리고는 겨울이 이렇게 춥노라고 몸을 움츠리고 도사릴 것이다. 따듯한 차 한 잔이 생각난다. 오후의 햇살이 다 하기 전에 나는 오늘 소중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나의주위를 찬찬히 둘러본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나는 진정 소중한 것들을 모르고 잊은 채 앞만 보고 달려갈 때도 있었고 하찮고 필요치 않은 것을 얻기 위해 내 인생에 가장 소중한 것들을 어리석게도 버릴 때가 많았을 것이다. 소중한 것은 꼭 멀리서 반짝이고 빛나는 것은 아닐 터인데………..
내 눈앞에 있는 작은 것에서도 소중한 것은 발견될 수 있을 터인데……….우리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중요한 것은 내 삶을 살아가면서 버릴 것과 취할 것을 올바르게 깨닫는 일인 것같다. 나와 당신, 우리 모두는 지금 그 버릴 것과 취할 것을 바로 깨닫고 살아가고 있는지? 자각(自覺)속에 살아가는 인생이 되었으면 좋겠다. 욕심을 바르게 다스리지 못하여 그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안타까운 마음이 가시지 않는 것은 유독 내가 소심해서만은 아닌듯 싶다. 느낌도 없이 손가락사이로 빠져나가는 가을햇살을 한 움큼 쥐어보면서 새삼스레 나 자신을 돌아본다.
수확한 볏단 곁으로 국화가 가을향기를 뿜어낸다. 이제는 넓은 들의 논에서 낫으로 벼를 베는 사람을 거의 볼 수가 없는 농촌의 가을풍경이 되었다. 추수의 계절이지만 들판은 썰렁하다. 벼 베는 사람은 안보이고 기계 소리만 요란한 들판의 풍경이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여기가 한국의 농촌이 맞는가?
옛날 가을의 추수기에 논에서 허리를 구부리고 비지땀을 흘려가며 벼 베기에 여념이 없었던 농부들의 모습은 현대문명이라는 미명하에 사라진지 오래됐나보다. 이제는 옛날생각에 머리를 흔들어보면서 현실을 직시해본다.
내 인생의 봄날은 언제일까? 오늘이 내 인생의 봄날이라고 생각하자. 인생의 봄날이 다 지났다고 생각하면 왠지 슬픈 생각이 떠오른다. 봄날이란 늘 늦겨울의 추위가 남아있지만 가을의 추수를 기대하며 씨앗을 뿌리고 수고를 감당하는 시간이다. 봄날은 겨울이 있어야한다. 추울 때는 춥고 더울 때는 덥고 비가 내릴 때는 많이 쏟아지고 햇볕이 쨍쨍할 때는 지치도록 햇살이 쏟아지고 그래야 그 후에 제대로 된 좋은 결실을 얻을 수 있듯이 성공의 열매는 값없이 쉽게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늘 언제나 마음속에 봄날을 간직하고 살아가자. 세상을 살아가는데 눈앞에 결과가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씨를 뿌리고 열심히 가꾸며 살아가자. 인정의 씨를 뿌리고 희망의 씨앗을 걸러내고 정직과 성실의 씨앗을 심자. 애쓰고 노력하고 또 땀 흘리는 수고로운 시간을 감당하며 공든 탑을 쌓아가자. 인생의 씨를 뿌릴 수 있는 봄날을 놓친다면 여름이나 가을이 아무리길어도 뿌릴 수 없는 씨앗이 있듯이 때와 시기를 놓치지 말고 좋은 씨앗을 심어 잘 가꾸고 거두어 이러한 가을이 되면 풍성하고 넉넉한 인생의 추수를 거두자. 지금은 가을이 아니라 당신의 인생은 봄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기대
하면서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열심히 일하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봄이다.
<myongyul@gmail.com> 903/1115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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