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꾸러기의 짧은 글 긴 생각> 있으나 마나한 사람이 되어보시지 않겠습니까?

이경규목사 / 서울 새로운 성결교회 담임
사람이 그리운 계절이다.
사람다운 사람이 그리운 시절이다.

사도행전에 보면 바나바라는 사람이 나온다.
그는 초대교회의 어른이었다.
바울은 바나바에 비하면 새까만 후배다.
안디옥교회는 바나바와 바울을 선교사로 파송했다.
이들은 함께 선교여행을 했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바나바가 주연이고 바울이 조연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에도 ‘바나바와 바울’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사도행전을 계속 읽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바나바와 바울의 역할이 바뀌는 것을 알 수 있다.
바울이 점점 주연이 되고 바나바가 조연이 된다.
결국 이름도 ‘바울과 바나바’로 기록되기 시작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바나바가 그에 대하여 아무런 불평과 원망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바울을 내세우며 잠잠히 조연의 역할을 감당했다.
바나바는 나중에는 있으나마나한 사람이 되었다.
우리는 훌륭한 후배를 찾아 그를 앞세우며 그의 길을 열어주는 바나바와 같은 사람이 그립다.

사실 우리 사회는 없어서는 안 될 훌륭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자천타천으로 대단한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그와 같은 사람들 때문에 한국사회가 이만큼이라도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작금의 사태를 보면 그런 사람들 때문에 혼란에 빠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없어서는 안 될 훌륭한 사람이 된 후, 겸손하게 자기를 부인하고 재빨리 자기가 없어도 되는 교회와 세상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교회를 보아도 훌륭한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너무 많다.
솔직히 말해 교회에는 서울대학교 총장이나 유명한 삼성병원 원장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들보다 유명한(?) 교회의 유명한 목사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서울대학교 총장이나 유명한 병원의 원장은 몇 년에 한번 씩 바뀌어도 문제가 없다.
뒤를 이어 총장하고 원장 할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총장이 바뀌고 원장이 바뀌면 더 발전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고, 별 문제 없이 그런 과정을 거쳐 왔다.
그런데 교회는 어떠한가?
담임목사님이 물러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특별히 담임목사 자신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아집에 사로잡혀 교회를 망치는 목사님, 장로님들이 많지 않은가 말이다.

나는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한 마디가 있다.
신학교 졸업반 때 친구가 해 준 한 마디다.
‘하나님은 네가 아닐지라도 그 일을 하실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네가 맡긴 이상 최선을 다하여 그 일을 하라.
그리고 때가 되면 미련없이 그 일을 하나님 앞에 다시 내려놓아라
그러면 하나님은 다음 사람을 통하여 그 일을 계속해 나가실 것이다.’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을 넘어서서 겸손하게 있으나마나한 사람으로 물러설 줄 아는 사람이 그립다. <948/10142014>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