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칼럼> 우리가 구원파와 무엇이 다른가

최래원목사 / 올랜도 선한목자교회 담임
 한국은 세월호 침몰이 일어 난지 세 달째가 다 되갑니다. 그 이후 떠들썩한 분위기는 조금은 가라앉았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수습되거나, 해결되거나, 정확한 정황이 밝혀진 것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관피아가 척결되거나, 기강이 바로 잡힌 것도 아닙니다. 더더욱 벌써 2달 가까이 구원파의 수장으로 있는 유병언 이라는 사람은 오리무중 상태입니다. 신출귀물 합니다. 구원파를 추정하는 사람들은 금수원이라는 그들의 아지트에 진을 치고 이번에 몰리면 죽는 다는 심정으로 그들의 종교와 교주를 비호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번 세월로 침몰로 그 동안 수면아래서 잠잠히 번식하던 구원파가 다시 수면위로 올라왔습니다. 기존 교회들의 관심에서 밀려나 잠잠하던 시기에 그들은 교회 목사들을 포섭해 자신들이 이단이 아니라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변호해 주도록 금품을 건냈고 그 뇌물을 받아 드신 분들이 하나 둘씩 밝혀져 교계에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요즘 성도들과 식사하는 자리에 있다 보면 유병언 이야기를 종종 합니다. 한국의 정보망이 이렇게 허술하단 말인가? 유병언 한 사람도 아니고 여러명이 함께 움직이는 그룹 도피자들을 잡지 못한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이구동성으로 성토합니다.
분명 한국의 윗선에 유병언을 돕는 사람들이 있다는 결론입니다. 그들이 다 뇌물을 먹었기 때문에 유병언이 잡혀 불면 줄줄이 감옥행을 갈 것이 뻔하기 때문에 정보를 입수해 찾아가면 이미 정보를 흘려 도주한 후에 뒷북을 친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벌써 국정원 안가에 잡혀 있고 적당한 때 수위조절을 한 후에 잡는 척 할 것이라는 그럴 뜻한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
더 이상한 것은 문제가 터지면 파리떼처럼 들끓는 야당들이 유병언을 번번히 놓치고 있는 검찰에 대해 국정조사니, 비호세력이 있다. 라는 논평하나 내놓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그쪽 사람들도 꽤나 떨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구심을 가져보기에 충분한 한국 사회의 상황입니다.
1960년대 시작된 구원파는 점점 교세를 확장해 1987년 오대양 사건과 세모 유람선 침몰, 그리고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이 모든 사건이 바로 유병언이가 이끌고 있는 구원파에 속해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구원의 교리는 아주 간단합니다.
한번 구원받은 사람은 어떤 죄를 저질러도 죄인이 아니며 천국에 간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의 회개가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계속 회개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구원받지 못한 증거라는 것을 내세워 사람들에게 구원을 의심하게 만들고, 불안한 나머지 그곳에 가면 확실히 구원받은 날짜를 알 수 있다는 사실을 미끼로 많은 사람들을 미혹에 빠지게 한 이단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한번 구원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구원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한번 구원받았으니까 이젠 내 맘대로, 온갖 비리와 성도들의 돈을 갈취해 개인의 배를 불리고 교주인 유병언 가족들이 호화로운 생활과 부를 축적해 자기 맘대로 써댔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왜 배 사업에 뛰어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배로 시작한 그들의 배불림이 결국 배로 망하게 된 배은망덕한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문제는 여전히 그들은 그 사실을 신앙으로 신봉하고 결사 항쟁(?)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정말 독립투사들이나 되는 듯 생각되나 봅니다. 그런데 그 내막이 따로 있는 듯 합니다. 그들이 지키고 싶은 것은 그들이 믿은 종교나, 예수님이 아니라 바로 유병언이고 그가 자기들의 생계를 책임져 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인들은 유병언이 벌인 사업에 직, 간접적으로 참여해 일정한 지분과 더불어 생계유지의 수단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유병언이 무너지고 모든 것이 빼앗기면 자신들이 투자(투자보다는 강요로 인해)한 모든 것들이 물거품이 돼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소위 그들을 이단이라 말하는 정통교단들도 그들과 별로 다른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구원을 날마다 두렵고 떨림으로 믿고, 또 확증하며 하루 하루를 살기보다 한번 구원받았고 세례 받았으니까 이젠 아무렇게나 살고, 신앙생활도 자기 편리한 대로하고, 자신이 믿고 싶으면 믿고, 말고 싶으면 마는 식으로 신앙인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성도들의 헌금으로 사업에 뛰어 들어 이윤을 창출하고, 주식에 투자해 교회의 재산을 불립니다. 그러면서도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돈을 불리는 일이면 무엇이든지 서슴지 않고 있는 대형교회들의 이윤창출을 위한 사업들에 성행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의가 내 것이 되었기 때문에 이제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식의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우리나 그들이나 무엇이 다릅니까?
가만히 우리를 한번 돌아보십시오. 교회 다니면서 직분 사재기하고, 교회 돈 횡령하고, 집 사준다고 돈 받고 날라버리고, 중직자들 중 정기적으로 노름하러 다니고, (그러면서도 치매 예방엔 최고라고 자랑하고 다님) 예배 빠지는 것은 예사이고, 멋진 식당에 가서는 비싼 돈 내고 저녁먹고, 골프치고 이겼다고 저녁 값에 술값까지 내고 팁까지 멋지게 내는 분들이 주일에 교회에 와 예배드리면서 하나님께 드릴 예물 하나 준비해 오지 않고, 미끼에 고기 걸리듯 주머니에서 대충 잡히는 종이돈 한 장 꺼내 헌금하면서 교회 식사시간에는 교회 밥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며 두 그릇씩 해치우고……이 정도면 현대판 종교적 놀부 아니고 뭐겠습니까?
아무리 세상이 어렵고 힘들어도 적어도 내가 사랑하고 믿는 신에게 최소한의 양심과 정성과 마음은 가지고 있어야 그래도 종교인이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하물며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우리들이 어디서 그런 종교를 배우고 종교 행위를 배웠는지 정말 궁금할 때가 많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모습이라면 누가 교회라는 공동체를 신뢰하고 찾아오겠습니까?
적어도 예수 믿기 전에는 그렇게 살았다 해도 예수 제대로 믿고 구원을 받은 증거를 가슴에 지니고 다닌다면 그렇게 살았던 삶이 부끄럽고 죄송해 다시는 그 옛 생활 세상적인 쾌락과 만족을 위해 살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단이라는 구원파는 도망 다니는 자기 교주 보호하기 위해 목숨을 거는데 교회는 예수 이름을 위해 목숨 걸고 그 거룩한 이름을 지켜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그 이름으로 예배드리는 교회 안에서 자기의 기득권, 교회재산, 자기편 살리기 위해 싸우고, 멱살 잡고 깨지고, 서로에게 상처주기를 예사로 생각합니다.
우리가 그 이단들과 무엇이 다릅니까? 우리는 내가 믿는 구원에 대한 확신도 자신 없이 머뭇거립니다. 그렇다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지키려는 결연한 의지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복음을 위해 목숨 내걸 수 있는 용맹, 용기조차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도대체 뭐가 그들과 다른 것입니까?
구원 파들이 믿는 예수(사실인지, 표면적인지는 몰라도)와 우리가 믿는 예수가 무엇이 다릅니까? 우리 기독교는 믿는 것도 그 신앙을 따라 살기도 쉬워도 너무 쉽습니다. 이것은 분명 은혜임이 확실한데 그 은혜를 너무 값싸게 만들어 버렸고, 쓰레기 취급해 버렸습니다.
정말 그것이 은혜라고 생각된다면 그리고 그 은혜를 받았다면 우리는 지금처럼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아예 은혜를 모른 사람은 선처라도 받습니다. 용서받을 기회가 주어질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더 이상 용서가 없습니다. 더 이상 긍휼도, 자비도 용인되지 않습니다. 은혜 받은 자로 행하고 살지 않은 사람들이 은혜를 몰랐던 사람들에 비해 그 심판의 정도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 아니 구원 파들보다 보다 더 낮지 않는 다면 천국은 먼 꿈에 불과합니다.
<935/0709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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