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장미꽃을 바라보며

<칼럼리스트 / 탬파거주>
한여름이 되어 낮의 길이가 길어진 만큼 햇볕이 쬐어주는 시간도 길어지고 그로 인해 날씨도 더워졌다. 지구의 자전의 반복으로 벌써 6월이 하순을 향하고 금년의 반도 넘어섰다. 가감(加減)을 번복하는 온도의 상승에 비례해 장미도 제철을 만나 요염한 자태를 뽐내며 한껏 제 자랑에 흥이나 있다.
울긋불긋 각종 색채를 띠고 피어난 장미꽃에는 장미꽃말이 내재되어있어 그를 선호하여 꽃을 선물하는 이의 마음과 사랑, 의지와 열정을 대변해 주고 있는 듯 하다. 빨간색의 장미는 욕망, 열정, 기쁨, 아름다움, 절정을 표현하고 하얀 장미는 존경, 순결, 순진, 매력이며 핑크장미는 맹세, 단순, 행복한 사랑을 뜻하고 노란색장미는 질투와 완전한 성취, 사랑의 감소이고 빨강과 하얀 장미는 물과 불의 결합, 반대되는 것들의 결합을 뜻한다. 그리고 파란장미는 얻을 수 없는 것, 불가능한 것의 꽃말을 의미한다고 한다.
장미는 관목성(觀木性)의 꽃나무이다. 약100종의 야생종이 자연 잡종과 개량을 통하여 세계에서 널리 개량 재배되고 육성되어 현재에는 무려6~7천가지 종류의 장미가 존재한다고 하니 놀라울 일이다.
생명공학자들의 끊임없는 연구와 품종개발로 해마다 매년 2백종 이상의 새로운 품종이 개발되고 있다고 한다.
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6월, 어느덧 장미의 계절이 돌아왔다. 길을 걷거나 공원을 산책하다 보면 담벼락이나 화단에 빨갛고 노랗고 연분홍 빛과 또는 하얀색으로 아름답게 피어난 장미꽃들을 볼 수 있다. 특히 빨갛게 피어난 넝쿨장미는 유난히 색갈이 붉은데다가 꽃송이도 크고 탐스러워 어른들 주먹만하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어느 해보다 송이가 알차고 색깔이 진하다. 그만큼 향기도 진하게 배어난다. 지난겨울의 혹독한 한파를 이겨낸 갸륵한 인고의 산물이라 여겨져 한결 사랑스럽고 아름다워 보인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향수는 유럽 발칸반도의 장미에서 추출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전 세계 향수원료의 70%이상을 생산한다는 발칸반도의 장미는 어둠이 짙고 추운 새벽 2시 전후로 채취해야 가장 향기로운 향수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장미는 사람을 닮았다. 아니 우리들 인생이 장미를 닮았다고 하는 편이 났다. 힘들고 어려운 역경을 많이 치룬 사람일수록 아름다운 인간의 향기를 지니고 있는 것을 보면 장미에 가시가 있는 까닭을 이제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아름답게 피어난 장미를 보면서 내 젊은 날의 사랑과 열정을 떠올려 추억을 상기해보았다. 아스라한 회억(回憶)을 더듬어 회상했고 망각의 늪으로 사라진 추억만큼 아픔의 고통도 되새겼다.
순수한 젊음은 고통의 터널 저 속으로 사라졌지만 터널속의 그 울림은 향기로운 반동이 되어 나의 귓가에 다시 울려 퍼지는 듯하다.
아름다움에는 숨은 가시가 있고 가시에 찔린 젊은 날의 무모(無謀)에 대한 징벌의 채찍이 다름 아니며, 그 상처는 원숙(圓熟)으로 영그는 성장통임을 인생의 노을에서야 뒤늦게 깨닫는다.
6월의 햇빛은 눈이 부시도록 빛난다. 유독 이 6월의 햇살이 눈부시도록 빛나는 것은 유월의 산과 언덕, 시냇물의 아름다움 때문이다. 숲의 어린 나뭇잎들이 꽃을 떠나보내고 윤기 나는 연두색이 짙푸른 녹색으로 숨 가쁘게 변해가며 산등성이를 넘는 바람이 나뭇잎들을 흔들어대면 산은 녹색물결이 출렁이듯 종일 출렁거린다. 그런 산의 흔들림과 끝없는 녹색의 지평선위로 훈풍이 불어오면 아득한 벌판 저 넘어 끝에서 뭔가 끝없이 젊은 에너지가 나에게 달려오는 듯하다. 한줄기소낙비가 열기에 차오른 대지를 식히며 숨 가쁘게 지나가고 난후 푸른 숲 위로 비가 걷힌 하늘의 흰구름은 동화속의 궁전처럼 황홀하다. 숲의 청량한 공기사이를 공명하는 새소리들이 종일 햇빛을 나무들 사이로 물어 나른다. 콘크리트 담벼락위로 칡넝쿨처럼 길게 기지개를 켜는 듯 올라온 넝쿨장미의 긴 가지마다 환희의 절정에서 단발마 처럼 끊일 줄 모르고 멍울져 피어오르는 붉디붉은 장미꽃다발을 보면, 내 마음을 흔들어대는 영혼이 내게 다가서듯 그 모습의 환영으로 하루가 종일 눈부시다.
기분 좋은 느낌은 삶의 어떤 방향이다. 바라다보는 것이 선택이듯 그쪽방향을 바라다보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것이다. 넝쿨장미, 비갠 하늘의 하얀 뭉게구름들, 지평선을 넘어 숲을 품어보고 떠나가는 바람과 그 숲의 흔들림들, 숲을 공명하는 새소리들이 내게 보이지 않는 날이 항상 더 많았다. 아마 넝쿨장미들도 항상 나를 바라보며 있었는데 내가 그들을 알지 못하고 지나쳐 버린 날이 더 많았을 것이다.
무심으로 바라봄도 유죄이겠지만 날 바라다보는 사물들을 보지 못하고 삭막하게 살아가는 나의 삶 또한 더 큰죄가 될 성싶다.
세상에는 자신을 위해 존재하기보다는 항상 타인을 위해 존재하는 것들이 많이 있다. 장미는 자신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장미는 아름다운 꽃을 피워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해주고 읽어주며 말없이 속삭여준다. 이 세상에는 가시와 장미꽃과 같은 사람들이 있다.
가시처럼 오해와 비난을 받으면서도 누군가를 위해 살다가 쓸쓸히 눈을 감는 사람과 자신만을 위해서 살지만 사람들로부터 부러움과 인정을 받고 사는 사람이 바로 그들이다.
오늘도 우리는 장미꽃 인생을 꿈꾸며 잠이 든다. 바쁘다는 핑계로 제대로 보지 못했던 자연의 모습과 6월의 귀빈 장미꽃, 그리고 맑은 햇살을 만끽하는 것, 가족과 함께 식탁에 앉아 정담을 나누는 것,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소중히 여기는 것, 등등 사소한 일상들이 우리들의 생활을 충실하게해주는 활력소이다. 그런 일상이 균형감각을 만들어준다고 생각한다. 봄엔 봄꽃을 보고, 여름엔 냇가에 발을 담그고 하늘에 떠가는 해맑은 구름을 바라보며, 가을엔 단풍놀이도 가고, 겨울엔 눈사람도 만들며 살아야 인간다운 삶이지 매일매일 일에 치여 사는 것은 그저 불쌍한 생활뿐이다. 오늘, 지금이라도 밖으로 나아가 아름답게 피어난 장미꽃을 보고 화사한 6월의 햇살에 몸을 맡기며 장미꽃 향기 같은 그윽하고 아름다운 인간의 향기를 풍겨가며 세상을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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