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춘3월의 꽃, 매화

<칼럼리스트 / 탬파거주>
아직도 시카고를 비롯한 미국의 북동부지역은 추위와 찬바람이 머물고 있는데, 한국의 남도지방에는 여기저기서 봄을 맞이하기 위해 피어나는 꽃들의 향연이 줄을 잇고 있다는 소식이다. 발아래 이름 모를 야생화부터 하늘 가까이까지 뻗은 목련까지 참고 참았던 꽃봉오리를 터뜨린다. 3월에 피는 꽃들은 유달리 화려하고 예쁘다. 겨우내 회색빛으로 물들었던 산과 들, 강 사이에서 피어나는 꽃들은 유난히 더 눈에 띈다. 하나하나 살펴보면 색이나 향은 여름에 피어나는 꽃 장미에 비할 바가 못 되지만 산하와 어우러지면 그 화려함이 더해진다. 겨울이 길면 길수록 화려함도 강하며 반가움도 배가된다.
매화꽃, 산수유화, 동백꽃 등의 봄꽃들이 남쪽지방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어느새 소생의 기쁨이 넘쳐나는 봄의 상징인 3월이 되었다. 계절의 도래를 알리는 꽃의 전령이 매서운 눈보라 칼바람을 온몸으로 견디며 싹을 틔우고 있다. 여린 새싹이 얼음을 녹이며 꽃을 피우는 모습을 볼 때마다 놀라운 생명력의 탄생에 절로 탄성이 솟아난다. 이름 모를 야생화이든 쓸데없는 잡초이건 간에 그 무엇이든 생명의 탄생은 숭엄하다. 도무지 장기간 얼어붙었던 동토(凍土)의 땅에서 모든 사물들이 숨을 멈추고 죽어 있을법한 그런 극한상황을 견뎌내고 지상으로 나래를 펴며 싹을 틔워내는 숨막히게 경이로운 기적의 순간, 우리의 마음은 더없이 겸손해진다. 3월은 작은 꽃이 보여주는 기적 앞에서 일상의 오만함을 반성하는 시간이다.
연약한 풀꽃들이 얼은 땅속을 헤집고 피어나는 비결은 무엇일까? 사나운 곡괭이 질에도 끄덕도 하지 않고 틈새를 내주지 않던 동토의 땅에서 민들레와 앉은뱅이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오롯이 피어있다.
꽃은 자기체온으로 조금씩 얼음을 녹이며 싹을 틔운다. 극한상황에서도 생명을 이어가려는 꽃의 투쟁은 신비로움 그 자체다. 이렇듯 이른 봄에 피는 꽃은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한다. 그러나 그 속엔 범접 할 수 없는 우아함과 세상의 미련과 욕망 따위는 홀연히 떨친 듯한 정결함이 배어있다.
고난을 이겨낸 사람에게 짙은 인간의향기가 풍기듯이 꽃 역시 저마다의 향기와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봄에 피는 꽃 중에서 나는 유독 매화꽃을 좋아한다. 이른 봄 내 고향 산등성이의 양지바른 밭둑 가장자리에 아름답게 피어나는 매화꽃은 고향을 떠난 지 오래가 되었는데도 그 자태와 우아함을 잊지 못하고 있다.
매화는 세속의 티끌 한 점 없는 맑고 깨끗한 마음과 더러운 풍속에 굴하지 않는 절개와 봄날 같은 희망을 상징하는 꽃으로 옛부터 많은 문인들이 달과 함께 맑고 깨끗한 시로 표현하기에 적절한 소재로 인식되어왔다. 또 매화를 좋아하는 이유로 혹독한 겨울을 이기고 제일먼저 꽃망울을 틔워 봄이 왔음을 알리는 우주의 기별자로서 사랑하기도 하였다.
특히 조선시대 퇴계 이황선생께서는 매화를 특별히 사랑하여 매화에 대한 시(詩)를 많이 남겼는데 퇴계선생의 대표적 시 가운데 두드러진 것이 선계(仙界), 달빛, 매화가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깨끗하고 고요함(淸淨), 또는 맑고 참됨(淸眞)이다. 선계는 깨끗한 공간, 달빛은 고요한 분위기, 매화는 맑은 빛이다. 이들이 둘 또는 셋이서 서로 얽혀 나타내면서 깨끗하고 고요하고 참된 세계를 바라보면서 찾고 즐기는 것이 곧 퇴계의 주리론(主理論)의 시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다. 퇴계선생은 자신이 지은 매화시 91수를 모아 매화시첩(梅花詩帖)이라는 독립된 시집을 유묵으로 남겼다.
매화나무는 장미과에 속하는 낙엽활엽교목이다. 꽃은 이른 봄에 잎보다 먼저 피는데 보통 잎겨드랑이에 1~3송이가 달리며 꽃빛은 흰색, 담홍색, 핑크색 등 품종에 따라 여러 가지이다. 개화기는 2~4월이고 결실기는 6~7월이다.
매화꽃에서 열리는 매실은 우리들 몸과 건강에 너무나 좋은 많은 요소들을 간직하고 있다. 중국이 원산지이며 한국에서는 중부 이남지방에서 잘되며 개성땅 이북에서는 열매를 맺지 않아 과수로서 재배가 되지 않는데, 최근에는 지구의 온난화 현상으로 이제는 서울 및 경기도 이북지역에서도 매실이 탐스럽게 열린다고 한다. 매화나무의 꽃은 아름답고 그윽한 향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왔다.
매화나무는 화목구품(花木九品)중 일품에 속하는 나무이다. 또한 북풍한설 추운겨울에 꽃을 피운다고 해서 설중매(雪中梅)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또한 어떠한 어려움도 이기고 견디어낸다는 절개를 비유할 때 매화나무를 인용한다. 이렇듯 매화에 얽힌 시나 시조들이 옛부터 수없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봄기운에 매화가 가장 먼저 피어나고 이어서 앵두나무, 살구나무, 복숭아나무, 배나무의 꽃이 피기 시작한다. 매화는 겨울나무이다.
매화는 눈 속에서 꽃을 피우며 일찍이 봄을 알리는 나무이다. 매화의 종류로는 매화나무, 옥매(산옥매), 백매, 홍매(겹홍매화), 만첩홍매실 등이 있다. 매화는 봄을 알리는 나무라고 해서 춘고초(春告草)라고도 부른다. 사군자(四君子)에는 매란국죽(梅蘭菊竹)이 있다. 흔히 매화나무라고하면 꽃을 보기 위한 것이고 열매를 중히 여길 때는 매실나무라고 부른다.
매화나무의 매(梅)자를 중국에서는 “메이”라고 부르고 일본에서는 “우메”라고 부른다. 오매(烏梅)라는 것은 덜익은 열매를 훈제한 것을 말하는데 그 이름의 유래는 훈제한 약재가 마치 까마귀의 젖은 날개처럼 검고 윤기가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화려한 색과 향기를 뽐내는 매화꽃들은 모두가 아름답다.
이렇게 유독 매화꽃이 아름다운 건 계절의 시작을 알리는 봄의 전령이라는 특별한 직책 때문이다. 추위를 견뎌낸 강인함과 두려움 없이 눈밭에서 꽃을 피우는 투지, 그러면서도 기품이 있다. 그래서 끝없이 순환하는 생명 속에서 봄을 맞아 개화하는 매화꽃이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는지 모른다. 온 정열을 다해 꽃을 피워내는 봄꽃과 매화꽃의 의지를 보면서 우리 또한 저들과 같은 생명이라는 감격에 젖은 3월이면 좋겠다. <myongyul@gmail.com> 921/0326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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