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주인바꾸기 운동에 동참하자

최래원목사 / 올랜도 선한목자교회 담임

“교회의 주인을 바꿔야 합니다”

여러분 교회의 주인이 누구십니까? 너무나 우수광스러운 질문이 될 수 있습니다. 어쩜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 주인이 맞을 수도 있고, 또 틀릴 수도 있습니다. 단순한 것 같은 이 질문이 여러분의 교회관과 신앙관을 결정한다면 매우 신중하게 답해야 할 것입니다.
그동안 교회의 주인 행세를 버젓이 해왔던 많은 종류의 주인들이 있어왔습니다. 재력을 가진 재력가, 혹은 목사, 그리고 교회를 설립한 장로, 교회 내 막강한 힘을 가진 집사회, 아니면 보이지 않는 어떤 큰손..등
위에 나열한 것들은 정답과는 매우 거리가 먼 오답 대상들입니다. 물론 위에 나열한 모든 부류의 사람들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섬기는 것은 귀하지만 만약 그들 중 누구라도 주인이 되려고 한다면 교회는 분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이 이땅에 세우신 교회는 분명 머리가 하나인 교회입니다. 우리는 가끔 만화 영화에서 보던 이상한 존재 즉 머리 두개 달린 짐승, 아니면 머리 수없이 많이 달린 그런 이상한 짐승과 같은 교회를 만들어 왔습니다,
머리가 하나인 것은 교회는 수직적인 구조가 아니라는 것을 말합니다. 교회는 몸입니다. 몸은 수평적 관계를 통해 서로가 발전하고, 서로를 북돋아 주는 것입니다. 즉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 밑에 우리 모두는 한 몸으로 수평적이고 유기적인 공동체를 몸이라고 부르고 그 몸을 교회라 부르는 것입니다. 만약 목사가 교회의 머리인 교회가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라 목사의 집단일 뿐입니다. 혹 돈 많은 재력가가 교회의 머리라면 그것을 교회라 아니라 재력가의 집단일 뿐입니다.
교회에 주신 축복된 기능들 즉 목사, 장로, 집사의 기능은 앞서가며 성도를 섬기고, 교회를 세우며, 사단의 궤계로부터 교회를 보호하고, 성도를 온전케 하는 일을 위해 세워진 것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누구든 그리스도 밑에 2인자가 되려고 하거나, 서열을 강요하고, 자신의 권위 아래 성도들을 두는 목사들이 있다면 분명 이상한 신학교를 나왔던지, 아니면 성경을 자기 맘대로 해석해 적용하는 몰지각한 사람일 것입니다. (대부분의 목사님들이 그렇지 않습니다)
유리하는 양들, 먹지 못해 핍절한 양들, 바깥에 방치해 두어서 다른 짐승들에게 잡혀먹기 일보직 전의 양들을 돌보며, 보호하고, 먹이도록 교회에 목자를 주셔서 말씀으로 먹이고, 가슴으로 품고, 손과 발로 보호하고, 무릎으로 중보하도록 소중한 역활로 주신 것입니다. 목적은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이 섬김을 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즉 모든 사역자는 충성됨과 성실함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을 그분의 격에 맞는 자녀들이 되도록 돕고, 훈육하고, 섬기는 종이 되도록 교회에 주신 축복 의 통로입니다. 그런 종이 혹 자신의 영달과 자기 이름을 알리고, 자랑하다면 그 사람은 직무위기, 혹은 권한 남용의 죄가 더해 질 것입니다.
지금의 교회는 어떻습니까? 섬김의 대상과 섬기는 자가 바뀌지는 않았습니까? 그러다 보니까 종이 주인이 되려고 하고, 종놈이 종님이 되려고 합니다. 심지어는 종이 자신의 주인을 그분의 집에서 내 쫒아내고 자신이 주인인냥 행세를 하기까지 합니다.
주님이 교회로 다시 돌아오셔야 합니다.

“성도들의 주인이 바뀌어야 합니다”

성도들은 언제부터인가 주인되신 그리스도를 외면하고 돈을 주인으로, 사회적 신분을 주인으로, 땅과 건물을 주인으로, 심지어는 교회의 직분을 주인으로 모시기 시작했습니다. 교회는 점점 세상이 되어가고 세상이 어딘지, 교회가 어딘지 조차 분간할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세상이 어떤 상태인지를 보려면 교회에 가면 알 수 있다는 비아냥 섞인 말을 들은지 한 두해가 아닙니다. 기독교를 개독교라 불리는 안티들의 몰지각한 비아냥을 닭쫒던개 지붕 쳐다보듯 멍하게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교회는 대박을 꿈꾸는 사람들이 모이는 복권 판매소가 되 버렸고, 어느 교회가 더 복을 받고, 어느 교회가 더 기도 응답이 잘 되나를 보면서 교회를 선택합니다. 교회가 무당집이 된 것입니다.
그렇게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면서 거의 목사들은 자아도취에 빠져 자신의 능력이 출중하고, 자신이 가진 어떤 자원이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신비한 힘을 지닌 양 잔뜩 어깨에 힘이 들어갑니다. 이 정도 수준의 교회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로 세우고자 원하신 교회라면 예수님은 이 땅에 세워질 교회를 위해 가장 치명적인 실수를 하신 것이고 그것을 위해 자신의 전부를 쏟아 부으신 것만큼 아까운 일이 없을 것입니다. 성도들의 삶의 주인이 바뀌지 않는 한 교회는 더이상 소망이 없습니다.

“목회자 자신의 주인을 바꿔야 합니다”

정말 목사들의 주인이 주님 한 분 일까요? 가난했을 때 한국교회의 목사님들은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산으로 올랐습니다. 자신의 처자식은 굶기면서도 가난해 끼니도 없는 성도들에게 몰래 쌀 한바가지 놓고 가면서 그것이 하나님의 소명인 줄 알고 그 배고픈 밤 기도실에서 허기진 배를 찬송과 눈물의 기도로 채우셨습니다. 그래서 그 굶주린 가난이 영성을 만들었고, 기도를 강화시켰고, 무릎을 튼튼하게 만들었으며, 하늘과 더 가깝게 만나게 했고, 가난의 영성이 목회자들의 삶에 영적 권위가 임하게 했고, 가난의 신학이 학문에 갇혀있던 하나님의 능력을 목회 현장안으로 임하게 만들었습니다.
저를 포함해 많은 목사들이 너무 부자가 되었습니다. 부유해졌습니다. 부족함이 없는 누림의 삶을 삽니다. 그래서 영성이 사라지고 없습니다. 능력이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배고픈 가난의 영성을 들으면 하나같이 콧방귀를 낍니다. 그 말이 옳다해도 목사는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Mega Church Dream을 바랍니다. 유능하고, 배운 것이 많은 분들은 대형교회에서 자신의 능력을 알아줘 점지(?) 해 불러주길 간절히 원합니다. 주님의 고결한 부르심은 온데 간데 없습니다.
현대 교회의 모델은 계시록 3장의 라오디게아 교회와 흡사합니다. 어쩌면 그리고 똑같고, 약속이나 한 듯 그렇게 닮아가고, 그렇게 변질되어 갈 수있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보면 8번째 교회가 더 이상 이 땅에 없는 것이 다행인지도 모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교회의 주인을 예수님이 아닌 돈과 부와 명성에 자리를 내줘버린 교회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충성을 잃어버린 교회입니다. 신앙에 대해선 어정쩡한 태도를 취한 교회입니다. 자신의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을 분별력을 상실한 교회입니다. 겉만 도금한 가짜 신앙으로 치장하고 있습니다. 의의 옷 즉 구원의 옷을 벗고 벌거벗은 창녀의 삶을 살고있습니다. 한치 앞 도 볼 수 없는 영적 소경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도 주님은 그런 교회까지도 사랑하신다고 하십니다. 그분이 사랑하신다고 하실때는 아직 한가닥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기회를 주고 계십니다. 열심을 회복하고, 회개하고 주님을 진심으로 내 마음의 보좌, 교회의 중심의 주인으로 모셔야합니다. <920/0319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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