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이웃사촌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너의 이웃을 사랑함을 너 자신을 사랑하듯 하라.
성경말씀 신약전서 누가복음10장 29절에는 율법사가 예수님에게 ‘이웃이 누구냐?’고 질문했다. 예수께 여짜오데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이오니까?’ 예수님께서 비유로 아래와 같이 알기 쉽게 표현했다. 누가복음10장 30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서 거진 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인이 여행 중 거기에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주고 이튿날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 갚으리라 하였으니….” 네 의견에는 이 세사람 중에 누가 강도만난자의 이웃이냐? 가로되 “자비를 베푼자니이다” 예수님께서는 자비와 사랑을 베푼자가 이웃이라고 하셨다. 이웃에 산다고, 가까이 있다고, 혹은 자주 만난다고 이웃이 아니라는 뜻이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여러분의 교회에 다니는 교회의 교인들이 진정한 당신의 이웃이라고 생각을 하는가? 목사님, 장로님, 권사 집사들이 정말로 당신의 사랑스런 이웃이라고 생각을 하는지? 위의 예수님의 말씀대로 자비와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진정한 이웃이다. 얼굴은 몰라도,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용서와 자비를 실천하는 사람이 진정한 이웃이다. 이웃은 바로 내가 되어 주어야 한다.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고 베풀어주는 사람이 되어주어야 한다. 영혼을 살리고 마음의 힘이 되어주는 사람의 이웃이 내가 되어야한다. 이것은 곧 상대를 나처럼 소중하게 여김을 의미한다. 상대는 곧 나다. 즉 상대는 곧 예수님이다 라는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다.
비꼬고 헐뜯고 시기, 질투하며 조롱하고 업신여기는 사람은 나의 진정한 이웃이라고 할수 없다. 성경말씀에는 그리스도의 형제들은 어려운 사람이나 불우한 이웃을 돌보고 위로하며 나누고 협조하고, 무 종교인일지라도 어려운 처지에 놓였거나 불쌍하고 외롭고 힘든 이들을 도와주는 것이 참뜻이다. 그러므로 베푸는 사랑과 인정에는 대상이 따로 있을 수 없다라는 뜻이 내포되어있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의 대상이고 돈과 재물이 있거나 없거나 자신이 지니고 있는 따듯한 마음과 인정을 남들에게 베풀고 도와주는 자비의 행동을 실천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 대상이 선한사람이건 죄인이건 상관하지 말 것이며 죄인에 대한 심판은 하나님께서 할 것이고 우리는 대상을 구별말고 선의에 입각한 자선과 사랑의 행동을 실천에 옮기면 되는 것이다.
별도의 말로 내용을 옮겨서 글을 이어 설명을 드리자면 명심보감에 원수불구근화(遠水不救近火), 원친불여근린(遠親不如近隣)이란 말이 있다.
이 뜻은 멀리 있는 물은 가까운 곳의 불을 끄지 못하고, 멀리 있는 친척은 가까운 이웃만도 못하다는 말인데 우리말에 있는 이웃사촌이란 말과 같은 맥락의 뜻이다.
아무리 가까운 형제지간이라도 멀리 떨어져있는 이상 위급한 사태가 발생한다면 실제로 도움을 주고 부담 없이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은 형제가 아니라 역시 이웃뿐인 것이다.
그러나 담장 하나 이웃이라 하더라도 평소에 서로가 사이좋게 지내지 않는 이상 이러한 부탁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평소 이웃끼리 다정하게 지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이웃은 부부와 같다고나 할까. 아무리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고 하더라도 오랫동안 함께 살다보면 서로의 약점과 불만도 많아지게 마련이고 만년에 가서는 천생 연분이 아니라 천생 원수지간으로 참으며 살아간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이웃 간의 원수는 단순한 원수가 아니라 평생을 해로해온 부부처럼 작은 불만을 참고 살아오다 보면 이웃사촌으로서의 깊은 애정과 감추어진 인정이 어려운 일이 생겨났을 때 나타난다는 말이 되겠다. 특히 외국에 이주하여 나와서 살고 있는 우리들 이주 동포사회에서는 이러한 이웃사촌에 대한 정은 유별나다.
언어도 잘 통하지 않고 이질적인 문화에 잘 적응하지 못한 채 살아가다가 어려운 문제에 부닥치게 되면 제일먼저 찾게 되고 도움을 요청하게 되는 곳이 우리 동포끼리의 이웃이고 이러한 도움에는 만사를 제쳐놓고 나서서 서로 도와가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나는 몇 십 년 동안 살았던 시카고를 떠나 은퇴를 하고 새로 여생을 위한 보금자리를 마련한곳이 플로리다 탬파의 남쪽 서버브의 바닷가 조그만 소도시이다.
이곳에 이사를 와서 보니 주변에는 한국 사람이라고는 한사람도 볼 수가 없고 거의 대부분이 백인층들로 구성된 전원주택단지이다. 초면인 이웃사람들을 처음 만날 때 마음속에서는 상대가 누구인지 모르는 이질감과 경계심이 생겨났는데, 막상 직접 대하고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사정을 알고 보니 이내 금방 친숙한 이웃으로 가까워질 수 있었다.
젊은층의 직장인들이 많이 사는 내 이웃의 사람들은 무척이나 친절하고 주택단지내의 공공시설 이용서부터 시청의 민원사항 안내, 그로서리, 가구 및, 가전제품구입 등등을 소상하고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안내를 해주었다. 모든 것을 낯설지 않게, 그리고 따듯하게 이웃사촌으로서 친절하고 가족처럼 대해주는 그들의 인심과 인정에 참으로 좋은 이웃을 만났다는 안도감과 평안함에 저절로 하나님께 감사의기도가 우러나왔다. 특히 이곳은 한국사람들이 거의 없다시피 한곳인데 의외로 어느 한국분이 내 집을 찾아와서 인사를 건넸다.
바로 물 건너 멀지 않은 곳에 한 단지 안에 사는 분이시다. 이분은 오래전에 이곳에 이주해 와서 미국인 주류사회를 상대로 조경 사업으로 성공한 사업가 김이태씨라는분이다.
이분께서도 같은 동족인 한국 사람이 같은 동네 전원 단지 안으로 이사 온 것을 무척이나 반기며 이사 와서 모르는 일, 힘든 일들을 자기 일을 제쳐두고 도와주며 편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 그분의 부인이신 Mrs, Kim께서도 이사를 온지 한 달이 넘었는데도 거의 매일 내 집을 방문하여 집안일을 도와주고 있다.
낯설고 물 설은 멀고먼 이곳 타향 땅에서 이렇게 좋은 내 동족, 따듯하고 사랑스런 이웃사촌을 만났다는 것이 너무나 큰 행운이고 축복으로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잊지 않고 드리고 있다.
사촌(四寸)이란 부모의 형제자매가 낳은 자녀와의 촌수를 말한다. 즉 아버지와 어머니의 형제나 남매가 낳은 아들이나 딸이 나와 사촌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피 한방울도 섞이지 않은 남인데도 아주 가깝고 흉허물 없이 지내며, 서로 돕고 정과사랑을 나누며 행복하고 재미있게 오손도손 살아 가는 친형제 같은 이웃을 이웃사촌이라고 우리는 부른다.
이것은 글자 그대로 이웃에 살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즉 나와는 아무런 혈연관계도 없지만 서로 이웃에 살면서 정이 들어서 사촌 형제처럼 가깝게 지내는 이웃이란 뜻이다. 나의 이웃에 사는 김이태씨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myongyul@gmail.com>  0717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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