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동칼럼> “어떻게 오셨나?”

이른바 “노크귀순”으로 불리는 구멍 뚫린 휴전선 사건의 여진(勵振)은 계속되고 있다. 물론 지휘 감독 체제상 부실을 이유로 고급장교 몇 명을 대충 어물쩍 징계하는 수준으로 넘어가려 한다.
지난 15일에는 국방장관이 직접 대국민 사과방송을 하기도 했다. 사건의 비중에 비해 스스로 책임을 지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CCTV도 고장 나 있었기에 있으나 마나한 장난감 같은 것이었고 사고 후 보고 체제도 갈팡질팡 이었다.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도 사건 후 8일이 지나서야 겨우 신문을 보고서야 알았다고 한다.
그러자 국민 보기 무안했던지 얼른 군복으로 차려입고 연평도를 방문하여 철통같은 경비를 강조하고 돌아왔다.
동시에 새로운 경계체제 계획이라며 내놓는 아이템들이 응급조치로써 땜질 수준이라기에는 엄청난 예산이 들어가는 조잡하고 엉성해 구설수를 못 벗어난다.
귀순자들을 위해 전화나 인터폰 설치 등의 급조된 대응책을 내놓더니 또 1,700억의 예산을 들여 스마트철책을 건설할 계획도 내놓는 등 우왕좌왕이다. 귀순병 뿐 아니라 노루나 멧돼지가 뛰어도 경보음이 울리고 지하땅굴을 파고 들어오는 것도 전혀 감지능력이 없는 졸속적인 대응책에 회의를 느낀다는 전문가의 발언도 나온다. 군령이 안서고 군기가 해이된 사회에서 경비과학화만 외친들 소용없는 일이다.
남한측의 무방비(무관심)속에 손쉽게 휴전선 철책을 넘어 귀순한 사례는 많았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면서 지난 10년간 비무장지대에서 일어났던 10여 차례의 북한 귀순병 사건 중 남한군이 적발한 사례는 4건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번에 일어난 육군 22사단 관활 경계지역인 강원도 고성군에서 일어난 소위 “노크귀순”으로 불리며 파장을 불러일으킨 동부전선에서 일어난 사고는 그나마 약과다. 서부전선에서도 이상(異常) 있었다. 듣기 민망한 수준이다.
2008년 4월 27일에 발생한 어처구니없는 사건이다. 귀순 후 남한에서 살아가고 있는 당시 북한 귀순병인 이 모씨의 생생한 증언이 나와 그 때의 상황을 실토하는 기자와의 대담내용은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 줬다. YTN단독보도로 터져 나온 그 날이 바로 공교롭게도 국방장관의 대국민사건이 있던 같은 날이었다.
구멍 난 3중 철책을 넘어 한국군경비초소 문을 두들겨도 아무 반응이 없자 30여 미터를 걸어서야 겨우 남한측 군 경비병 내무반의 문을 밀치고 귀순에 성공한 이번 동부전선 사례(10월 2일)보다는 훨씬 끔찍한 일이 벌어진 서부전선 사건의 내용은 이렇다.
30발의 탄환이 장진된 권총을 들고 온 무장귀순병이다. 목숨을 걸고 무사히 철책을 넘어 최전방 경계초소가 보이는 지점에서 남쪽 군인들을 향해 “장병” “장병”하고 불러 봐도 무응답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선 지친 몸을 가누기 위해 풀밭에 누은 채 30여분을 쉬다가 일어나 다시 몇 발의 공포도 쏘았다고 한다. 그제 서야 슬금슬금 나타난 남측 경계병이 “어떻게 오셨나”고 물으면서 그를 데리고 갔다는 충격적인 고백을 했다. 귀순병을 보고 어떻게 오셨냐고 묻다니 참으로 기가 막힌다.
긴급한 상황속에 귀순병을 맞고도 신속한 처리를 위한 기동성은 없었다. 어떻게 왔느냐고 묻는 관공서 민원창구처럼 느슨한 모습, 그것이 오늘의 대한민국 국군의 자화상이다. 군령(軍令)부재(不在)의 국가방어 체제, 언제부터인가 군령위반에는 한없이 관대해진 대한민국 국군이 걱정이다. 이래서야 어찌 국민이 군을 믿고 살아갈 수 있겠는가.
1.800여 년 전 에도 군령을 어긴 죄로 3대가 멸족당하는 사례는 빈번했다.
정말 죽여 아까울 촉나라 장수 마속을 단순히 군령을 어겼다는 죄로 눈물을 흘리면서 그 목을 베었던 소위 읍참마속(泣斬馬謖)이라는 사자성어를 곧잘 써먹는 대한민국에서 말이다. 까짓것 군령이 뭐 그리 대단하냐며 솜방망이로 대신하면서 좋은게 좋다는 식의 군의 명령계통이 전혀 무시되고 만다.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에서 말이다. 귀순병한테 “어째 오셨나”가 뭐야!.
kwd70@hotmail.com <853/1023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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