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동칼럼> 박근혜의 “사과”는 악어의 눈물인가. 

<김원동칼럼> 박근혜의 “사과”는 악어의 눈물인가.
박통 시절의 “인권”이라는 말 자체는 금기어로 치부되었다.
인권을 거론하는 자체가 자신의 통치행위에 반하는 불순한 이적행위로 간주했다.
그래서 산업화라는 구실 아래 적잖은 국민들이 희생당했으며 대한민국이 인권사각지대화 되면서 국제인권기구의 요시찰 대상국가가 되었다.
그래선지 군부정권이 민간정부로 바뀌면서 어두운 역사속의 부끄러운 진실들이 하나 둘 밝혀지면서 오래 만에 희생자의 가족들에게 국가가 피해당사자의 명예회복은 물론 판결에 의해 적잖게 보상해 주기도 한다.

지난 13일 부산에서다. 박근혜가 그 문제(인권)에 대해 아버지를 대신해 사과할 용의가 없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산업화(유신독재체제)과정에서 희생당한 민주화 인사들에 대해 아버지를 대신해 사과한다”며 허리를 굽혔다.
사과의 진실성을 두고도 아버지의 부채를 털고 가기 위한, 그리고 홀로 서기를 위한 제스추어라 해도 보는 이의 마음들은 그렇지 않다.
악어의 눈물론이 나오는 배경이다. “오늘 공주님의 사과는 악어의 눈물이오, 산업화라는 빌미아래 자행된 인권유린의 피해자들에게 립서비스 조차도 되지 못할 것임을 명심하라”는 야당측의 혹독한 비판성명이 뒤따랐다. 부산에서 있었던 그런식의 사과는 무의미하다.
유신독재 자체를 진지하게 사과하던지 악어의 눈물형 사과보다는 정면거부가 났다.
작심하고 덤비는 상대들이 있는 한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박근혜가 넘어야 할 “사과(謝過)”라는 산은 너무나 많다. 이러다간 심수봉이라는 그때 그 사람까지 찾아가 사과하라는 요구도 있을법하다. 어디 심수봉뿐이겠는가 마는…..

물론 대통령 자녀로써 조용하게 서민생활을 하는 것도 아닌 정치인, 그것도 대선 후보 1순위에 있는 막강 파워고 보면 어쩔 수 없이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아닌가하고 생각도 해봤다. 그녀가 이사장을 했던 정수장학회를 한마디로 “장물(臟物)”로 표현했던 조순형의원은 다시 박근혜를 향해 “연좌제 뒤에 숨어있지 말라”며 무시무시한 연좌제론도 펴고 나온다. 그러면서 미적지근한 사과 아닌 확실한 입장표명이 있어야 한다는 공격의 날을 세운다.
아버지가 집권했던 18년의 통치기간을 통털어 “독재”라고 고백하라는 강요다.
조의원이 누군가 조병욱박사의 아들로써 “미스터 쓴소리”로 이름난 7선의원이다.
그런가하면 이번에 박근혜의 동생 박근령을 자신들의 진영(자유선진당)에서 공천, 육여사의 고향인 옥천지역에 출마토록 했다.
그리고 보수를 포기한 언니 박근혜를 향해 “위기의 빠진 국가정체성 구출차원”이라며 출사표를 던지게 한 정당의 노련한 원로정치인이다.
한마디 뱉어내면 끝장 보는 정치인라는데서 그의 발언에 대한 파급효과는 중량급이다.

그러나 과거와 단절하라는 말로 들린다해서 시키는 대로 사과하며 아버지의 무덤을 밟고 가라는 뜻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
박정희의 공과(功過)를 따진다면 인권면에서 치룬 잘못 보다는 보릿고개를 극복하고 오늘의 한국이 있기까지의 “공(功)”에 대한 무개추가 훨씬 더 나간다는 사실이다.
그 요지부동의 박정희 향수표가 보수층으로 불리는 오늘의 박근혜를 지탱해 주는 흉년을 모르는 황금표밭이다.
그런데 자꾸 이런식의 사과행진이 일어난다면 그 표는 간다 그렇게 되면 박근혜고 새누리고 없다. 정치노숙자 신세밖엔 될 것이 없다.
아버지 박정희의 정치노선의 비판을 외치는 야당에게 동조하는 대리사과 행위보다는 합당한 정면 돌파구는 따로 있다.
그녀로서 피치 못할 정수장학회나 부산일보 등등 국민들의 별 거부반응 없이 소위 장물로 지적되고 분류되는 그런 문제에서 해법에 응하는 편이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일일지 모른다. 이제라도 그 불로소득의 장물들을 국가나 사회 혹은 피해가족들에게 환원하는 방법 말이다.
인권을 들먹이면서 아버지에 대한 대신사과 보다는 그곳(臟物장물)에서 녹을 받아먹은 박근혜로서는 오리발을 내밀 수 없는 문제 아닌가, 그것이 현명하다 연좌제니 악어의 눈물이니 하는 겁나는 소리를 비켜나가기 위해서라도 그렇다. <824/0321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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