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동칼럼> “비내리는 고모령” 

<김원동칼럼> “비내리는 고모령”
필자가 살고 있는 이곳에도 요즘 따라 부쩍 “중재”라는 말이 유행한다.
물론 북미주 동포사회 전체의 문제로써 대동소이하겠지만 발단은 줄지어 벌어지고 있는 송사 때문이리라.
필자도 송사라면 머리에 쥐나도록 당해 봤던 사람이다. 2등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뭐 대수로운 기록이라고 자랑삼아 떠들어 보며 이제는 지워버리고 싶은 그 악몽의 산책길을 새삼 기억을 다듬으며 걸어보고 싶지도 않다.
그 때도 보면 심심찮게 중재위원회 설치설이 돌다가 어느새 잠수함이 되곤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래서 최근에도 그런 말이 이곳에서 부쩍 나돌기에 유심히 봤다.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방법론에는 제 각각이다.
그런데 유독 엉뚱한 방향제시를 하는 사람들이 있어 여기 짚어보자.

즉 분쟁의 현장에 총영사가 나섰으면 한다는 황당한 사람들의 무식한 논리다.
자신들은 모국 관변단체의 소속원들이니까 총영사의 개입은 절대적인 효과가 있을법하다. 그들에게 총영사나 대사의 한마디는 그 자체가 곧 법이고 하나님이기에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모국공관장이 순수한 영주권자들의 단체나 모국관변단체가 아닌 거의가 주재국 시민들로 구성된 단체에 중재건 뭐건 개입했다가는 주재국에 대한 주권침해행위로 바로 추방당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그렇게 하겠다는 약속하에 입국했다.)

YS정권 때다. 당시 이곳에 나와 있던 한국대사와 총영사관에 정보영사로 나와 있던 송모씨가 캐나다 연방정부에 의해 추방당한 사실이다.
그때도 연방수상에게 보낸 필자의 진정서 한 장이 그들에게 곧바로 추방이라는 철퇴로 가해졌다.
제3국의 외교관이 주재국 국민들의 인권에 관한 부당한 침해사례와 주재국 국민에 대한 사찰행위 등에 대해 이는 제3국의 외교관으로서 추방사유가 된다는 필자의 주장이 즉각 연방정부로 하여금 외교관 추방이라는 행동으로 실행됐다.
그 당시에 있었던 그 불결한 사례(추방)를 지금 대사 및 총영사나 고참급 영사들은 훤히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공관장에게 그런 위험천만한 부탁을 한다는 건 모국이나 모국공관을 아끼는 일이 못된다.
물론 몰라서 일어난 일이라면 지금부터라도 그런 점은 명심하는 편이 좋다는 충고로 흘리고 싶다. 그외에도 중재를 적극 말하는 그 사람들, 그 사람들이 직접 분쟁의 당사자가 되었을 때 과연 제3자의 중재를 받아드릴 것이냐에 대한 회의는 마찬가지다. 나의 경험담에 의한 답변은 단연 NO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고집불통들이다.
오히려 그런 기구가 생기고 그런 곳에서 끼어 들면 될 것도 안 된다.
문제는 분란의 소지를 사전에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
싸움 붙은 판에 끼어 들어 중재하려는 노력을 싸움이 안 일어나도록 계몽 교육하는데 시간과 정력을 투자하는 편이 효과적이다.
누가 감히 “중지”를 외치며 레드카드를 든다는 말인가.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짓이다. 물론 중재건 화해건 걱정하는 측들의 노력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효과적 측면에서의 제안일 뿐이다
이런 경우 해결 가능한 방법은 하나 있다. 삼국지에서 찾는게 아니고 필자의 경험담이다. 상대끼리 즉 분쟁의 당사자끼리 제3자 없이 허심탄회하게 만나서 1대1로 앉아 소주잔을 기우리고 “우리가 남이가” 라고 외치며 해보는 화해다.
사우나탕도 좋고 소주방도 좋다.
그런 “내려놓는 자세”로 필자는 법정 밖에서 고소를 취하하는 극적인 장면을 도출한 적이 있다. 그리고는 돌아서기 아쉬워 노래방까지도 함께 갔다.
그 잡아먹지 못해 안달하던 우리는 남이 아니라는 것을 손목을 포개고 마이크를 잡는 순간 피부에 와 닿음을 느꼈다.
그래 없던 일로 하자 그리고 한곡 부르자며 새우깡을 안주 삼아 씹으면서 “비내리는 고모령”을 불러보던 그 날 밤의 추억이 아스란히 떠오르는 날이기에 중재 얘기를 하다말고 고모령으로 빠졌다. 그 날 밤도 오늘처럼 봄비가 창밖에 내리고 있었다.
비나리던 고모령을 부르며 우린 하나임을 느끼던 그 순간 말이다. 옳거니 “중재는 물렀거라 1대1 행차시다.” <823/0314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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