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동칼럼> 월드컵이 광란(狂亂)의 축제가 돼서야

<김원동칼럼> 월드컵이 광란(狂亂)의 축제가 돼서야

한국이 아르헨티나 전에서 4대1로 완패한 다음날 한국의 어느 극우보수매체에는 “잘 졌다”라는 필자로써 쉽게 동의할 수 없는 어느 보수 논객의 글제목이 떴다.
그는 게임이 끝난 후 광화문 일대의 아수라장 장면을 표현하면서 “악에 대한 정의감도, 적에 대한 경계심도, 조국에 대한 감사함도 모르는 젊은이들이 벌리는 광란의 축제라고 성토한다. 그리고 바다를 지키다 순국한 같은 저 또래의 46명의 희생자들을 위한 묵념이 없었음은 물론 진짜 붉은악마들에 의해 천암함이 폭침을 당했을 때 항의시위에 나선적도 없다며 그래서 철없이 광분하는 꼴을 보고 “잘 졌다”고 말했다.
다른 매체에서도 “제발 연속극 좀 보자”며 월드컵에만 올인 하는 생각 없는 언론과 방송의 해괴한 선동 책을 탓한다. 그리스 전에서 우승한 날 밤, 차가 오건 말건 길거리에 들어 눕고 괜히 지나가는 차량들을 걷어차는 붉은악마들의 행동을 질타했다.
물론 글 쓴 사람들의 표현상의 문제도 있지만 비판받아 마땅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젊은이들도 세대 차이로 번지수가 다르다며 항의할지 모른다. 정치와 스포츠를 구분할 줄 모르는 보수꼴똥들이라고 말이다. 과연 그럴까 인공기를 달고 나온 그들의 축구는 그 자체가 다분히 정치적이다. 브라질과의 대전에 앞서 열린 기자회견 모습을 봤다면 그렇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겨서 김정일위원장 동지에게 기쁨을 선사하겠다”며 충성맹세를 하는 북한 감독의 정치성 발언 앞에서도 정치와 스포츠를 분리해서 볼 일인가!
천암함을 깨트리고 오리발을 내미는 붉은 악마들, 그리고 북한의 소행임을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입증되었음을 밝히는데도 깐죽거리는 남쪽의 골수 붉은악마들은 한국이 유엔을 통해 악마집단의 범죄행위를 규탄하고 응징하려는 일에 엄청 딴죽을 거는 시점이고 보니 축구응원을 통한 붉은악마와 김일성부자를 신봉하는 남북한의 골수 붉은 악마들을 보고 월드컵 붉은 악마라는 명칭에 꽤 혼선이 온다. 붉은 악마로 명명하기에 무슨 유례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붉은 악마보다는 차라리 푸른 천사로 명명하고 광란이 아닌 평화로움 속에 축제를 즐기는 그런 응원단이면 더 낳을 것 같다. 그리고 16강이 아닌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관록 있는 국가답게 월드컵 경기에 보다 성숙함을 보일 때가 아닌지 모르겠다.
이곳도 예외는 아니었다. 4강 신화를 이룬 그날 그 결정적인 순간은 어둠이 걷히지도 않은 고요한 새벽이었다. 만여명의 붉은 물결은 새벽의 정적을 깨뜨리며 토론토 중심가에서 아무나 깨울 수 있는 전매특허라도 가진 양 광란의 시가행진을 한 다음날 이곳 주류언론에서 “이게 너희 나라냐”며 한방 맞았다. 한국4강 승리와 아무 이해관계 없는 시민들은 이른 새벽의 남의 프라이버시 같은 건 안중에도 없는 일단의 정체불명 청년들이 거리를 메운 채 아우성 속에 불어 제키는 기상나팔 소리에 기겁하고 일어났을 캐나다 시민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대 사건이었다.
나팔소리는 고사하고 밤중에 아파트 윗층에서 못질하는 소리나 복도에 청국장 냄새만 풍겨도 이웃들이 들고 일어날지 모르는 이 땅에서 제나라 축구 이겼다고 남의 나라 사람에게 불편을 준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안 좋은 일은 소기의 목적이 끝나는 대로 귀국하면 그만일 사람들이 저질러 놓고 이 땅에 영원히 살아가야 할 우리들이 옐로카드를 대신 받았다. 나이제리아 전을 하루 앞둔 이 순간에도 유난히 태극기를 단 차량들이 눈에 많이 뜨인다. 지우고 싶은 8년 전 그날 그 새벽의 모습이 재현(再現)되는 날에는 이젠 별수 없이 레드카드를 받아야 한다는 노파심에서 던져보는 말이다. (kwd70@hotmail.com) <740/2010-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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