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편지> 김세복 목사님!. 영원한 천국에서 행복을 누리세요.

<발행인편지> 김세복 목사님!. 영원한 천국에서 행복을 누리세요.
[2009-05-26, 14:49:25] 한겨레저널

<발행인편지> 김세복 목사님!. 영원한 천국에서 행복을 누리세요.

“이 회장님!. 항상 바쁘게 다니면서 동포사회를 위해 봉사해 주시어 너무 감사합니다. 신문사에 경제적으로 도움을 드려야 하는데 지금 성전을 건축하고 있어서…. 미안해 하시며 그러나 항상 신문사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는 것은 아시지요. 한겨레저널이 크게 성장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말 이예요.”. 이렇게 누구에게나 항상 기분 좋은 말만하시던 김세복 목사님!. 어린아이들은 물론 노인에 이르기까지 진심으로 사랑을 표현하면서 몸으로 직접 그 사랑을 실천하면서 하나님의 복음과 사랑을 전해오시던 김세복 목사님(70세)이 지난 5월21일 아침 8시경 지병으로 자택에서 별세했다.
장례예배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아 고 김 목사님이 탬파베이 지역 한인동포들에게 베풀었던 이민생활의 한 순간 한 순간을 생각해 보는 순간!. 갑자기 환한 얼굴에 웃음을 띄고 계신 고 김세복 목사님의 선한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사랑스런 얼굴로 환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오시는 고 김세복 목사님의 눈에는 기자를 사랑하는 마음이 베어 있다. 아!…………… 너무 죄스럽고 안타깝다.
고 김세복 목사님은 진짜 요즘 보기 드문 효자로 마지막 생명을 다하는 순간까지 어머니에게 효도를 했다고 기자는 생각한다. 본인이 지병으로 많은 고생을 하면서도 지난 3월 돌아가신 모친 고 성정례 권사(95세)님 보다 먼저 세상을 뜰까봐 당황해가며 걱정하던 효자로서의 그 진지하고 사랑스런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고 김세복 목사는 1976년 도미하여 탬파한인침례교회를 그 해 7월에 창립해 한인동포사회에 복음을 전하면서 10년후인 1986년에 탬파베이지역 최초의 한인 성전을 건축하는 등 탬파베이 지역의 한인사회 개척자로서 최선을 다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공로자이다.
특히 미국 이민 붐이 일기 시작한 70~80년대에 어렵고 힘들게 고국을 등지고 이민길에 올랐던 한인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봉사하면서 초창기 이민자들을 도와 지금의 한인사회를 건설하는데 주춧돌이 되었다. 그 당시 교회와 한인들은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가까운 사이로 고 김세복목사의 말씀과 은혜를 통해 믿음을 키우며 신앙의 발판을 마련해 지금은 돈독한 신앙인으로 많은 교회에서 장로나 권사, 혹은 집사로 직분을 맡아 섬기고 있는 동포들이 너무나 많은 것이 사실이다.
고 김세복 목사는 사회봉사 정신이 뚜렷한 분으로 하나님 말씀으로 전도를 하는 것은 물론 새로 이민오는 한인들을 위해 공항에서 픽업하는 것부터 취업 알선, 아파트 계약, 각종 법률문제 등 각가지 이민생활에 필요한 궂은 일을 도맡아 하면서 그들의 생활안정과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또 복음을 심어주기 위해 열심을 다한 하나님의 종으로 탬파 한인역사에서 빠져서는 안 될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이렇게 1970년도 후반과 1980년도 후반까지 탬파지역으로 이민 온 한인동포 가운데는 고 김세복 목사의 신세를 지지 않은 사람들이 없을 정도로 그는 동포사회 발전과 복음전도를 위해 안 찾아간 집이 없을 정도로 바쁜 시간을 보냈다.
특히 간호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김동희 사모님 덕에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이 없던 고 김목사는 교회에서 매달 주는 적은 사례비로 쌀과 라면 박스를 구입해 차에 싣고는 어렵고 힘들게 살고있는 동포들을 심방이란 명목으로 찾아가 예배를 드리며 그들을 위로하고 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안겨주는 등 복음전도를 위한 사심없이 앞장을 서 온 분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인간적으로 은혜를 입고 신세를 졌지만 정작 고인을 보내는 장례예배에는 생각보다 적은 조객들이 참석해 아쉬움이 컸다.
옛말에 “정승 집 개가 죽으면 문전성시를 이루지만 정작 정승이 죽으면 찾는 조객들이 없다”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냉정하고 인간의 정을 잃어버린 이기적인 곳에 살고 있는 기자가 초라해 보이고 심정은 착잡했다.
이날 장례예배에서 고 김목사님의 장남인 아론군은 200여명의 조객들에게 인사하는 자리에서 “아버지는 나의 삶에 가장 좋은 모델이었다. 나는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한다”라고 말하고, 특히 기억나는 것은 아주 어렸을 때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는 매일 한인들 가정에 심방가시는 아버지 차에 올라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하루종일 차를 타고 다닌 기쁜 기억이 가끔 생각난다고 말했다. 또 대학시절에 집을 떠나 있을 때에도 한 학기에 꼭 한 두번씩 학교로 찾아오시어 주위의 친한 친구들과 함께 나오라고 말씀하시고 친구들에게 점심이나 저녁을 사주시며 격려해주시어 그 당시 고맙고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제 기자는 이렇게 고 김세복 목사님에게 말하고 싶다.
“어려운 가운데 새 성전을 건축하시고 하나님께 봉헌예배도 드린 고 김목사님!. 교회 봉헌 후 세계선교를 위한 원대한 꿈을 설계하시고 세계선교를 위해 마지막 생명과 열정을 하나님께 드리고자 서원 했던 목사님을 하나님이 엄청 사랑하셨나 봅니다. 그 약한 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큰 일을 하시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워 하늘나라로 부르신 것 같네요. 이제 목사님!. 이곳 걱정이랑 내려놓으시고 아픔과 고통이 없으며 절망과 좌절이 없고 기쁨과 희망만 넘쳐나는 아름다운 천국에서 편히 쉬세요. 제가 봐도 그동안 너무 많은 일을 하셨네요. 이제 이곳 탬파베이 지역의 한인사회 발전과 복음전도는 남아있는 우리의 몫이니까요. 그동안 지치고 힘들었던 모든 피로와 아픔을 잊고 편안하게 하나님과 함께 천국에서 행복을 누리시기 바래요……..” <689/2009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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