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동칼럼> 육체적 보다 정신적 장애도 문제다. 

▲암투병을 하면서도 단 한순간도 학교를 떠나지 못했다는 장영희교수.

▲암투병을 하면서도 단 한순간도 학교를 떠나지 못했다는 장영희교수.

<김원동칼럼> 육체적 보다 정신적 장애도 문제다. 

서강대학교 영문학과 교수이며 번역문학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보적인 존재이자 또한 수필문단에 대가였던 장 영희 박사가 지난 9일 57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어려서부터 소아마비로 불편한 두 다리를 목발에 의지한 채 학교를 다닌 그녀는 일급장애인이었다. 교수로써 그리고 작품 활동에 왕성했던 그녀가 뜻밖에 찾아온 암이라는 병마와 싸우게 되었으며 그 때 그녀의 투병기는 좌절과 절망 속에 허덕이던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러일으키는 활력소가 되면서 “희망전도사”로 불리기도 했다.
유방암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의사의 진단과 함께 그녀의 암 투병사는 시작되었으며 완치 후 강단에 다시 돌아오자 또 한 차례 암과의 싸움에 마주쳐야했다. 척추 암이었다. 그리고 악착같은 투병 속에 완치되었는가 싶었을 때 다시 간으로 번진 암세포 앞에 또 한번 부딪치면서 끝내 하늘의 부름 앞에 의연한 자세의 준비된 죽음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 기나긴 투병의 와중에서도 “문학의 숲” “체험” “축복”등을 집필하기도 한 창작에 대한 남다른 열정은 상상을 초월한다. 장애에 대한 절망감 같은 것은 한국판 헬렌 켈러인 그녀의 사전에는 없었다. 삶에 대한 단호한 의지와 병마와 싸우면서도 생명과 삶 그 자체를 축복으로 알고 살았다. 살아있다는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너무나 자주 잊어버리고 사는 사람들과는 달랐다. 장애라는 남다른 체험을 당당하게 느끼며 살아간 그녀는 샘터에서 발행된 “내 생애 단 한번”이라는 글에서 “무기력하고 습관화된 삶 보다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처럼 하루하루를 열심히 해야만 제 맛”이라는 또렷한 답안지를 던지며 그것이 그녀의 인생관임을 극명하게 보여 주는 사례이기도 했다.
그녀가 살은 한국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유난히도 심한 땅이다. 장애인 학교나 복지시설 같은 것이라도 이웃에 들어서려면 주부들이 즉각 나서며 난리를 피운다. 집값 떨어진다는 것과 정상아동들인 자기들의 자식들과 장애아동들이 지근에서 살아 안 된다는 인간말종들이 벌리는 황당한 몸부림이다.
“정치인들이 미사여구를 남발하며 금방 부자나라가 될 것 같이 방정을 떨어봤자 장애인을 학대하는 나라는 필연코 무서운 재앙이 돌아온다”며 두 사람의 장애아동을 데리고 이 땅을 찾아왔던 한국의 대표 지성인인 손봉호 교수의 말이 기억난다. 그는 이곳을 방문한 소감으로 “13시간의 비행 끝에 우리일행은 장애인지옥에서 장애인 천국을 찾아왔다”며 안경 속 깊은 곳에 눈물이 고여 있던 그 모습을 오랜 동안 기억한다. 그는 한국의 고층 건물들에는 아예 장애인 출입구가 없는 곳이 많다면서 장애인 출입구를 따로 만드는데 드는 비용보다 어쩌다 한 번씩 장애인통로 미설치에 대한 건축법위반으로 내는 솜방망이 벌금이 한결 가볍기 때문에 후자를 선호한다는 말이 강연장의 청중들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한국에선 장애인을 등쳐먹는 장애인 중앙회라는 복마전이 있다며 장애인사회의 부조리를 파헤치며 보도하는 같은 주간에 장애인 장 영희 교수의 부음을 들었기에 더욱 착잡하다.
그리고 요즘은 몸이 불편한 장애보다 정신장애가 더 문제시되는 시기이기도하다. 육체적인 장애자들은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러나 정신적인 장애자들은 숱하게 많은 사람들 앞에 피해를 주는 것을 예사로 한다. 쌍꺼풀을 껌벅거리며 1억짜리 뇌물 다이아시계를 손목에 걸친 철면피들이 빤한 거짓말로 오리발을 내밀며 국민들을 기만, 조롱하려 드는 그들도 분명 정신장애자들이다. 어디 노씨 내외뿐이겠는가! 스스로가 자칭 동포사회 리더라고 설치며 공해를 일으키는 못 말릴 그 부류의 사람들도 분명 정신장애자들이다. kwd70@hotmail.com <687/2009-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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