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동칼럼> Bob Hope사진에 오버랩 되어오는 배 삼용

<김원동칼럼> Bob Hope사진에 오버랩 되어오는 배 삼용

지난 주말 회의 참석차 애틀랜타를 들린 후 귀로에서의 일이다. 미국 중동부의 남북 횡단도로 중 겨울시즌에는 적설량과 고갯길이 많은 75번을 택한 것은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어서였다. 75번 선상의 Ohio주 Dayton에 위치한 미공군박물관을 들려보기 위해서다.
미 공군역사와 연관 있는 300여대의 비행기가 있다는 그곳, 유감스럽게도 다 둘러보지는 못했지만 중요한 곳은 눈여겨보고 왔으며 가져온 참고문헌과 기록들을 정리해 어느 날엔가 기술해보려고 한다. 특히 건국이후 미 대통령들이 탔던 전용기(공군1호기)에서는 손을 흔드는 탑승흉내를 내며 디지털카메라에 담기도 했으며 뇌리를 스치는 역사적인 장면과 함께 오버랩 되어 오던 특정비행기들 앞에서 느꼈던 여러가지의 스케치도 노트북에 기록해 두었다.
그런데 무엇보다 그 역사적인 현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앞에 와 닿는 사진 한 장이 시선을 끈다. 해외주둔미군기지 위문공연차 찾아다니던 Bob Hope가 공군전용기 앞에서 장병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92년 어느 날 100세를 일기로 타계한 20세기가 낳은 위대한 연예인으로 꼽히는 Bob hope, 세계에서 가장 사랑을 받고 있는 연예인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는 미국의 전설적인 코미디언인 그는 그의 이름처럼 미국인들에게 Hope(희망)을 널리 심어준 대표적 인물이다.
그래서 민간인에게 주는 최고의 훈장인 미국정부가 수여한 골드메달을 받았으며 엘리자베스 영국여왕은 기사 작위도 수여했다. 그의 이름을 붙인 해군함정이 있는가하면 비행기 이름도 있다. 그를 추모하는 골프대회(보브호프 클라이슬러 클라식)도 있다. 미국의 안보와 지구상의 평화를 위한 활동의 일환으로 미군이 상주하고 있는 곳이면 그는 어디든지 달려갔다. 2차 대전부터 한국전 월남전을 비롯 포연 자욱한 최전선 어느 곳 안 다닌 곳이 없다. 걸프전 때에는 팔순이 넘은 노구를 이끌고 장병위문을 해서 그의 눈물나는 애국심이 해외토픽으로 전파를 타기도 했다. 나는 격납고(비행기 넣어두는 건물)속에 그것도 방문객의 시선이 최우선적으로 닿는 곳에 세워둔 보브호프 사진을 보며 남다른 깊은 감회에 순간 빠지기도 했다. 전날 인터넷 판을 보고 괴로워했던 한 순간이 보브호프 사진위로 오버랩 되어 떠올랐기에 그랬다. 바로 배삼용의 비극적인 스토리 말이다. 1억원이 넘는 입원비 체납 때문에 소송에 걸린 채 산소 호흡기를 달고 있는 한국의 챌리 채프린으로 회자되기도 했던 배삼용의 기막힌 사연이다. 어디 보브호프에 견줄만한 인물일까 마는 배삼용도 누가 뭐래도 한국이 낳은 대단한 국민희극배우임엔 틀림없다. 구봉서와 함께 무대를 누볐던 그들의 웃음보따리가 아니었다면 그 살벌하던 독재시절의 스트레스를 무엇으로 풀었겠는가!
그러나 빨리 변해가는 세상에 비해 배삼용은 늘 느렸다. 세상을 따라 잡지 못하는 바보의 어리석음 같은 무대 위의 그의 어눌한 행보가 오히려 관객과 시청자들의 마음을 보듬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김종필을 추켜세우다가 그는 신군부에 의해 망명 비슷한 생활을 이곳 토론토에서 한참 했다. 그때 “김형 마지막 순간까지 무대에 서는 것이 꿈이요”라며 필자의 사무실에서 했던 그 말, 배삼용의 소박하고 진실의 전부인 꿈이 무대가 아닌 병원에서 마이크가 아닌 산소 호흡기를 달고 있었기에 하는 말이다. “후배들이 나서서 입원비 모금운동을 한다지 않소” 라는 집사람의 위로에 다시 시동을 걸고 석양지는 고갯마루를 넘으며 토론토로 향했다. 보브호프가 열창했던 Thanks for the memory를 콧노래로 흥얼거리면서. 배삼용 그도 분명 보브호프처럼 우리에게 많은 추억을 제공한 채 떠날 사람이기에 그랬을까….. kwd70@hotmail.com <675/2009-02-12>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