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동칼럼> 부처님이 돌아 누으실라.

<김원동칼럼> 부처님이 돌아 누으실라.

군부 독재정권을 비판하다 괘씸죄에 걸려 모국방문이 자유롭지 못했던 필자에게 금족령이 해제되면서 이민 17년 만에 한국을 나갔을 때의 일이다. 주말을 이용해 충북의 어느 유명 사찰을 찾아갔다. 공해에 찌든 서울 도심을 벗어나 신선한 공기도 마시며 조용한 산길을 걷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절을 향해 얼마쯤 걸었을까,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되돌아섰다. 스님이 운전하는 승용차들이 산정을 향한 비포장도로에서 연신 일으키는 견디기 힘든 흙먼지 때문이었다. 차라리 유독가스를 내뿜는 서울 도심의 거리만 못하다는 생각에서 도중에 하산하고 말았다. 그리고 서울행 버스를 타기 위해 터미널 근처의 어느 다방을 들렸으나 거기도 스님들이 삼삼오오 떼지어 앉아 분명 차(茶)아닌 커피를 마시는 듯한 이채로운 풍경이다. 스님들이면 의례 승용차가 아닌 걷는 모습과 커피가 아닌 차를 마시려니 했던 순수한 생각은 “많이도 변했구나”로 바뀐 채 그 날의 모습들을 부처님이 보셨으면 틀림없이 돌아누으실게다 라는 혼자만의 생각으로 귀경길의 차안에서 쓸쓸히 웃어 넘겼다.
그 후에도 사찰재산이나 이권문제 등으로 툭하면 절간에서 폭력이 난무하는 불상사들도 보았으나 다른 종파에서도 있을 법한 일이라고 가볍게 생각하고 지나치곤 했다.
그런데 이번 종교탄압중단을 외치며 승려들이 벌리는 서울 시청광장의 시위는 달랐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절박한 사유라도 있었을까? 아무리 너그럽게 봐도 그럴 이유는 없었다. 저들이 말하는 소위 종교탄압이라는 것만 해도 그렇다. 불교지도자의 차량을 경찰이 검문 검색한 것이 “땡종 반란”의 도화선이다. 공개수배자들이 숨어 있는 그곳 조계사를 출입하는 통행차량이라면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검문검색은 공권력차원에서 필수적이다. “땡종 반란” 자체가 법치를 무시하며 범죄자들을 은닉시킨 그곳을 마치 치외법권지대로 착각하는데서 나온 무식의 극치다.
그런데도 그들은 경찰청장의 파면을 요구하며 아울러 대통령의 직접사과가 있기 전에는 계속 거리투쟁을 하겠다는 엄포다. 그들의 종교탄압논리 자체가 어불성설(語不成說)이지만 국민화합차원에서 주무장관과 국무총리가 본의 아니게 사과까지 했다. 그런데도 막무가내다. 심지어 장로인 대통령의 청와대 가족예배까지 종교차별행위로 매도하는 말도 시위현장에서 나온다. 그리고 적잖은 승려들과 불교신자들을 떼거리로 전국 각지에서 관광버스로 실어나르며 돈 많은 종단이라는 세(勢)과시를 하는 것도 꼴불견이다. 국민적 공감대 형성과는 거리가 먼 저들끼리의 목탁 쇼다. 티베트를 비롯한 다른 동남아지역의 불교승려들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며 벌리는 그런 대의명분이 없는 막가파식 놀이터가 된 난장판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에 대한 공개사과 요구와 함께 법질서 확립을 위한 수호자로써 정당한 공권력 행사를 한 치안책임자인 경찰총수를 파면하라고 아우성이다. 이것 또한 종교차별도 탄압도 아닌데도 심산유곡에서나 소리내던 그 목탁을 두들기며 거리로 나서야 했다면 정부전복을 위해 밤낮없이 난동을 일삼던 광우난동자들과 무엇이 다른가. 부처의 가르침에도 없는 세속적인 승려집단의 황당한 거리데모를 보고 생각나는 글이 있어 여기 옮겨 본다.
“홀로 행하고, 비난과 칭찬에도 흔들리지 말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러워지지 않는 연꽃처럼…” 홀로 조용히 행하라는 법정스님의 말씀이다. 부처님이 돌아 누으시기 전에 한국 스님들이 귀담아 듣고 실천해야할 명언이다. kwd70@hotmail.com <654/2008-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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