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동칼럼> 불언장단 (不言長短)

<김원동칼럼> 불언장단 (不言長短)

500년 조선왕조시대를 통해 가장 청렴했던 대표적 인물 한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청백리의 귀감으로 오늘날까지 후대의 존경을 받고 있는 황희정승을 내세울 것이다.
그러나 그의 어록엔 그 답지 않은 우유부단한 면의 일화도 있다. 즉 두 개집종이 찾아와 서로를 고자질한다. 다 듣고 난 후 “너 말도 옳다” “그리고 네 말도 옳다”고 했을 때 곁에서 지켜보던 조카가 “한쪽이 옳으면 한쪽이 잘못됐다던가 하셔야지 양쪽 모두가 옳다고 하면 어쩌냐”고 하자, “그래 네 말도 옳다”고 했다. 어린 조카가 어찌 어르신의 그 높은 뜻이 담긴 “불언장단(不言長短)”을 감히 알았겠는가마는….
그에게는 우유부단(優柔不斷)이 아닌 소신을 관철하기 위해 목숨을 건 강인함도 있었으며 해학적인 촌철살인(寸鐵殺人)식의 화법도 구사했다. 양영대군의 폐 서자 사건 때는 강력한 반발로 유배도 당했으며, 의정부회의에 참석한 당대의 실세 병조판서 김종서의 거만한 앉은 자세를 보고 회의직후 “여봐라 병판이 앉았던 의자의 한쪽 다리가 짧은 모양이다. 즉각 고치도록 하라”는 일갈에 천하의 김종서가 무릎을 꿇고 즉석에서 빌었다는 일화도 있다. 그러한 그가 어떤 연유에서 불언장단(不言長短)이라는 신조어를 만들고 그것을 죽는 날까지 실천에 옮겼을까가 궁금하다.
요즘말로 하면 민정시찰이라고 할까, 농부들의 사는 모습을 살피기 위해 지방순시 중 어느 고을을 지나던 황희정승이 두 마리의 소를 몰고 일하는 농부 앞에 발길을 멈춘다. 그리고 농부에게 두 마리 소 중에 어느 놈이 일을 잘하냐고 물었다. 그때 농부는 정승의 귀에 대고 소들이 듣지 않게 조용한 음성으로 말했다. “소나 사람이나 누군 잘 하고 누군 못 한다고 하는 말을 들었을 때는 기분 좋을 리가 없는 겁니다”라고.
이때부터 황희정승은 누구를 잘 한다 못한다, 좋다 나쁘다는 말을 하지 않는 불언장단(不言長短)으로 90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불언장단뿐아니라 청렴에서 누가 그에게 감히 견주랴, 그의 죽음이 가까웠다는 소식에 임금이 직접 병문안을 갔던 자리에서다. 죽음을 앞둔 90세의 노인이 빛 바랜 멍석을 깔고 누워있는 것을 보고 이럴 수가 있느냐고 주위를 돌아보며 묻자 그는 “늙은이의 간지러운 등어리를 긁어주는 데는 멍석만한 것도 없다”며 임금을 데려 달랬다. 그리고 상을 당하자 여러 딸들이 상복(喪服)이 없어 소동을 빚은 것도 그의 마지막 길에 남긴 일화다. 60년 관직생활 중 영의정을 18년이나 한 사람의 마지막 길이 그러했노라는 것이 역사에 나오는 기록이다. 그가 남긴 숱한 어록들 중에 굳이 불언장단을 칼럼제목으로 쓰는 데는 필자 나름대로의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다.
본국지의 제호를 쓰는 이곳의 어느 매체에 몇 달째 글을 썼다. 그런데 본사(본국)에서 강한 불만과 함께 이곳 지사가 곤경에 처한 일이 최근 발생했다. 서울본사의 논조와 이곳 지사의 논조가 불일치하다는 내용이다. 본사에서는 시위군중들 뒤에서 어쌰 어싸 하고 떠미는 판에 광우병 과격시위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일관한 필자의 논조가 문제였다.
과격일변도의 시위군중이나 강경일변도의 진압하는 공권력을 두고 황희정승처럼 “네 말도 옳다” “그리고 너 말도 옳다”하고 두리뭉실한 글로 불언장단(不言長短)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명색이 칼럼리스트인 필자로써는 실천하기 어려운 명제(命題)다. 절필(絶筆)을 선언하고 나섰다면 모를까…. kwd70@hotmail.com <2008-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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