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해(年)가 저무는 세모(歲募)의 거리에서………!
봄,여름,가을을 겪으며 꽃피고 성장하고 열매를 맺으며 풍성함과 풍요로움을 구가했던 겨울나무는 모든 것을 잊고 털어버린다. 잎사귀도 열매도, 아낌없이 비우고 나목의 빈 모습을 감추려 들지도 않는다.
비울 때가 되면 비울줄 알고, 비운 뒤에는 다시 채워짐을 믿을줄도 알며 주어진 대로 푸르름을 받았다가 되 줘야 할 때는 서슴없이 낙엽으로 내 줄줄도 아는 여유로움이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비우고 털어내야 할 때가 와도 꾸역꾸역 욕심의 찌꺼기를 버리지 못하고 움켜쥐려고만 한다. 한 해가 저물면 한번쯤 지난 봄, 여름, 가을 내내 매달리고 안달했던 욕망들을 훌훌 털어버리고 새로운 기도로 기다리는 나목같은 마음이 돼야 할텐데, 오히려 더 집착하고 채우고 말리라는 모진 마음만 서려 먹는다. 한해가 다 해가는 이 연말 세모의 겨울밤에, 한번쯤은 마음과 가슴속, 머리속 곳곳에 가득 쌓인 물욕과 시기, 질투, 미움, 경쟁심 등의 모든 번뇌를 털어버리고 빈 마음이 돼 보자.
그토록 좋은 일, 덕볼 거리만 꿈꾸고 쫓고 매달렸지만 되돌아 보면 모질고 험한 일들만 질리도록 겪고 당하기만 한 한해였다. 좋은 일 보다는 안 좋았던 일들이 오히려 많았었던 한해였던 것 같다. 그런게 바로 사람 사는 것이란 체념속에서도 차라리 허튼 욕망 대신 겨울 나목처럼 비운 마음으로 살았더라면 속절없는 절망이나 없었으리란 후회가 남는다. 비움으로써 비로서 채우는 겨울나무의 순리대로 지난 세월에 속았다는 세모의 거슬린 마음이 삶을 속인 세월조차도 사랑 할수 있는 마음으로 돌아서기를 기도해보자.
하나님에게도 좋고, 불교신자는 부처님이라도 좋다. 사랑했던 사람은 더욱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도 좋다.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더 이상 미워하지 않아도 될 단 한조각의 이유라도 찾아낼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도 나쁠 것 없다. 차가운 날씨와 저온으로 검푸른 색깔로 변한 겨울바다를 바라보며, 한 여름철 뜨거웠던 태양아래 한때는 따뜻한 수온을 유지했던 기억을 되살리며 차가워진 내 마음도 예전의 따뜻했던 그 마음으로 되돌아 가기를 기도해보자.
하얀 눈송이 속에 떠오르는 잊혀진 얼굴이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세모에 첫 눈이라도 내려주기를 기도해도 좋다. 그립고 정다운 사람, 평소에 가깝게 지내온 지인이나 친구, 친척, 연인에게 내 마음이 담겨진 손편지라도 써서 우표 한장 붙여 날려 보내는 것도 세모의 추운 날씨를 녹여주는 모닥불 역할을 톡톡히 할 것이다. 글자 그대로 다사다난 했던 2024년의 한 해가 기울어가는 세모 연휴에 며칠만이라도 욕망이나 명예, 돈 이라는 낱말 만은 까맣게 잊고 지날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도 괜찮다. 새해에는 밝은 해를 볼수 있고 맑은 바람을 들이 쉴수 있는 건강 하나만 허락해도 “하나님 정말로 감사합니다”라는 기도를 할수 있다면 그건 진짜진짜 참으로 좋은 기도다.
이 세모에 좋은 기도가 많을수록 좋은 새해가 온다고 믿는 것 또한 좋은 것이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나 이외의 것을 사랑해보자. 정치인들은 정직한 야망을 사랑할 줄 알고,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는 종복이 되어보자. 그리고 정권을 쥔 자는 겸허함과 의를 사랑할 줄 알자. 가진 자는 청빈의 가치를 더 사랑할 줄 알고 내 식탁의 금잔 보다 나보다 덜 가진 이웃을 더 아끼고 사랑해보자.
모든 이들이 비운 마음으로 바치는 이 기도가 세모의 거리에 가득 차는 겨울밤은 참으로 따뜻하고 좋은 밤이 아니겠는가. 연말이라는 시즌은 공연히 사람들의 마음을 세모 분위기에 젖게 한다. 마지막 남은 달력 한장, 크리스마스 장식과 캐롤, 모임이나 파티로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과 선물을 주고 받는 일들이 세모를 느끼게 한다. 여기에 차가운 겨울 날씨에 눈이라도 내리면 세모 분위기는 한결 더해진다. 사실 연말이라고 하지만 연말이 평소와 특별히 다를 건 없다. 어디에서 시작하여 어디에서 끝나는 지를 알수없는 무한한 시간의 흐름일 뿐이다.
사람들이 이 시간의 흐름을 계산하기 위하여 지구의 공전과 자전을 기준삼아 연월일을 만들었으니 어느 날이든 연말이 될 수가 있고 연초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2024년 12월31일과 2025년 1월1일은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시간이 지나서 세월이 흘러가기 때문에 한가지 확실해지는 것은 있다. 우리가 살아온 과거는 점점 길어지고, 앞으로 살아갈 미래는 점점 짧아진다는 것이다. 해가 바뀌어 새해가 됨으로써 지금 이 세상에 살고있는 사람들이 죽음 앞에 한발짝 씩 다가섰다는 사실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최근 발표된 한국인의 평균 수명을 보면 남자가 78세, 여자는 84세다. 남자는 39세를 살면 인생의 절반을 산 것이고, 여자는 42세가 되면 절반을 산 것이다. 지금 세상을 주름잡으면서 자신만만하게 영원히 살수 있을것 처럼 착각하고 있는 사람도 언젠가는 수명이 다하면 죽을 사람이다.
이러한 인생에 대해 불교에서는 윤회를 이야기 하고, 기독교에서는 천국을 이야기하는데, 이 지상에서의 인생은 일장춘몽에 불과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꿈같은 인생에서 높은 곳에 올라가고, 많은 것을 가지려고 아귀다툼을 하는 것이 우리들의 인생살이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이런 것들을 위해 남과 싸우고 남을 해치는 삶을 살았던 것이 우리들의 지난날이었다면 그건 분명 꿈같은 인생이 악몽인 셈이 된다.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사람들은 새로운 희망으로 좋은 새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새해에는 자기가 원하고 바라는 소원이 이루어지고 돈을 많이 벌어서 풍요롭게 살고 싶어한다. 그러나 일장춘몽에 불과한 꿈속에서 누리는 모든 영광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 영광을 위해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면 그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다. 그보다는 편안한 꿈, 즐거운 꿈처럼 편안하고 건강한 삶, 즐거운 삶이 우리의 인생에서는 더욱 값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제 2024년도 며칠남지 않았다. 누군가는 황혼 빛이 아름답다고 말하지만, 거리에는 그리움과 아쉬움, 그리고 아픔과 슬픔이 짙게 묻어있다. (미(美)는 우수(憂愁)와 함께 한다)는 존 키츠의 말처럼 우리는 한해가 가는 12월의 아름다움 속에서 내면으로 젖어드는 숭고한 아픔과 회한으로 얼룩진 아쉬움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유형(流刑 )의 길을 걷고있는 인간은 운명적으로 절대적인 완성의 단계에는 도달할 수 없다. 인간은 항상 기쁨속에서도 슬픔을 느끼고, 또 슬픔 속에서 기쁨을 느끼는 역설적인 이원론적 존재이다. 인간의 삶의 풍경은 이러한 운명 때문에 더욱더 아름답고 값지게 보이는 지도 모른다. (시간의 빈 터)이자 (작은 영원)인 12월의 세계가 종말에 대한 감상적인 슬픔으로 누추하게 보이지 않고, 고요한 어둠속에서 스스로 몸을 태워 주위를 밝히는 촛불처럼 아름다운 빛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그것이 결코 영원한 죽음을 의미하지 않고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 어둠과 싸우는 비극적인 숭고함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비극의 드라마가 지니는 아름다움은 시간의 흐름이 없는 정지된 영겁의 세계인 천국에는 없다. 그것은 다만 지상에 있는 순간적인 ‘작은 영원’과 그것을 발견하려는 인간의 처절한 노력과 그것을 축하하는 카니발에 있다. 12월의 풍경, 그것이 어둠속에 서도 그렇게 경건하고 아름답게 보이고 느껴지는 것은 영원한 종말을 거부하는 인간의식이 (작은 영원)인 12월의 빈 터에서 그 조용한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세모의 어둠은 이렇게 밝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어둠이 없으면 빛이 있을수 없고, 빛은 어둠이 있기 때문에 그것의 기능을 발휘할수 있다. 어둠과 빛의 함수 관계와 변증법은 역사의 경우뿐만 아니라 그것을 움직이는 개체적인 인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 이다.
12월의 아픔의 의미를 아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새벽의 빛이 찾아올 것이다.
이번의 연말연시에는 평소에 나를 위해 수고하고 도움을 주며 사랑과 기쁨과 평안을 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와 안부를 겸한 애정의 메시지를 꼭 보내주시기를 바랍니다.
베풀고 나누는 마음은 곧 나 자신의 행복과, 인간 관계를 원활하게 만들어 주는 징검다리의 가교가 됩니다.
성탄과 새해를 맞으며 독자 여러분 가정에 하나님의 넘치는 축복과 은혜가 함께 하 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금년 한해도 저의 글을 애독하여주시고 사랑해주신 모든 독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감사를 드립니다.
문학 작가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436/2024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