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만약에 당신이 바보 소리를 들으며 세상을 살아간다면… ?
바보,
바보의 뜻을 풀이해 보면, 무엇을 제대로 알지 못하여 보통 사람보다 어리석은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흔히 꾸짖거나 또는 친구 사이에 농담으로 쓰이기도 하며, 최근에는 이러한 어원의 본뜻을 벗어나 한국에서는 바보를 인용하여 신조어가 생겨나기도 했다.
바보의 사전적 의미는 ‘정상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한마디로 뭘 모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세상에 바보라는 소리를 듣고 기분이 좋을 바보는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요즘 들어 한국에서는 바보라는 말에 오히려 기분 좋고 뿌듯한 얼굴로 밝게 웃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바보라고 하는데 어떻게 기분이 좋을 수가 있을까? 진짜 바보라서 그럴까? 라고 생각을 할 수도 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한국 사람들은 결혼을 늦게하고 또 아이를 하나만 낳아 기르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그리고 아들만 좋아하던 예전 한국문화가 지금은 많이 바뀌어 딸이라고 해서 서운해 하는 사람들도 점점 줄어들고 있고, 오히려 아들보다는 딸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러다보니 늦은 나이에 결혼해 얻은 하나뿐인 자식은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정도가 아니라 엄마, 아빠의 눈을 멀게 하기에 충분 할 만큼 사랑스럽고 귀한 존재가 되었다. 손을 쥐었다 폈다 했을 뿐인데 마치 꽃이 피는 것으로 보고, 마마~~ 하는 옹알이도 ‘어머니 우유 주세요, 배가 고파요’로 듣는 엄마 아빠라면 딸밖에 모르는 딸 바보, 아들밖에 모르는 아들 바보라고 할 만하지 않을까?……..!
그리고 바보면 어떠한가?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닮은 내 아이를 사랑해서 하는 착각이 잘못은 아니니까….! 누군가를 사랑할 때 바보처럼 사랑할 수 있다면 그 또한 행복이 아닌가 생각된다. 굳이 딸 바보, 아들 바보가 아니더라도 여러분 곁에 있는 사람을 바보처럼 사랑해서 ‘00 바보’가 되는 기쁨을 함께 누리기를 기대한다.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 이곳에 은퇴하여 내려오기 전, 내가 시카고에 살 때, 나는 매주 중앙일보에 써 올리는 칼럼의 글 중에 ‘바보같이 사는 즐거움’이란 제하의 글을 써 올린 적이 있었다. 무엇을 얻기 위해 남들과 싸우고 다투고 경쟁하기 보다는 내가 먼저 양보하고 포기하는 삶이 오히려 행복한 삶이라고… 그런데 많은 분들, 독자들 께서 ‘그렇게 살다가는 불행해 지고 진짜 바보가 됩니다’라는 댓글과 독후감을 주신걸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오래전 어느 한국TV 광고에서 본 이야기다. 광고 내용인즉 “뚱뚱한 게 뭐 어때서, 출세 못한 게 뭐 어때서, 키 작은 게 뭐 어때서, 돈 좀 없는 게 뭐 어때서….등” 여러 가지 ‘어때서…’로 이어지는 광고의 말들이 나온다. 누구나 그러 하겠지만 손해를 보고 피해를 입으면서 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지금 세상을 보면, 남들을 밟아 가면서 독단적으로 행동 하고, 이타심은 전혀 없고 오로지 자기의 편익과 행복? 을 위해서만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세상의 많은 존재들은 누군가보다 우월하기를 바라고, 비교 대상보다 더 잘 살고 싶어 하는 존재들이다. 그런 세상에서 내가 손해보고 양보하고 나의 마음까지도 다 내어주고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한마디로 “바보중의 상 바보”가 된다.
고대와 현대를 통 틀어 세상에서 가장 바보같이 산 사람은 누구일까?……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신 것은 참으로 어리석어 보이고, ‘바보’나 할 수 있는 그런 일이었다. 예수님의 성 육신을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예수님은 ‘어리석고 멍청한’일을 하신 것이다. 돈 한 푼 생기지도 않고, 챙기지도 않으신, 예수님의 일생은 밑지는 장사였고, 평생을 항상 헌신과 봉사 사랑의 실천 그 자체였다.
자신의 편익과 이익이 되는 일은 하나도 하지 않으시고 오직 인류와 남들만을 위하여 희생 하시고 헌신하며 봉사하고 수고하셨다. 오늘날 누군가가 이러한 일생의 삶을 살아간다면 천치 바보중의 으뜸가는 바보이고 굶어죽기 딱 알맞다.
자신의 지나온 생을 돌아보며 바보같이 살았다고 자책하거나 후회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당시에는 열심히 산다고 살았지만, 지나고 보니 잘산 게 아니었음을 깨달은 적이 한두번이 아닐 것이다.
지금 나이 70~80세 이상 살아온 세대들의 인생여정을 되돌아보면 사회가 안정되고 평화로운 적이 별로 없었다. 늘 불안했고 끊임없는 정치적 격변기와 경제적 변화의 소용돌이 가운데 있었다. 이러한 세대들은 어떻게 해서든 그 변화에 적응해야 했고, 생존경쟁의 대열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쳐야 했다. 그런 과정을 겪다보니 때로는 잘못된 판단을 하기도 했고 때로는 삶의 길목에서 정처없이 방황하기도 했다. 시대를 탓 할수도 있고 환경을 탓 할수도 있지만, 자신에 대한 자책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예상은 늘 어긋나기 십상이었고, 기대는 곧잘 실망으로 바뀌곤 했다. 과연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70~80세대가 되어 지나온 일생을 되돌아 보며 이런 고민을 안해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여태까지는 그렇다 쳐도 앞으로 남은 인생, 어떻게 살아야 잘 살았다고 소문이 날까?……..50~60세대 역시 마찬가지다. 인생의 절반이상을 살았다고는 하지만 완전히 성숙한 존재가 된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우리는 모두 ‘아직 영웅이 되지못한 미숙한 자아’일 뿐이다. 한 인간의 진면목은 평소의 모습이 아니라 힘들 때 드러난다. 삶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았을 때, 그 고통속에 있는 나 자신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다.
그런 순간을 맞이하여 ‘내가 바보같이 느껴지는 기분’을 하염없이 감내하고 있어야 할지도 모르고, 혹은 자존심이 상한채 수치스러운 존재로 전락하는 것을 무기력 하게 지켜봐야 할지도 모르며, 그러다가 치밀어 오르는 화와 분노를 누구에게 표출해야 할지 몰라 어쩔 줄 모르고 속으로 분을 삭이고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이 모두가 당신의 바보같은 모습이다.
어쩌면 우리가 제일 듣기 싫어하는 게 (바보같다)는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우리가 바보같은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순간이나 상황이 불현듯 닥친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바보 같은 선택이었음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이 어디 한두번 이었는가? 내가 바보 같을 수 있음을, 바보 같은 상황에 처할 수 있음을 마음깊이 허락하는 것이 오히려 현명한 건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완벽한 사람은 없다.
우리가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부족한 자신을 직면해야 한다. 그러니 차라리 자신에 대한 과도한 기대를 내려놓고 바보같은 나에게 선물을 주자. 바보같은 자신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무엇일까? 크게 두가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 ‘못나고 바보 같은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친절을 베푸는 것이고, 둘째는 바보 같은 자신에게 웃음을 선물하는 것이다.
우리는 가족과 수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세상의 모든 존재와 연결된 소중한 존재다.
이 순간 우리가 인상을 찌푸리며 한숨짓는다면 주위 사람들을 우울하게 할 것이고 맥 빠지게 할 것이다. 그대신 우리가 웃는다면 우리의 주변은 활기로 가득 찰 것이다.
바보 같은 자신에게 매일아침 웃음을 선물해 보자. 새로운 하루를 향해 웃어보자. 참 잘 살았구나! 사느라고 애 썼구나! 앞으로도 잘 살거야! 라고 아낌없이 자신에게 격려와 지지를 보내자. 매일의 삶이 힘들고 고생스러워도 우리는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있기에 미래가 있고, 우리가 있기에 우주가 존재한다.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세상을 살아가자.
미생지신(尾生之信)과 각주구검(刻舟求劍)의 고사에는 바보같은 남자가 나온다.
미생지신, 즉 미생의 믿음이라는 뜻이다. 미생이라는 남자는 사랑하는 여인을 다리아래서 만나기로 했다. 약속한 시간에 다리 밑에서 기다렸으나 여인은 오지 않는다.
장대비가 쏟아져 다리 밑에서 기다리는 미생의 다리, 허리, 가슴, 목까지 물이 차오르는데 사랑하는 여인은 오지 않는다. 결국 미생은 물에 잠겨 떠내려가 죽는다.
다음은 각주구검의 남자다. 배를 타고 가다가 칼을 바다에 빠뜨린 한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품에서 다른 칼을 꺼내어 배위에 무언가 새기고 있다. 즉 칼을 물에 빠뜨린 지점을 기억해 두기 위해 칼로 배 위에 표시를 새겨둔 것이다.
오지 않는 연인을 기다리는 남자, 바닷물에 칼을 빠뜨리고 배 위에 잃어버린 지점을 새기는 남자, 이들은 공통점이 있다. 하나같이 뭔가를 구하려 했던 사람이다. 현대말로 치자면 바보짓을 한 것이다.
지금 세상을 보면 바보는 얼마 없고 모두가 똑똑하고 현명한 사람들만 살고 있는 것 같다. 정치인들의 경우를 봐도 너는 틀렸고 바보 같은데 나만 옳고 똑똑하단다.
국민들 역시 너는 틀렸고 나만 옳다고 한다. 지금의 우리 사회는 똑똑한 사람만 있고 바보는 없다. 그렇다면 나만이라도 바보가 되면 세상을 좀더 편안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가끔 이 세상을 바보같이 사는 것이 더 현명하게 사는 법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본다. 눈앞의 한 푼과 욕심에 연연하면 삶이 너무나 각박해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위에 서길 원하고, 언제나 위를 향한 일념으로 세상을 살고 있다. 모두들 난리치며 위를 향할 때, 나만이라도 마음 편하게 내려가서 살아봐야겠다.
문학 작가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425/2024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