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우리 인생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고독과 외로움

<김명열칼럼> 우리 인생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고독과 외로움

고독사(孤獨死), 요즘같은 백세 시대에 50~60대면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사회적으로도 왕성하게 활동할 나이 이다. 평생 일만 하다 가족과 유대감을 쌓지 못한데다 식사, 빨래 같은 집안일에 미숙한 50~60대 남성은 실직하거나 이혼하면 급격히 무너진다.

나약하다는 낙인이 두려워 고독감을 토로하지도 못한다.

지난해 12월14일, 한국의 보건복지부는 2022년 고독사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최근 5년동안 전국에서 고독사한 사람이 모두 1만5066명이었다고 한다.

2017년 2412명, 2018년 3048명, 2019년 2949명, 2020년 3279명, 2021년 3378명으로 5년동안 40%가 늘었다. 2021년 국내 전체 사망자 수는 31만7680명이므로 100명 가운데 1명이 고독사로 숨진 셈이다.

복지부는 1인가구가 증가하고 사회관계망이 헐거워지면서 고독사가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와 함께 외로움 역시 ‘사회적 감염병’이라는 의학적 용어로, ‘외로움이란 개인이 바라는 사회적 관계망과 현실사이의 괴리로 인해 발생하는 주관적인 고통을 말한다’고 정의 한다. 아주 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미국내에서 2018년, 2021년 두차례에 걸쳐 전국의 40세 이상 성인남녀 5천645명을 대상으로 연구 조사한 결과, 두 시점 모두 3명중의 한 사람은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고 답했다.

외로움의 일반적인 정의는 홀로있는 고독의 상태를 의미한다. 하지만 외로움은 마음의 상태이다.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허무감, 고립감, 그리고 자신이 필요치 않은 존재라는 불인정의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이다. 외로운 이들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와 접촉을 갈망하지만 그들이 처한 마음의 상태는 타인과의 관계 형성을 더욱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우리는 어느 누구나 감기처럼 외로움에 옮을(감염될) 수도 있다. 하지만 감기가 언젠가는 낫듯이 외로움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철학이 아니라 현실에 기초하고 있으니까……….

고독이란 무엇인가?

고독은 세상에 홀로 떨어져있는 듯이 외롭고 쓸쓸한 마음상태를 말한다. 고독의 사전적 의미는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관계,연락없이 홀로된 상태를 의미하지만 그 반대의 역도 성립한다. 즉 다른 사람들과 긴밀한 관계를 주고 받아도 고독을 느낄 수 있다.

군중속에 고독이라는 말도 있으니 말이다. 이 말은 인간관계로부터 속박을 받지 않고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함축된 의미가 들어있다. 외로움이란 무엇인가? 외로움은 내가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함에도 불구하고 일종의 거절당한 소외를 의미한다. 소외란 개인이 그가 속해있는 사회와의 관계에서 통합되지 못하거나 거리가 있는 상태를 뜻한다.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게 되면 그것을 사회라고 한다. 고독과 외로움은 힘든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그것은 삶의 의미를 찾는 것에 있다.

육체적 고통보다 훨씬더 괴로운 것은 인생을 헛되이 보내고 있다는 것, 즉 아무런 목적없이 살고 있으며 그래서 인생이 무의미한 것으로 느껴지는 정신적 고통이다. 이것은 삶의 의미를 찾지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는 삶의 참된 의미를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나온 자신의 얼룩진 삶을 회고하면서 인생을 망쳤다는 회한에 묻힐것이다. 남는 것은 고독과 외로움 뿐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두번쯤은 불 꺼진 방에 홀로 우두커니 앉아서 하염없이 어두운 창밖을 내다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의 눈이 내다보는 것은 바깥의 짙은 어둠이지만, 마음이 들여다 보는 건 아마도 자신의 내면이리라. 비에 젖은 어두운 밤거리를 내다보던 청년시인 윤동주는 그럴때 ‘마음속으로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시상이 저절로 능금처럼 익어간다’고 노래했다. 몽테뉴도 그랬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그는 성안 작은 탑을 개조해 서재를 마련하고 곳곳에 인생 격언을 새겨 생각의 재료로 삼은 후 그 안에 자신을 가두었다. 몽테뉴는 이곳을 치타텔레(Zitadelle)라고 불렀다.

요새라는 뜻이다. 세상의 혼돈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독서와 사색을 통해 인생을 탐구하려는 의도였다. 그 결과 나온 것이 불멸의 저작인 ‘에세’이다. 위대한 창조자들은 외롭고 쓸쓸하고 힘들어 보이는 밤을 통해 참된 자신을 발견하고 인생의 의미를 깨닫는다.

‘홀로’에는 세가지 형태가 있다. 먼저 ‘혼자 됨’은 생명체의 근본적 존재 양식이다. 모든 생명체는 홀로 태어나서 홀로 죽는다. 아무도 대신 태어나 줄 수도, 대신 죽어 줄 수도 없다. 이 우주에 나는 오직 ‘하나 뿐’이라는 단독성은 인간 존엄의 기초를 이룬다. ‘홀로’는 또한 외로움과 고독을 낳는다. 고독과 외로움은 다르다. 외로움(Loneliness)이 ‘내 몰린 혼자’라면 고독(Solitude)은 ‘스스로 혼자’ 이다. 외로움은 피동 이고, 고독은 능동 이다.

외로움이 관계를 아무리 바라도 가족이나 친구나 동료가 곁에 없어서 사무치는 괴로운 심정이라면, 고독은 번잡하고 시끄러운 세상으로 부터 자신을 스스로 떼어 놓음으로써 내면에서 일어서는 평온한 기분이다. 외로움은 인간을 파괴하나 고독은 인간을 풍요롭게 한다. 윤동주도, 몽테뉴도 외로움이 아니라 고독을 누렸다.

고독은 삶으로부터 도피가 아니라 진정한 자기 자신과의 대면이다. 외로움은 자기중심을 잃어 흔들리는 것이지만 고독은 자기중심을 잡아 굳건히 서는 것이다. 그러기에 외로움은 밖에서 위안을 찾아 허전함을 채우려는 욕구지만 고독은 자기 내면 안으로 들어와 영혼의 본 모습을 찾아가는 탐색이다. 사람은 혼자일때 외로워지기 십상이지만, 그 외로움을 잘 극복하고 마음의 번뇌가 정화될 때에는 나 자신의 본래 모습, 즉 고독이라는 순수한 상태를 경험할 수 있게 된다. 혼자 태어나 잠시 살다가 결국 혼자 마감하는 인생의 기본 구조속에는 필연적으로 고독을 품고 있다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이기 때문이다. 혼자라도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함께 라도 행복할 수 있다. 혼자 설수 없어서 지나치게 의존적이거나 함께하는 상대를 지나치게 간섭 또는 지배하려 할 때는 서로가 속박이요 구속이다. 내 맘대로만 되려면 상대가 부자유 해야 하고, 내 맘대로 안되면 욕구불만이 되기 때문이다.

문명이 발달되고 관계망이 더 복잡해지는 세상이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독신 가족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원하든 원치 않던 외부의 요인과 환경에 따라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우리는 직면하고 있다. 홀로된 노년층의 인구가 늘어나고 있을 뿐 아니라 황혼 이혼이라는, 예전에는 듣도 보도 못한 일들이 빈번해졌고,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청년들이 결혼을 못 하거나 자발적으로 하지 않는 독신세대가 늘어나고 있다. 일방적 자기 희생과 인내만을 강요할 수 없는 세태속에서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 이라는 대중가요의 가사를 무작정 질책만 할 수 없는 현실이 되어버렸다.

한국의 보건사회 연구원의 보고서에 의하면 지구촌에 1인가구가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이다. 스웨덴의 1인가구 비율은 전체인구의 절반을 넘어 무려 60%에 이르게 되었고, 노르웨이, 덴마크, 독일도 이미 40%를 넘어섰다. 일본은 38%에 이르고 미국도 33%에 이르고 있다. 미성년자를 제외하면 성인들 절반이 혼자 사는 시대가 닥칠것이 예상된다. 한국도 지난 2022년 12월16일자 TV조선 뉴스에 의하면 1인 독신가구가 무려 37%에 달하고 있다는 뉴스다. 이미 영국정부는 세계 최초로 정부기구에 ‘외로움을 담당하는 장관직’이 신설되었다. 외로움에 처한 사람들로 인해 발생될 사회적 부담이 만만치 않은 형편에 이르렀다는 반증이며, 영국의 앞서가는 문제의식과 선견적 안목인 것이다.

우리가 혼자 있는 시간을 외롭고 고독하게 느끼는 이유는 지금 소속된 집단, 즉 사회나 가족, 친구를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우리는 ‘소속 의존증’ 이라는 본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돈이나 물건을 잃는 것 보다 소속에서 버려지는 것을 더 두려워한다. 결국 소속 의존증을 극복하고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길 수 있게 되면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밝고 상쾌한 나 자신을 만날 수 있다. 노인에게 있어 마지막까지 남는 최후의 욕망은 누군가와 같이 있고 싶은 ‘집단욕’ 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 수용됐던 정신의학자 빅터 프랭클의 관찰에 의하면 가족이나 친지와 격리 수용된 노인은 며칠 안에 죽었다.

할머니가 죽었다고 소식을 들으면 며칠사이에 할아버지도 세상을 떴다. 연구 발표에 의하면 60세 이상의 부부가 함께 살다 부인이 먼저 죽으면 남편은 3년 안에 죽을 확률이 70%가 넘는다고 한다. 언젠가 말했듯이 삶에서 무엇보다 소중한 보물인 건강과 아내만 잘 지켜도 80세이상 사는데 큰 문제가 없다고 한다. 그만큼 홀로 외롭고 고독하게 산다는 것은 노인들에게 생명력 조차 고갈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해 두려운 감정이 아닐 수 없다.

살다보면 어느 때는 가끔씩 광야같은 허허 벌판에 혼자 서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살면서 주위에 아무도 없고 오직 혼자만이 존재하는 듯한 쓸쓸한 감정을 명절 (크리스마스나 연초 설날, 또는 추석 등)을 맞거나 보낸 후 느껴본 사람들이 꽤나 있을 것이다. 친구가 없어서도, 가족이 없어서도 아닌데, 그런 감정을 느껴본 누군가는 크게 공감의 손짓을 보낼 것이고 혹자는 어차피 인생은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길인데 그런 감정을 갖는 것조차 사치라며 대수롭지 않게생각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외로움은 삶을 무너뜨리는 질병이지만, 혼자라는 감정을 느끼는 것은 한편으로는 혼자에 대한 면역력을 기르고 자립성을 기르게 한다. 혼자와 고독이라는 단어의 차이점을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혼자(Aloneness)는 홀로 있는 상태를 말하고 고독(Solitude)은 주위에 사람이 많아도 느껴지는 근원적인 외로움을 말한다. 혼자라는 순간은 분명 외롭겠지만 자신을 지켜주는 신앙이나 마음속의 구원자가 있다면 견딜 수 있다. 문득 자신이 혼자라고 느껴질 때 하늘을 쳐다보게 된다. 너그러운 자연의 감싸안음이 필요해서 일까? 그런데 외로움을 느낄 때 그 누군가에 의지하면서 외로움을 극복하는 거 보다는 무언가에 몰두하고 하는 일을 이루면서 외로움을 날려 보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숭고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타인에 대한 봉사를 열심히 실천하는 것도 혼자라는 생각을 걷어낼수 있는 한 방법으로 생각된다. ‘좋은 날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남을 배려해서 피어나는 꽃’이라고 누군가 표현했듯, 우리네 삶이라는 것은 홀로 사는 것이 아니기에 타인과의 조화속에서 진정한 외로움을 느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우리는 결국 미래에 혼자 가는길이 외롭지 않기 위해 가족을 찾게 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주변사람들을 만나고 교류하는 것은 아닐까………….? 하늘나라(저 세상)로 이사 가는 순간까지 혼자보다는 누군가의 사랑과 아쉬움이 담긴 배웅을 받고 싶은 것이 나약한 우리네의 솔직한 모습인 것이다. 그러나 인생은 결국에는 누군가와 함께 동행할수 없는 혼자서 가는 길이기에 모든 것을 담담히 받아들여야 하고 내면 깊숙이 파고드는 본연의 외로움을 고귀한 그 무언가로 승화시켜야 할 것이다. 가족이 있어도 혼자라는 느낌이 들 때가 정말 외로운 것으로 공감과 공유가 없는 소통의 부재로 느끼는 외로움이 그 예이다.

그러나 살면서 자주 찾아오는 외로움과 고독이란 친구를 승화시켜 멋진 예술작품을 출산할 수 있다면, 누구보다 당신은 외로움을 벗삼아 나름대로 인생을 멋지게 조각한 근사한 사람으로 남게될 것이다. 인생이란 두개의 산을 오르는 일과 같다.

첫번째 산을 오르는 삶은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해 이타심으로 살아가는 헌신의 삶을 말한다. 이와같이 우리는 삶을 혼자가 아닌 함께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의 인생은 홀로 고난을 극복해야만 하는 외로은 여정이 아니라 사랑으로 지켜줄 따뜻한 집을 더불어 짓는 것이라 생각하면 결코 우리는 외롭거나 고독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독거로 살아가거나 혹은 일시적으로 혼자인 상태에 놓이는 것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고독과 외로움은 인간의 특별한 예외 사정이 아니라 본래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자유와 해탈을 터득한 인류의 스승치고 외로움의 관문을 넘어 고독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었던가? 진정내가 누구인지?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차 모는 채, 아니 알려고 하지도 못한 채 덧없이 그날을 맞이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 <문학 작가 김명열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356/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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