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특별기고문> 한국 역대 영부인들의 패션(옷, 의상)이야기

(사진) 대한민국 역대 영부인들. 뒷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 김영삼 전 대통령 부인 손명순 여사. 이승만 전 대통령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 이명박 전 대통령 김윤옥 여사, 노태우 전 대통령 부인 김옥숙 여사, 박정희 전 대통령 부인 육영수 여사, 전두환 전 대통령 부인 이순자 여사.

<김명열특별기고문> 한국 역대 영부인들의 패션(옷, 의상)이야기

오늘은 한 나라를 다스리며 대표하는 통수권자 대통령의 부인인 영부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겠다. 글을 심취하여 쓰다 보니 내용이 좀 길어졌음을 먼저 양해를 바라며 글을 이어가겠다.역대 대통령의 위상과 역할은 시대적 변화와 함께 많은 변모를 겪어왔다. 왕 중심의 군주제에서 대통령 중심의 근대 정치 체제로 전환하면서 아울러 대통령 영부인 또한 한 남자의 반려자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됐다. 물론 초기의 대통령 영부인은 존재와 역할에 있어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했고, 대통령 영부인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 법적 근거가 존재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국민은 대통령 못지않게 영부인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과 기대를 갖게 됐다.

대통령 부인, 한국적 호칭은 보통 일컬어 영부인이라고 불리 우며 영어로 발음하자면 퍼스트 레이디(First Lady)이다. 대통령부인이라는 자리는 선출직도, 임명직도 아니지만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의 최 측근으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리다.

쉽게 눈으로 확인할 수도 없고 측정하기도 어렵지만 절대로 무시할 수도 없는 숨은 권력의 실세인 셈이다. 퍼스트 레이디가 독자적인 활동을 하건 아니면 가려진 존재로 대통령의 조용한 내조자 역할에만 집중하건 간에 퍼스트 레이디는 적어도 대통령의 정책 결정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는 숨은 권력인 셈이다.

퍼스트 레이디가 독자적인 활동을 하건 아니면 가려진 존재로 대통령의 조용한 내조자 역할에만 집중하건 간에 퍼스트 레이디는 적어도 대통령의 정책결정에 어느정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다.

시대가 변하여 이젠 퍼스트 레이디들은 과거의 안주인으로서의 위치에서 벗어나 대통령의 정치적 동반자로 자리매김 돼 가고 있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다. 따라서 정치적 행위자로서의 대통령부인이라는 역할 선정이 필요하다. 대통령 부인으로서의 정치적 영향력을 인정하고, 그 정치적 영향력 행사의 부정성을 막고 긍정적 역할을 확대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모색이 요청된다.

영부인은 원래 남의 아내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특히 사회적으로 지체 높은 사람의 부인에 대한 존칭으로 흔히 쓰다가, 현대에는 대통령부인을 가리키는 말로 주로 쓰인다. 국제적으로 국가원수 부인을 가리키는 말로 널리 쓰이는 용어는 퍼스트 레이디(First Lady)이다. 미국에서 유래됐는데, 1849년 4대 대통령 제임스 매디슨의 부인 돌리 매디슨의 국장때 재임했던 12대 대통령 재커리 테일러가 조사에서 고인을 퍼스트 레이디로 지칭한 게 처음이라고 한다.

선출직 대통령이나 총리의 부인으로서 영부인은 당연히 법적 직책은 아니다. 국가수반의 부인으로서 의전과 예우 규정은 있지만, 법적 책임과 권한은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정치 현실에서 영부인은 무엇보다 대통령에 대한 사적(私的) 영향력이 워낙 큰데다 실제로 최고 권력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으로서 관행화한 정치, 사회적 역할이 분명히 존재해 온게 사실이다.

청와대 역사상 영부인의 지위와 역할을 가장 인상적으로 훌륭히 구현한 인물은 박정희 대통령 부인인 육영수여사일 것이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재임시 이미 국부로 추앙되기 까지 했지만, 영부인 프란체스카 여사는 잠시 대한부인회 총재를 맡은걸 빼고는 공적 활동에 나서지 않았다. 반면 육여사는 강골이지만 고독했던 박대통령의 자리를 목련처럼 온화한 기운으로 감싼 현숙한 부인 이미지에 더해, 어린이와 약자, 나병환자, 가난한 사람들에게 늘 따듯한 손을 내밀었던 사회운동가로서 활동도 많아 생전에 이미 국모(國母)님 칭호를 듣기까지 했다. 대통령 영부인의 역할은 노태우대통령 부인 김옥숙여사와 김영삼대통령 부인 손명순여사 시대에 접어들면서 축소기에 접어들었다. 민주화로 권위주의 시대가 종식된 후론 영부인의 정체성도 변화됐다.

‘국모’ 대신 대통령과 동지적 지위와 역할을 구축한 김대중 대통령부인 고 이희호여사나 노무현대통령 부인 권양숙여사가 그런 사례인 셈이다. 영부인으로서 공적 활동을 더욱 화려하게 발전시킨 경우는 미국의 클린턴대통령 부인으로서 나중에 국무장관에 이어 대통령출마까지 나아간 힐러리 클린턴여사의 사례도 있다. 하지만 영부인으로써 공적 지위와 역할을 어느 정도까지 당당하느냐는 당사자에게 달린 것이지 제도적으로 보장하거나 떠맡길 일은 아니라고 본다.

요즘 많은 유튜브나 언론매체, 페이스북에 문재인대통령 부인 김정숙여사에 대해서 수없이 많은 글들과 동영상이 올라와 있다. 그 내용의 대부분은 긍정적인 면 보다는 부정적 측면에서 본 좋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김정숙여사의 의상비가 몇억원이니 또는 수십억원이니 등등……..

오는 5월9일 임기를 마치고 청와대를 떠나는 문재인대통령 부인 김정숙여사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다. 그중 최근에 어느 지인이 페이스북에 올려놓은 글을 인용하여 그 전문을 소개하여드리겠다. 이 내용의 글은 변사또, 전라도 시인 정재학씨가 써 올린 글이다.

전라도 시인 정재학의 글입니다.

영부인, 그 여자…..! 내 기억이 출발하는 어린 시절의 대통령 영부인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파란 눈을 가진 프란체스카 여사였다. 그때 나는 대한민국 첫 영부인이 외국인이라는 사실에 얼마나 생소한 느낌을 받았는지 모른다. 그러나 프란체스카 여사께서는 양장보다는 한복을 즐겨 입으시고, 구멍난 양말이나 헤어진 옷을 손수 꿰매 입고 신으시던 검소한 분이셨다. 대한민국 첫 영부인이셨던 그 분은 이화장에서 돌아가실 때까지 진정 한국사람이기를 소원하셨다고 한다. 아름다운 분이셨다. 그 다음의 기억은 육영수여사였다. 학처럼 단아한 분이셨다. 끼니를 굶는 어느 가족을 위해 쌀을 보내주신 분이셨고, 그 가족이 하얀 아카시아 꽃을 밥그릇에 담아먹고 있더라는 말에 눈물 쏟던 분이셨다. 딸 박근혜를 비롯하여 삼남매의 도시락에 보리 넣은 밥을 싸주시던 검소한 분이셨다. 나머지 영부인들은 기억에 남지 않는다. 감동이 없는 영부인들이었기도 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얼른 기억속에서 지워버리고픈 여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중에는 차마 영부인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은 분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그녀들은 품위까지 없는 분들은 아니었다. 품위라, 이건 기억이 아니라 지금 직관하고 있는 현실의 영부인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이름은 김정숙, 얼굴은 넓데데하고 키는 작고, 몸은 통통한 마치 몽당연필을 연상케 하는 여자, 얼굴도 몸매도 여자로서는 별로인 수준의 여자다. 손명순여사도 비슷한 스타일이었지만, 그러나 그분은 후덕한 덕성으로 우리 국민들을 편안하게 해주시던 분이셨다. 그러나 김정숙은 덕성이나 고고함, 생활의 검소와는 거리가 먼 여자였다. 해외순방길에 따라 나선 김정숙의 의상은 수없이 바뀌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옷들이 준비됐는지, 화면에 비친 김정숙의 의상은 너무도 다채롭고 화려했다. 백번을 살펴봐도 검소하게 살면서, 국민을 살피고 국민의 모범이 되는 영부인은 아니었다. 시집간 딸까지 청와대로 데려와 사는 여자였다. 사치와 허영, 남의눈치 안보고 자기 하고픈 대로 하고 사는 그런 종류의 여자였다.

국민의 세금으로 호의호식에 젖어, 죄송스러움 없이 사는 여자가 분명했다. 강한옥(대통령의 어머니), 90이 넘은 늙은 시모는 엘리베이터도 없는 부산의 어느 낡은 아파트에 버려둔 여자였다. 청와대는 커녕 양산집에서도 모시지 않던 여자가 시집간 딸은 청와대로 데려와 살고 있었다.

남편 문재인은 종북바라기로 일관하면서, 경제부터 국방, 외교까지 망쳐놓은 역사의 죄인이 아니던가. 무엇이든 잘 할 수 있다고 거짓말로 국민을 속인 사람의 아내가 김정숙 아니던가. 한미동맹을 무력화시키고 친중 친북에 몰두하는 민족반역자를 남편으로 두었다는 사실을, 그녀는 정녕 모르는 것일까?

몽당연필을 연상케 하는 몸매에 목까지 짧은 여자는 어떤 옷을 입어도 곱지 않는 법이다. 김정숙은 그런 여자다. 옷이 어울리지 않는 여자, 그런 여자가 수없이 많은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나라 망신이었다. 심지어 샤넬 소속의 디자이너가 만든, 세계에서 단 한벌뿐인 옷을 입고 웃는 영부인 김정숙을 보면서 그 처참함에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마치 얼굴 못생긴 여자가 화장품을 덕지덕지 처바르는, 그런 안타까운 몸부림이 느껴지는 처참함이었다. 그뿐이라면 눈을 감아줄 수도 있었다. 외국 순방길에 남편보다 앞서 걸어가는 여자를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고요히 발걸음을 옮기며 남편의 뒤를 따르는 품위 있는 영부인이 아니었다. 대통령인 남편보다 앞서서 가며 나대는 그 경박함을, 그리고 한복을 입고 말 춤을 추는 여자를 우리는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하는가. 외국 순방길에 국익을 위해 노력하지 않고 관광길에 나서는 여자를 ‘우리 영부인’이라고 부를 사람은 없으리라. 심지어 대통령 없는 대통령 1호기를 타고 인도 관광길에 나선 여자가 아니던가. 그 남편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감옥이라는 사실을 김정숙이 모를 리 없다. 야권 대선후보가 신(新) 적폐청산을 말하자, 펄쩍 뛰고 있는 남편에게 곧 닥칠 운명을 김정숙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지난 정권의 폐단을 모른채 묻어두고 멍청하게 넘어갈 그런 대통령은 지구상엔 없다. 그것이 권력이다.

코로나 시대에 외국관광은 커녕 수없이 도산하는 자영업자들과 엄혹한 코로나시대를 살아가는 국민들을 아랑곳 하지 않는 여자 김정숙, 물가는 하늘높이 솟아오르고 국민은 생활고에 빠져 헤매고 있는데, 저 혼자만의 관광,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눈에 들어오던가 싶다.

문재인 취임초기 동백나무를 들고 독일로 가던 그 여자 김정숙을 기억한다. 김일성을 추종하던 좌빨 음악가 윤이상의 무덤에 동백나무를 심어준 그 무지함을 잊지 못한다. 동백림사건의 ‘동백림’이 동 베르린의 한자음 표기였던 것도 모르던 그 무식함도 잊을 수 없다. 품위도 덕성도 검소함도 없는 이질적인 여자 김정숙에게 영부인이란 호칭은 지나친 배려일 것이다. 최근 법원은 청와대 특활비와 김정숙의 옷과 구두 등 일체의 의전비용을 공개하라고 했다. 도대체 그 여자 김정숙에게 들어간 돈이 얼마나 될지, 무엇을 얼마나 쓰고 샀는지 곧 알게 될 것이다. 구멍난 양말을 꿰매 신던 파란눈의 프란체스카 여사, 자식 삼남매에게 보리밥을 넣은 도시락을 싸주던 육영수 여사, 그분들은 한 푼을 아끼면서 국민과 함께 가난의 아픔을 같이하던 영부인들이셨다. 평생을 검소하게 사셨고, 한복 옷 한 벌로 도 진정 아름다웠던 분들이셨다.

2022년 2월11일. 전라도에서 시인 정재학

지금 한국에서는 청와대 안방주인인 김정숙여사의 패션 ‘옷’ 문제로 나라 안팎이 시끌 시끌 야단법석이다. 과거 영부인들이 옷(패션) 문제로 국민들의 입방아에 오른 적은 한번도 없었다. 다만 국모의 칭호를 받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여사의 패션(옷 매무새)에 대해서는 모든 사람들이 호감과 칭찬을 많이 하고 있는 편이다. 참고로 나는 이번에 육영수여사의 재임시 패션 상황과 현재의 영부인인 김정숙여사의 패션에 대해 알고 느낀바 대로 기술해보겠다.

육영수 여사의 패션 특징은 극치를 보여주는 엘레강스 함에 있다 하겠다. 우아함을 논 할때 사람들은 항상 서양의 그레이스 켈리를 먼저 거론하지만, 육영수 여사의 패션은 겉모습뿐만 아니라 내면으로부터 풍겨져 나오는 인품의 우아함도 함께 어우러져 있는 분이시라 당연히 그레이스 켈리 정도는 비교 대상도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정말로 학처럼 우아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런데 육여사님은 한복뿐 아니라 양장 패션도 매우 세련미 있게 잘 소화해 내신다. 그러다보니 그녀의 의상이 매우 비싼 제품일 것이라 생각하고 안 좋은 이야기들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 육여사의 의상은 대부분 그냥 이름 없는 동네가게에서 구입한 것들이고 그마저도 모두 손수 재봉질로 수선해가며 오래도록 입었던 옷들이라고 한다. 몸이 명품이면 단돈 천원짜리 옷도 명품이 된다는 패션계의 속설이 다시한번 증명된 셈이다. 그리고 언제나 낮은 곳으로의 헌신적 사랑을 실천하는 인품을 가지신 분인데, 고가의 옷을 선호 할리가 전혀 없다는 게 상식적 사고의 연장 아니겠는가. 생각이 명품이면 행동이 명품이 되고, 그것이 또 그 사람 자체를 명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아무튼 육여사의 패션 특징은 그야말로 모든 여성이 원하는 궁극의 단계라고도 할 수 있는 기품 넘치는 우아함에 있다고 하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결코 아무나 흉내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후로 거쳐간 대한민국의 모든 영부인들이 육여사의 패션을 벤치마킹 했지만 그녀만큼의 아우라를 만들어낸 분은 없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젠 옷값문제로 해서 여전히 연일 매스컴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작금의 대한민국 영부인 김정숙 여사의 패션을 다시한번 보도록 하자. 항상 보고 느끼는 것이지만, 이분은 진짜 자신의 체형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의상을 선택하는 것 같다. 본래 체격 있는 사람이 기본으로 취해야 할 색상은 어두운 색이다. 그건 아무리 센스가 없는 사람도 지키는 불문율이다. 그런데 이 분은 절대로 그런거를 고려하지 않는 것 같다. 자신의 체형을 고려해서 옷을 입는게 아니라 그냥 자신의 눈에 좋아 보이는 화려한 색만 선택하면 끝이다. 어떤 사안의 주요 맥락을 잘 짚어내지 못하는 희안한 인지능력으로 인해서 항상 옷과 몸이 따로 노는 결과의 패션만을 만들어낸다. 사실 좀 풍성한 체형을 가졌다 하더라도 얼마든지 품위 있고 예쁜패션을 만들어낼 수 있다. 색상과 무늬 패턴만 잘 선택해도 절반은 건지니까 말이다. 그런데 김정숙 여사는 전혀 그런거 없다. 그냥 화려하고 밝아 보이는 색상만 고르면 그걸로 그만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패션에 어떤 뭔가의 철학 같은 것을 가진 것도 아닌 것 같다. 명품을 선호하는 성향이 또 그것을 방증하고 있는 것이다. 해서 김 여사의 특징은 언제나 튀어 보이고 싶어하는 10대 소녀의 마인드와, 그것을 따라주지 못하는 중년의 체형이 만든 슬픈 앙상블인 것이다. 물론 중년의 여성에게 몸매 관리란 쉬운 일이 아니다. 느려진 신진대사와 함께 호르몬의 변화로 해서 단 며칠만 방치해도 지구를 다 가려버릴 듯이 무한정 앞과 옆으로 퍼지기만 하는 자신의 배와 허리를 보고 있노라면 누구나 자괴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중년 여성의 패션 딜레마 아니던가 말이다. 그러나 그렇기에 더욱 더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생업에 바쁜 일반인이라면 굳이 무리하게 많은 시간을 소비해가며 뭐 그럴 필요까지야 없겠지만, 그래도 명색이 일국을 대표하는 영부인이라는 위치에 있는 분이 저렇게 무신경 적이라서야 어디 쓰겠냐 말이다.

패션이란 단순히 자신의 외적 포장을 남에게 보여주는 것일 뿐만 아니라, 사실은 거기에 그 사람의 내면도 함께 담겨있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해서 옷을 나에게 맞추는 것이지, 옷에 내가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요즘 온통 국민들이 옷값 밝히라고 아우성인데 좀 화끈하게 밝혀주시면 좋겠다. 자신의 말대로 진짜로 모두 사비로 사 입은 것이라면 특활비 내역을 공개 못할 이유가 뭐 있느냐 말인가?

정리 하자면, 육영수 여사의 패션 특징은 인품과 의상이 그야말로 환상적으로 매치되는 기품 넘치는 우아함에 있다고 하겠고, 김정숙 여사의 패션은 튀고 싶어하는 틴에이저의 마인드와 관리 못한 중년의 몸매가 빚어낸 슬픈 앙상블의 그것 이라고 한마디로 결정지을 수 있겠다.

요즘 한국에서 대통령 영부인인 김정숙 여사의 패션 문제로 나라 전체가 아우성이라서, 나 역시 관심을 갖고 한마디 해 보았다. 오랜 세월이 흘러갔지만 새삼 국민들의 가슴속에서 영원히 지지 않는 한송이 백목련, 육영수 여사가 너무나 생각나고 그리워진다.

<문학 작가 김명열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307/2022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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