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따듯한 말 한마디(마음이 따듯한 사람)

따듯한 말 한마디(마음이 따듯한 사람)

만약에 누군가가 나에게 인간적인것이 무엇인지를 묻는다면, 두꺼운 사전 하나를 건네주고 그중에서 단어 하나씩을 지워가며 가장 인간적인 단어 하나만을 남겨보라고 하겠다.

‘인간적’, 아마도 나는 이 단어 세글자를 마지막까지 지우지 않을 것이다. 따듯함, 인간적이라는 말과 이 말은 동의어라고 믿는다. 부단하게 나 자신은 따듯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아직도 내가 보기에는 나 자신이 부족함이 많이 있는 사람이다. 친구나 타인들, 그리고 나의 주변 및 이웃, 지인들에게 나의 첫 인상이나 평판이 ‘따듯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으며 살았으면 좋겠다. 나 역시 또한 자랑거리가 돈, 직업, 인맥, 학식, 명예, 부귀 같은 것이 아니라 따듯한 사람이라면 그것은 참으로 멋지고 기분 좋은 일일 것이다.

마더 테레사의 글을 보면 그녀의 따듯함이 전해진다. 어느날 나는 런던의 어느 거리를 걷고 있다가 키가 크고 깡마른 체구의 어떤 사람이 매우 비참한 모습으로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서 그의 손을 잡고는 그의 상태를 물었지요. 그랬더니 그는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습니다. “오 참으로 오랫만에 인간의 따듯한 손길을 느껴보는군요” 그리고 천천히 일어섰지요. 사랑의 친절한 행동 하나로 그의 얼굴에는 아름다운 미소가 번졌습니다. 단순한 악수만으로라도 그는 자신이 그 무엇이 된 것처럼 느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다른 인간의 따듯한 손길을 원한다. 런던의 거지가 아니라도 말이다. 마더 테레사가 거지에게 가장 먼저 준 것은 다만 따듯한 손길이었다. 쓰러진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따듯한 손길은 따듯한 말과 언제나 함께일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미워하고 상처주고 차갑게 등을 돌리는 세상에선 ‘따듯한 말 한마디’가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따듯한 말 한마디라도 세상은 다시금 살만해지고 인간은 인간다워진다.

몸의 온도는 온도계로 잴 수 있다. 그러나 사람 마음의 온도는 잴 수가 없다. 다만 그 사람의 말과 행동, 눈빛과 손길로 그 따듯함과 차가움을 느낄 뿐이다. 마음이 따듯한 한사람이 있으면 그 주변은 따듯해진다. 그리고 언제나 푸근하다. 따듯한 말 한마디, 정이담긴 말 한마디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의 세심한 말 한마디가 상처를 치유하고, 때에 맞는 말 한마디가 긴장을 풀어주고, 부드러운 말 한마디가 마음의 문을 열게 해주며, 즐거운 말 한마디가 하루를 밝고 기분 좋게 해준다.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 고마워요, 사랑해요, 잘했어요, 행복해요, 미안해요 등의 우리들의 삶을 바꿔주는 말 한마디를 자주 그리고 많이 사용하는 것 일수록 좋으며 우리들의 삶을 윤택하고 보람스럽게 만들어준다.

고마워요 라는 말 한마디가 새 힘을 얻게 하고, 고생했어요 라는 말 한마디에 힘든 줄 모르고, 괜찮아요 라는 말 한마디가 부담을 덜어주고, 사랑해요 라는 말 한마디에 많은 행복을 느끼고, 수고했어요 라는 말 한마디가 피곤함을 씻어주고, 잘했어요 라는 말 한마디에 어깨가 으쓱해지고, 행복해요란 말 한마디에 자부심이 생겨난다. 미안해요 라는 말 한마디에 미움이나 화가 가라앉고, 감사해요 라는 말 한마디에 따듯함을 느끼고, 축하해요 라는 말 한마디에 기분이 좋아지니, 이러한 삶을 바꾸는 말 한마디를 자주 사용하면 세상이 밝아지고 사회가 명랑해지며 가정이 행복해진다.

따듯한 격려와 칭찬의 말 한마디가 어느 젊은이의 삶을 바꾼 사례를 소개하여 드리도록 하겠다.

한국의 아주대학교 중증 외상센터 이국종교수(지금은 아마도 그곳에 근무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그분의 이야기이다.

이국종교수의 아버지는 한국전쟁(6.25사변) 전투중에 한쪽 눈을 잃고, 팔 다리를 다친 2급 장애 국가유공자였다. 그가 중학교때 축농증을 심하게 앓아 치료를하러 ‘차 병원’에 가서 국가유공자 복지카드를 내밀자 간호사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다른 병원에 가보라는 차거운 냉대섞인 말 한마디에 가슴을 찌르는 듯한 서운함과 치욕감을 느끼며 다른 곳의 몇몇 병원을 찾아갔지만, 문전박대를 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다른 병원을 찾아간 중에 자기의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된 외과의사인 이학산 교수를 만나게 되었다. 이학산 교수는 그가 내민 의료복지카드를 보고는 “아버지가 자랑스럽겠구나!”라고 말하면서 진료비도 받지 않고, 정성껏 치료한 후 “열심히 공부해서 꼭 훌륭한사람이 되어라”고 따듯한 말로 격려를 해주었다. 이 삶을 바꾼 말 한마디는 학생 이국종에게 꿈이 되었고 그의 삶을 이끌게 되었다.

“의사가되어서 가난한 삶을 돕자. 아픈 사람을 위해 봉사하며 살자”라는 이국종교수를 대표하는 삶의 원칙이 그때 수립되었다.

환자는 돈을 낸 만큼이 아니라, 아픈 만큼 치료를 받아야 한다. 학생 이국종이 내민 의료복지카드를 보면서 “아버지가 자랑스럽겠구나” 라는 말을 해준 이학산교수가 없었다면 그가 우리가 아는 영웅 같은 오늘날의 의사 이국종이 될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부끄럽게 생각한 의료복지카드를 자랑스러운 훈장으로 만들어준 멋진 이학산 교수의 삶을 바꾼 말 한마디가 오늘날의 이국종교수를 탄생하게 하였다. 여러분들께서도 따듯한 말 한마디로 이국종교수 같은 사람을 만들 수가 있다.

참고로 이국종교수에 대한 휴먼 스토리 이다.

중증 외상분야의 외과전문의로, 외상및 외상후유증, 총상치료 부분에서 한국 최고의 권위자이자 2018년 이후에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말 그대로의 국가대표 의사가 되었다. 그의 자랑스러운 업적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대표적인 일로는 2011년 1월 대한민국 삼호해운의 삼호주얼리호가 소말리아 해적선에 피랍되었다. 당시 석해균선장은 해적들이 쏜 총에 맞아 심각한 총상을 입었다. 1차적으로 오만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지만 석선장은 위중한 상태에 빠졌고, 오만에 급파된 이국종교수는 석해균선장의 상태를 확인한후 ‘오만에 놔두면 사망한다’고 판단, 에어 앰블런스를 이용해 한국으로 호송할 것을 적극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후송에 이용하려는 에어 앰블런스는 전세비용이 38만달러(당시 환율로 한화 약 4억원 이상)에 달했다. 이러한 난관에 봉착하자 “내 돈이라도 낼테니 일단 이송부터 하자” 라는 말과 함께 이국종교수의 이름으로 빌리되 한국 외교부가 비용 지급보증을 서는 것으로 상황이 정리됐다. 우여곡절 끝에 국내로 호송된 석해균선장은 사경을 헤매며 이국종교수의 집도하에 몇번의 수술을 거친 결과, 생존율 10만분의 1이라는 희박한 가능성을 일궈낸 장본인이었다.

두번째 실화는, 2017년 11월 북한병사 오청성씨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의 군사분계선을 넘어 귀순하는 도중 북측초소로부터 총격을 받아 5군데의 총상을 입고 UN사 헬기를 통해 아주대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이국종교수가 집도했고, 총상으로 손상된 장기에서 흘러나온 분변으로 복강과 장기들이 크게 오염되어 상태가 최악의 상태로 손을 댈 수가 없을 정도였다. 다른 의사들은 엄두도 못내고 고치지도 못할 이러한 불가능한 상태에서 이국종교수는 최선을 다해 죽을수 밖에 없는 상황의 총상 환자를 결국은 살려냈다.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환자를 치료하고 살려내는 이국종교수의 업적과 숨은 이야기는 이외에도 수없이 많이 있으나 대표적인 이상의 사례들만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다.

어린 시절 가난해서 동사무소에서 밀가루를 배급받을 정도로 가난하게 살았던 그, 정부포상 국민추천제에 따른 국민훈장 무궁화장 2번째 수훈자, 그가 오늘날 이렇게 살아있는 백의의 천사기 된 내면에는 중학생시절 이학산교수가 해준 말, 따듯한 격려와 칭찬의 말 한마디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자랑스러운 이국종교수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매주 칼럼이나 기행문 등의 글을 써 올릴 때 마다 독자들께서 따듯하게 이멜로 보내주시는 격려와 칭찬, 공감의 말씀은 나에게 크나큰 힘과 삶의 보람을 느끼게 해주시는 청량제이자 마음을 따듯하게 데워주는 화로 역할을 해주고 있다. 이번주도 나의 글을 읽고 마음이 따듯한 사람의 따듯한 말 한마디를 기대해 본다.

내가 해주는 따듯한 말 한마디가 세상을 바꾸고 사회를 따듯하게 만들어준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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