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기자의 이스라엘, 요르단 성지순례 기행문<7> 

김명열기자의 이스라엘, 요르단 성지순례 기행문<7>

가이샤라 성 및 갈릴리 호수 보트 유람, 그리고 유적지 다수 순례.

 

편안하게 호텔에서 휴식과 잠을 취하고 아침 일찍 우리일행들은 성지순례일정에 올랐다.

짧은 일정에 많은 곳을 순례하며 둘러보다보니, 오늘의 일정도 빠듯한 일정속에 가 볼 곳들이 여러곳 들이다. 먼저 가이샤라 빌립보성을 필두로 다음은 갈릴리 호수 위의 선상 투어, 점심식사 이후에는 팔복교회를 비롯하여 오병이어 교회, 가버나움 교회, 베드로 수위권 교회, 등등의 여러 곳을 순례하며 둘러볼 예정이다.

첫번째 순례지인 가이샤라 빌립보 성을 찾아가는 길은 조금은 공포감을 느낄 수 있는 지역이었다. 가는 길의 바로 옆 몇발자욱 건너편은 요르단의 땅으로, 철조망의 울타리가 국경선을 경계로 끝없이 이어져 있었으며, 곳곳에는 지뢰밭이 펼쳐져 있어 그곳에 접근하여 한발짝이라도 잘못 디디면 지레가 폭팔할 수 있는 아주 위험하고 두려운 지역이다. 예전에는 이곳이 요르단의 땅이었는데 중동의 6일 전쟁이후 이스라엘의 승리로 이곳의 땅이 이스라엘 땅으로 귀속되었다고 한다. 중동전쟁의 역사적 전사 이야기는 다음에 시간이 허락되는 대로 별도로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다.

제일먼저 도착한, 베드로가 신앙고백을 한 가이샤라 빌립보성의 이야기이다.

가이샤라 빌립보 지방은 헬몬산에서 남서쪽으로 13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도시로 요단강의 원류가 되는 샘물이 솟아나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솟아난 샘물이 흘러서 요단강을 이루고 결국은 갈릴리 바다를 이룬다. 헤롯대왕의 아들 빌립은 무너진 판 신전위에 다시 신전을 세우고 이 신전과 이곳의 지명을 로마황제 아우구트스를 기념하여 가이사리온(Gaesarion)이라 불렀는데, 이미 그의 아버지 헤롯이 로마황제를 위하여 바쳤던 지중해 해안의 가이샤라와 구분하기 위하여 이곳을 자신의 이름을 따 가이샤라 빌립보라 불렀다.

이곳은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태복음 16:16)” 라는 신앙고백을 한곳으로 의미 있는 장소라 할 수 있다. 아울러 이곳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목양신판(Pan) 신전을 비롯하여 로마황제 신전 등 각종 신전을 세워놓은 우상의 도시였으나 지금은 신전 기둥의 흔적만 남아있다.

가이샤라 빌립보 지역 바로 옆 근처에는 단(공원)이 있다. 단은 물의 근원지라 할 수 있다. 단 공원은 이스라엘에서 보기 드물게 울창한 수목과 맑은 샘물과 시냇물(요단강 원류의 물줄기) 이 조화를 이룬 매우 아름다운 국립공원이다. 내가 방문한때가 마침 11월달이라서 다음달에 맞을 성탄절을 기해 이곳에서 마땅한 나뭇감으로 십자가를 만들려고 공원 산책로를 돌면서 십자가를 만들 나무를 찾고 뒤졌으나 마땅한 나무재료가 없어 구경도 제대로 못하고 고생만 하다 말았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땅, 이곳 성지에서 자라난 나무로 십자가를 만들어 크리스마스

때 교회의 강대상 제단에 올리면 무척이나 의미 있고, 더군다나 수천리 밖 다른 나라 이스라엘의 성지에서 구해온 나무인지라 더욱 그 값어치와 영적인 은혜가 깊어지게 될 것으로 생각되어 눈여겨서 살피고 찾았으나 그에 합당한 나무 재료가 없어서 아쉽지만 포기했다.

내 생각으로는 거기에 맞는 적당한 십자가 사이즈의 나무가 있어 그것을 찾아 주워서 보석을 다루듯이 조심하고 정성스레 간직한 채 들고 나왔는데, 우리를 안내해주시는 전병규 목사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그 나무는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단단하지 않아서 십자가 재목으로는 부적합 하다”고 하는 말에 김이 새가지고 미련만 남기고 내다 버렸다.

어쨋거나 우리들 일행은 그곳을 방문해 오랫만에 신선한 공기와 산소를 마음껏 마시며 즐거운 발길로 공원의 산책로와 순례길을 따라 수천년 전의 역사적 유적들을 살펴보고 둘러보았다. 단 공원 내부를 둘러보기 위해 우리가 그곳을 갔을 때 마침 이스라엘 학생들을 만났다. 초,중,고생들이 함께한 듯, 조그만 아이들로부터 청년들까지 많은 학생들이 스쿨버스를 타고 이곳을 방문해 왁자지껄 떠들며 우리들 곁을 지나갔다.

서로가 손을 흔들며 미소로서 인사를 나누는 중에, 항상 전쟁이나 테러의 공포속에 이웃나라를 경계하며 긴장속에 살아가는 유대인들이 아닌, 평범하고 평화로운 미국의 어느 도시의 초중고 학생들을 보는듯한 평화로움과 자유스러운 분위기속의 느낌을 감지할 수 있었다. 지나는 어느 교사(선생님)과 잠깐 인사를 나누며 궁금한 점이 있어서 물었다. 이곳에서 불과 3~4마일 밖에는 요르단 땅이고 또한 멀지않은 곳에는 시리아와 레바논의 적대 국가들이 둘러싸고 있는데, 이러한 상황과 지리적 환경에서 이렇게 평화스럽게 필드 트립이 가능하고 노래가 나오느냐?고 농담반 진담 반으로 물어봤다. 그랬더니 그의 답변, “아무 문제와 걱정이 없다. 이제라도 전쟁이 터지면 자기라도 당장 달려가서 총을 들고 싸우며 적을 물리칠 준비가 돼있다”고 단호하게 답변했다. 그의 말을 들으며 확고하게 정신무장이 돼 있는 그들 이스라엘 유대민족의 후손들에게 경의감과 국가를 위한 충성심과 사명감을 느낄 수 있었다. 만약에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 북한의 김정은이가 쳐들어온다면 과연 목숨을 바칠 각오로 총대 들고 전장터로 달 려 나갈 용사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도 군인이 아닌 민간인으로서 저들과 같이 용감하게 생업을 팽개치고 싸우러 나갈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생각을 해보니 저절로 고개가 갸우뚱 해진다. 이곳은 이스라엘 학생들이 필드트립을 나오는 단골 코스의 국립공원과 유적지라고 한다.

다음의 일정으로는 갈릴리 바다의 보트 투어이다.

갈릴리바다(호수)는 이스라엘의 생명수이다. 우리가 보아왔던 광야의 느낌과는 전혀 다르다. 유대인들이 믿었던것처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의 원천이다. 갈릴리 호수는 그 모양이 하프 (Harp)모양의 악기를 닮았다. 그 악기를 히브리어로 긴놀(Kinnor)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이 호수를 구약시대에는 긴네렛 호수로(민수기 34:11, 수 12:3), 신약시대에는 게네사렛 호수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갈릴리 호수는 지구의 중생대 백악기의 제3기 지각변동이 일어났을 때 요르단 계곡이 함몰한 결과로 생긴 것으로, 여기에 해발 2814미터의 헤르몬산에서 훌라 계곡을 따라 흘러온 물과 주변 골짜기에서 흘러온 물이 만나 이루어진 호수이다. 그러나 이곳 사람들은 이 호수를 바다로 생각하며, 호수와 바다 두 가지를 함께 사용해 왔다. 지중해보다 해수면의 높이가 해저 212m로 매우 낮은 곳에 위치하며, 호수는 남북의 길이가 21Km, 동서 13Km, 둘레가 약 50Km정도로 매우 크다. 갈릴리 호수는 현재 40여종의 물고기가 살고 있다. 예수님 당시에도 이곳에서 잡는 물고기로 끼니를 때웠을 만큼 한때 유대인들의 중요한 어

장이었다. 호숫가 근처의 식당에서는 지금도 ‘일명 베드로 고기’라는 생선으로 만든 음식을 내놓고 있다.

마침 우리들 일행이 갔을 때도 점심식사 시간을 맞아 우리들은 그 식당으로 갔는데, 베드로 고기라는 생선이 얹혀진 식사 접시를 받아들었는데, 그렇게 나온 생선의 이름은 이곳에서 볼 수 있는 틸라피아 생선과 매우 같은 모양의 고기였다. 돗대기 시장처럼 식당안은 방문객이나 관광객, 순례객들로 법석을 이루며 식탁마다 호기심 반 기대감 반으로 들떠서 생선이 담긴 음식접시를 받아들었다. 음식접시를 받아든 사람들은 저마다 식성대로 생선(베드로 고기)를 즐기며 먹었다. 그런데 나만은 별개였다. 받아든 음식 접시에서는 생선비린내가 확 풍겨오면서 비위를 건드렸다. 옆이나 앞의 사람들은 베드로 고기가 맛있다며 연신 고기 뼈를 발라내며 잘들 먹고 있는데, 유독 나와 나의 집사람은 프렌치 프라이 몇쪽을 입안에 집어넣고 나서 이내 숟가락을 놓고 말았다. 모두들 맛있다고 먹고 있는 그 베드로 고기가 담긴 그 생선 요리의 음식은 나에게는 여~엉 아니 올시다 였다. 점수로 따진다면 100점에서 20점을 줘도 후한 점수를 준 듯 하다. 점심식사를 설치고 나서 다음 일정을 향해 밖으로 나왔다.

점심식사는 갈릴리 호수 보트 투어를 마친 다음에 식사를 했는데, 우선은 갈릴리 호수 보트 투어 이야기를 들려드리도록 하겠다.

가이샤라 빌립보 성을 보고 난후, 갈릴리 호수로 가는 도로변 길, 호수변 기슭에는 바나나, 목화, 오렌지, 올리브 등등의 각종 농산물들이 풍부하게 자라나고 있었으며, 한편으로는 꽃 화훼단지를 조성하여 다량으로 꽃을 생산, 재배하여 전 세계로 수출하고 있다. 그리고 울창한 숲이 있어 기온이 높은 한낮에도 그늘을 드리우고, 이름 모를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생기가 넘치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또한 이곳의 물은 이스라엘 전 지역과 관계 수로를 통해 이스라엘 남쪽으로 360Km나 떨어져있는 네게브 사막의 세데보게(Ssede Boque)까지 공급된다. 호수에서 처음 시작되는 송수관은 큰 자동차가 드나들 정도로 크지만 점차 가늘어지면서 흡사 사람 몸의 혈관처럼 이리 저리 연결되어 전 국토를 적셔주는 것이다. 그리고도 사해로 물을 흘려보낸다. 그러나 갈릴리는 영적인 면에서도 생명수 역할을 한다. 갈릴리는 예수님의 복음 선교 활동의 중심지였다. 어디를 가도 갈릴리 호숫가는 곳곳이 성서의 무대요, 역사의 현장이다. 갈릴리 호수를 중심으로 가버나움, 거라시, 고라신, 벳산, 나사렛, 가나 등이 그리 멀지않은 곳에 있다. 제자들도 대부분 이곳에서 부르심을 받았으며, 베드로가 살던 집도 갈릴리 호수가의 가버나움 마을이었다.

오병 이어의 기적을 행하시던 들판도, 유명한 산상보훈을 선포하신 언덕도 갈릴리 호숫가였다. 믿음이 부족했던 베드로가 풍랑에 빠진 곳도 이곳 갈릴리 호수였다. 그리고 갈릴리 호수를 중심으로 많은 기사와 이적을 보이셨다. 따라서 최근 고고학적 발굴과 연구에 따르면 갈릴리 일대는 초대교회의 중요 사적지였음이 입증되고 있다.

이런 이유로 갈릴리호수를 찾아오는 순례객들은 호반의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감상하며, 그 옛날 이적을 행하시며 복음을 선포하던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걸어도 보고, 나무로 만든 목선인 유람선을 타보기도 한다. 유람선을 타면 티베리아의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예수님의 모습이 어른거리는 환상에 빠지기도 한다. 우리 순례객 일행들은 전 목사님의 인솔하에 목선에 올라 갈릴리 호수위를 배를 타고 유유히 돌아보며 그 옛날 예수님의 업적과 발자취를 더듬어보았다. 우리 일행들이 목선에 오르자 선원중 한명이 푯대(깃대)위에 이스라엘 국기와 한국의 태극기를 계양해 주었다. 한국의 태극기가 계양될 때는 애국가가 울려나와 우리 모두는 기립하여 애국가를 목이 터져라 부르면서 눈시울을 적셨다.

수억만리 이역 타국땅에서 우리 한국인들을 위해 들려주는 애국가는 모두의 심금을 자극하고 고국에 대한 향수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솟아 나오며 울먹이며 애국가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애국자가 되고, 모두가 선구자가 된 기분으로 너나 할 것없이 힘차고 우렁차게 애국가를 불렀다.

선상 보트, 목선이 갈릴리 호수 위를 유유히 유영하듯 물위를 미끄러져 달릴때 줄곳 앰프에서는 찬송가와 복음성가가 흘러나와 더욱 신심을 꽃피우며 은혜롭게 갈릴리 호수선상 투어를 즐길수 있었다. 우리 순례객들을 위해 찬송가와 복음성가를 들려주는 선원과 선장의 배려와 마음이 무척이나 고맙고 기뻤다. 갈릴리 호수 투어를 하면서 저쪽 호수편을 바라보다 보니 마치 예수님께서 이쪽 목선위에 있는 나를 보시고 소리치며 물위를 걸어서 달려 오실것 같은 환상을 느꼈다.

<다음 주에 이어짐>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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