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세상속의 이런 저런 이야기

<김명열칼럼>  세상속의 이런 저런 이야기

 

영어속담에 ‘토끼 두마리를 쫓으면 한마리도 못 잡는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의 뜻은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면 오히려 하나도 얻지 못한다는 것으로, 마음을 비우라는 의미이다.

다산 정약용선생이 편찬한 속담집인 이담속찬(耳談續纂)에도 이와 비슷한 ‘게도 구럭도 다 잃었다’는 속담이 나온다. 게를 잡으려다 준비했던 작은 망태기마저 잃어버렸다는 말이다. 일본에는 ‘벌레와 벌을 둘 다 얻을 수는 없다’는 말이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욕심에 대한 경계와 함께 ‘양자택일’의 중요성을 알리는 격언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보면 누구나 욕심이 생겨나서 많은 것을 얻으려고 노력하며 추구한다. 나의 마음이나 욕심대로 그 모든 것이 뜻대로 이루어져서 그것을 성취하고 얻으면 좋으련만 그러지 못한 경우가 너무나 많다. 그 많은 것을 쫓고 욕심내다보면 그중에서 단 하나도 얻지 못하고 수포로 돌아오는 예가 허다하다. 인생을 살다보면 누구나 경험적으로 알게되는 ‘법칙’이 하나 있다. 양자택일의 순간에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얻고, 하나를 얻으면 반대로 하나를 잃는다는 것이다. 연예인들은 유명해질수록 사생활을 잃는다. 운동부 학생들은 운동에 전념할수록 공부에 소홀해지기 마련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욕심을 한꺼번에 부려 여러 가지 일을 하려하면 그 가운데 하나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 너무 모든 일에 욕심이나 미련을 두지 말고 한가지의 일에 집착하고 정진하자는 의미의 이야기이다.

또 다른 한편의 이야기로는, 우리들이 살아가는 주위를 살펴볼 것 같으면 과거에 얽매여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과거에 연연하며 살아간다면 그만큼 자신의 삶의 인생길이 힘들어지기 때문에 가능한 한 하루속히 그 과거의 늪에서 벗어나기를 권해드린다. 이런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을 망치는 사람들이다. 즉 삶을 스스로 어둡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잊어야 할 것은 빨리 잊어버리자. 과거의 노예가 되지 말자는 말이다. 세상을 살다보면 때로는 체념이나 망각도 하나의 지혜이며 슬기로움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신의 눈으로 볼 때는 하나의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과거에 살지 말자. 내가 사는 곳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다. 물론 과거를 살펴서 현재를 판단하고 미래를 짐작하는 일도 중요하다. 장래에 대한 예견은 과거를 되돌아보는 데에 있으며, 최고의 예언자는 과거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과거에 매달려서는 안 된다. 장래의 일이나 주의하여 예전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말아야한다. 고민한다고 해서 흘러간 물이 다시 오지는 않는다. 물방아는 흘러간 물로 방아를 찧지 않는다. 과거의 일은 논의해보아야 소용이 없다. 슬퍼도, 분해도, 미련이 남았어도, 과거는 과거로 묻어버려야 한다. 과거지사로 날이면 날마다 새로운 날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 톱질이 끝난 톱밥을 다시 톱질할 수는 없다. 과거는 톱밥과도 같은 것이다. 이미 끝난 일을 근심하고 걱정하며 미련에 집착하는 것은 톱밥을 다시 톱질하듯 소용없는 짓이다. 집나간 머슴이 일을 잘했다는 말이 있다. 놓친 고기가 크게 보인다는 말도 있다. 흔히 잃어버린 것을 애석하게 여기고 현재 가지고 있는것 보다 먼저 것이 더 좋았다고 여기기 쉽다.

지난날의 이야기가 한결 더 아름다운 법이다. 그래도 과거에 집착하며 얽매여서는 안 된다. 뒤를 돌아보지 말고 앞으로만 힘차게 걸어 나가야한다.

축록자불고토(逐鹿者不顧兎)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의 뜻은, 사슴을 쫓는 자는 토끼를 돌아보지 않는다. 즉 큰일에 뜻을 두고 있는 사람은 작은 일에 얽매이지 않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옛날 중국의 한나라 무제(BC179~122)때 회남왕 유안이 편찬한 회남자(淮南子) 17권 설림훈(說林訓)에 나오는 말이다. 회남자에는 사슴을 쫓는 사람은 토끼를 돌아보지 않으며, 천금을 거래하는 사람은 푼돈을 다투지 않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말의 뜻은 큰일을 이루려는 사람은 작은 일에 얽매이지 않고, 큰 이익을 얻으려는 사람은 작은 이익에 매달리지 않는다는 뜻을 나타낸다. 여기에서 축록자불고토 라는 말이 비롯되었다. 비슷한 표현으로 축록자불견산(逐鹿者不見山)이라는 말이 있지만, 의미는 크게 다르다. 사슴을 잡으려 쫓는 사람은 주위의 산을 돌아보지 못한다는 뜻의 축록자불견산은 명예와 이익 등에 눈이 어두워 도리나 위험 등을 돌아보지 못함을 이르는 말이다.

축록자불고토는 큰일을 쫓는 사람이 작은 일에 얽매이지 않음을 나타내지만, 축록자불견산은 거꾸로 눈앞의 작은 이익에 미혹되어 더 큰 것을 돌아보지 못함을 나타낸다. 이와 비슷한 고사성어로는 소탐대실(小貪大失)이란 말이 있다. 이말의 뜻은 ‘작은 것을 탐하다가 큰 것을 잃는다’라는 말의 뜻이다. 이 말은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진나라 혜왕이 촉나라를 멸망시킨 계략에서 유래되었다. 혜왕은 촉나라 제후가 욕심이 많다는 것을 알고 이를 이용해 계책을 세우는데, 먼저 돌로 소 다섯마리를 만든 후 꽁무니쪽에 금을 뿌려놓고는 ‘금 똥을 누는 소’라고 소문을 퍼뜨렸다. 이 소문은 이내 촉나라에까지 퍼졌고 이를 들은 촉나라 제후는 그 소를 갖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그때 혜왕이 화친의 예물로 그 소들을 보내겠다고 기별을 한다. 진나라 사신으로부터 올라온 헌상품 가운데 금 똥을 누는 소가 있음을 확인한 촉나라 제후는 진나라의 계략일지도 모른다는 신하들의 간언을 무시한채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도성입구까지 나와 사신단을 맞이한다. 그러다 갑자기 진나라 병사들이 숨겨두었던 무기를 꺼내 촉을 공격하였고, 촉 후는 사로잡히고 말았다. 이로써 촉나라는 멸망을 당하고 보석의 소는 촉나라의 치욕의 상징으로 남았다. 촉 후의 소탐대실이 나라를 잃게 만든 것이다.

세계 인류역사상 가장 큰 소탐대실의 주인공은 창세기 초창기의 아담과 하와이다. 하나님께서는 지상의 낙원이자 영원한 평화의 동산인 삶의 안식처 에덴동산을 아담과 하와에게 선물로 주셨다. 그러나 그들은 뱀의 유혹에 못 이겨 먹음직한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써 에덴동산 전체를 잃었다. 위의 예화는 작은 이익에 연연하는 탐욕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잘 알게 하는 이야기이다.

촉나라 왕은 부유함에도 더 많은 것을 탐하다가 결국 진나리에게 망한 케이스이고, 아담과 하와는 먹을 것이 풍부한 지상낙원인 에덴동산에서 뱀의 유혹에 빠져 하나님말씀을 거역하고, 먹음직도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도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열매를 따 먹음으로 인하여, 오히려 가졌던 것을 모두 잃고 마는 우를 범한 것이다.

이와 같은 사례를 예로 본다면 인간의 생사화복은 각자의 타고난 복 말고도 성격이나 마인드가 어떤가에 따라 결정된다. 그만큼 삶에 대한 마음의 자세가 중요하다. 과유불급이라 했다. 뭐든지 지나치면 화가 되는 법이다. 지나침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을 잃게 하여 이성을 마비시키는 경향이 있다. 이런 상황에 빠지지 않으려면 탐욕을 내려놓고 자신을 냉정하게 살피는 눈을 길러야 한다. 그래야만 생을 바르게 유지하고 가치 있게 만든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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