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교만과 겸손
한국의 농촌진흥원 연구소에서 조기에 재배된 개량형 품종 벼이삭을 보여주며, 금년 1월초에 심은 벼가 벌써 이삭을 맺고 영글어 고개를 숙이고 있다며, 그 벼에 대한 설명을 TV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벼이삭은 노오랗게 잘 익어서 풍성한 결실을 자랑하며 아래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러한 모습을 화면을 통해 보면서 얼핏 머리속에 이런 속담이 떠올랐다.
“벼는 익을 수록 고개를 숙인다.”
어릴적에 들은 어르신들의 말씀은 지금에 와서 들어도 무릎을 치게 만든다. 인생의 깊은 경륜에서 우러난 살아있는 교훈들이기에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한 말씀들 중에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다”라는 속담이 있다. 학식이나 교양이 있고 수양을 쌓은 사람일수록 교만하지 않고 겸손함을 이르는 말이다. 표현은 달라도 우리나라 속담에는 비슷한 뜻을 지닌 속담들이 다수 있다. “곡식이삭은 여물수록 고개를 숙인다”, “여문 곡식일수록 더 머리를 숙인다,”, “물이 깊을수록 소리가 없다”, “병에 가득찬 물은 저어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라는 속담들이 그런 본보기들이다. 좀더 직설적인 표현들도 있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속담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이 더 있는 체 한다는 말도 있다. 어쨋거나 우리나라 속담의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은 교양이 있고 수양을 쌓은 사람일수록 더욱 겸손해지고 남 앞에서 자신을 내 세우지 않는다는 의미로, 사자성어로는 저수하심(低首下心) 이라고도 한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열두번의 허물을 벗고 살아간다고 한다. 아니 생각해보면 하루에도 몇번씩 바뀌는지 모른다. 그 허물은 때로는 험한 모습으로, 때로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하기도 한다. 보통의 인간인 우리들은 허물을 벗고 바뀔 때마다 표정이 바뀌고 말투가 바뀌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두고 삶에 있어 한마디로 희로애락이라고 하는 것이 아닐까…………….
속담의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라는 말이 명언으로 인정받고 있는 말이라면 과연 그 뜻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의문이 생겨 난다. 벼는 알이 영글기 전에는 고개를 들고 있다가 알이 찰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실체적 현상이 인간을 비유한 말이 틀림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인간도 지식 또는 사회적 경험으로 머리에 채운 것이 많은 사람은 고개를 숙인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그렇다면 요즘 시대의 흐름으로 보아서는 조금은 이해의 수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의 개인적인 생각으로, 무조건 고개를 숙일 것이 아니라 머리에 채운 것을 말로 표현하여 세상에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의 이야기는 그것을 과시하라는 말이 아니고, 말하는 자세가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머리속에 찬 것이 많다는 것은 사회의 지도급 인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인데 그런 사람이 알이 차서 고개를 숙인 벼처럼 아무 말없이 자리하고 있다면 이기주의적 또는 방관의 자세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라는 좋은 속담에 대한 나의 생각은, 알이 차서 고개를 숙인 벼처럼 묵직하고 품격 있는 자세로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모습을 전제로, 때로는 이야기하는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더 욕심을 부려보면 상대의 허물을 캐어내는 노력이 아닌, 상대를 칭찬하는 자세를 취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강과 약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다.”라는 말에 부합되는 사람이 아닐까 하고 또 다른 각도에서 생각을 해본다.
높은 곳에 오르려면 낮은 곳에서부터 시작하라는 사자성어 등고자비(登高自卑)는 사실, 높이 오를수록 자신을 낮추라는 숨은 교훈을 담고 있다. 높은 자리에 올랐다고 또 돈을 많이 번다고, “그 사람 안 그랬는데 많이 변했더라.”는 뒷말을 듣게 된다면 그 사람은 집단 내에서 알게 모르게 따돌림을 당하는 외로운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이다. 근본 됨됨이가 충실한 사람은 헛되이 우쭐대거나 자랑하고 싶어 안달하지 않는다. 병에 가득찬 물은 흔들어도 소리가 나지 않고, 물은 깊을수록 소리가 없다. 도랑물이 소리를 내지 호수가 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저 빈 수레가 요란하고 빈 깡통이 시끄러운 법이다. 요즘 세상에서 겸손하면 깔본다고 하지만, 겸손해서 손해 보는 일보다 은근히 자랑하려다 비웃음 사는 일이 더 많다. 사랑과 자랑은 숨길수가 없다. 둘다 다 티가 나니까……. 자랑의 반대는 겸손이지만, 겸손은 나를 낮추는게 아니라 남을 높이는 것이다. 스스로 깎아내리지 않아도 상대방을 칭찬하고 존대함으로써 겸손의 미덕을 보이고, 고래도 춤추게 할 수 있다. 자화자찬으로 스스로 춤을 춘다면 그것은 꼴볼견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겸손이란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낮추는 태도를 말한다. 요즘 같은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 자신의 행복과 세상을 좀더 아름답게 만들어 가는데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덕목이 겸손의미덕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겸손의 가치와 의미를 알고는 있지만 막상 실존적 사회생활에서는 나 자신의 못난 이기적인 마음과 자만심의 잣대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나는 가장 겸손한 사람이 가장 위대한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도가(道家) 철학의 창시자인 노자는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명언을 남겼다. 이것은 물은 만물을 양육케 해주고, 세상의 더러운 것을 다 씻어주며 가장 낮은 곳에 처해도 묵묵히 자기의 역할을 다하기 때문이다. 물이란 진리를 상징하기도 한다. 그래서 공자는 물과 같은 친구를 사귀라고 했고, 불교에서는 물로 번뇌를 씻는다고 했으며, 기독교에서는 물로 세례를 주기도 한다. 한마디로 물과 같은 사람이 겸손한 사람이다.
이 세상에는 잘난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잘난 사람들만 가득한 세상이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사회문제들을 내 스스로 무릎을 꿇고 세상의 짐을 말없이 지고 가는 겸손한사람은 매우 적다. 만약에 사회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이 겸손하면 얼마나 아름답게 보이겠는
가?. 그러한 미담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면 우리는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소학 집주에서 ‘사람의 덕행은 겸손과 사양이 제일이다.(人之德行謙讓爲上)‘라고 하여 겸손의 미덕이 세상을 아름답게하는 덕목이라고 말한다. 또한 겸손의 미덕을 실천함에 대하여 가언(嘉言=아름다운 말)편에서는 “평생토록 길을 양보해도 백보에 지나지 않을 것이며, 평생토록 밭두렁을 양보해도 한마지기를 잃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이 구절들은 우리 모두가 겸손을 실천하는데 얼마나 인색했는가를 되돌아보게 하는 대목이다. 구약성서 잠언18장12절에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이니라.”고 기록되어있다. 이것은 편안하게 안주하거나 자만이나 방심하지 않고 늘 겸손함으로써 어떠한 어려움도 헤쳐 나갈 수 있고 존귀함까지 얻을 수 있다는 교훈의 말씀이다. 우리는 이러한 당위의 법칙을 모두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겸손의 가치와 의미를 잘 알면서도 실제의 생활에서는 겸손을 실천하는데 주저하고, 순간순간 인식한 이기적이고 교만한 마음을 내보이게 된다.
결론적으로 오늘의 글 내용의 요점은 익지 않은 벼이삭처럼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교만 떨지 말고 익은 곡식처럼 고개를 숙이고 겸손하게 세상을 살아가자는데 그 촛점을 맞췄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