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살구 이야기

 

<김명열칼럼> 살구 이야기

 

우리나라 가곡(동요)중 가장 대표적으로 많이 불리는 노래가“고향의 봄” 노래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중략~. 우리들은 모두가 다 고향을 가지고 있다.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그곳을 대개들 고향이라고 부른다. 나 역시 고향을 가지고 있다. 위에 있는 노래의 가사처럼 충청도 어느 시골 나의 고향마을에서는 봄이 되면 아기 진달래부터 핑크빛의 복숭아꽃, 하얀색을 띈 연분홍빛의 살구꽃 등등의 온갖 꽃나무들이 꽃을 활짝 피워내 장관을 이룬다. 그중에 살구꽃은 특이하게도 나의 마음을 사로잡아 그 꽃에 매료되어 꽃그늘아래 앉아서 숙제도하고 동화책을 읽었던 기억도 떠오른다. 요즘 같은 계절에는 살구가 노오랗게 익어서 그것을 따먹는 재미는 그 어떤 것보다도 즐거웠다. 살구의 원산지는 중국이긴 한데 최초의 재배 흔적은 아르메니아에서 발견되면서 아르메니아가 자국이 원산지라고 주장하고 있다. 살구의 맛은 시면서 달다. 다만 우리나라 한국에서 재배되는 살구는 비슷한 종류의 복숭아나 자두보다는 맛의 강도가 약한 편이다. 하지만 터키에서 재배되는 살구는 지중해성 특유의 뜨겁고 강한 일조량덕분에 복숭아나 자두 등의 과일들보다는 비교도 안될 만큼 단맛을 자랑한다. 터키의 대표적인 수출품중 하나일정도로 터키는 살구의 재배가 활발하다. 터키에 가서보면 살구 주스는 물론 살구 콜라까지도 만들어서 팔고 있다. 살구 비누도 한국보다는 값이 훨씬 싸다.

지난달 6월 27일부터 7월 8일까지 나는 모 여행사에서 실시하는 동유럽 및 발칸반도의 여러 나라를 순방하는 11박12일의 여행프로그램에 참가하여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일정의 9일째 되는날(7월5일), 나와 함께한 관광객 일행들은 오스트리아의 비엔나를 들러 관광을 하고 비엔나 오케스트라 악단의 공연을 관람한 후 호텔에서 하룻밤을 자고 아침 일찍 체코의 프라하를 향해 관광버스에 올랐다. 잘 포장되고 아름다운 숲과 넓은 들로 조화를 이룬 전원적인 자연동산속에 묻혀, 펼쳐지는 활동사진 같은 주위의 환경을 감상하며 신나게 고속도로를 달려갔다.

얼마를 달렸을까?. 도로 위 눈앞에 보이는 모습은 끝도 없이 도로위에 멈춰 서있는 차량들의 기나긴 행렬의 모습뿐이었다. 대충 어림잡아 4~5마일은 수많은 차량들로 주차장을 이루며 졸듯이 멈춰서있는 차량들의 모습뿐이었다. 아마도 멀리 어디선가 대형 사고라도 발생한 모양이다. 이러다가는 오늘의 여행 스케줄 모두가 취소되는 상황이 발생될 수 있는 난감한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이때 우리의 여행안내를 도와주는 가이드 레디, 최은영 선생이 번갯불 같은 기지를 발휘해 우리는 비상등을 켜고 갓길로 나와 근처의 Exit으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지방도로를 따라서 시간은 걸리겠지만 체코의 프라하를 향해 악세레이다를 밟았다.

노오랗게 피어나 태양을 향하여 미소 짓고 있는 해바라기 꽃과 잘 익어서 고개를 숙이고 추수를 기다리는 밀밭으로 끝없이 지평선을 모자이크로 수놓은 평화롭고 전원적인 들판을 가로질러 우리들이 탄 관광버스는 어느 듯 국경 없는 체코로 입국했다. 체코로 들어와 보니 농촌의 곳곳에는 유난히도 살구나무가 많이 눈에 띈다. 그리고 노오랗게 익어 주렁주렁 탐스럽게 매어달린 살구는 우리의 시각을 즐겁게 해주며 먹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어쩌랴. 멈출 수 없는 촉박한 여행일정에 한가하게 버스를 세우고 살구를 따먹을 수는 없었다. 버스는 이러한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버스기사 아저씨는 부지런히 가속 페달을 밟고 있었다. 얼마를 달렸을까?. 버스 뒷좌석 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화장실이 급하다는 전갈이다. 비엔나를 떠나온지 3시간이 넘었다. 특히 아침에 물을 많이 마신사람과 음료수를 많이 마신사람은 생리적인 배설의 필요성을 무시할 수가 없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급하게 근처의 주유소에 버스를 세웠다. 그곳에는 마침 공중 화장실이 있어서 승객들의 민원사항을 해결할 수 있었다. 어느새 화장실 앞에는 사람들로 만원이 되었고, 남자들보다는 여자들의 여행객이 월등히 많은 상황에서 남자들은 쉽게(?) 용변을 볼 수 있었으나 숫자가 많은 여자분들은 길게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이때 또다시 지혜를 발휘했다. 남자의 화장실을 여자들이 사용하는 것이었다. 문밖에서는 여자들이 보초를 서고 대기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이렇게 하여 화장실의 민원사항은 해결됐다. 이곳은 다른 곳에서 돈을 받고 있는 화장실 사용료를 받지 않고 무료로 대여해주었다.

사람들은 그 고마움에 답례라도 하듯이 가게에 들러 이것저것 과자류와 음료수를 많이 사주었다. 이제 버스가 막 출발하려 하는데 바로 버스앞쪽의 도로변에 어느 늙스구레한 촌노의 할아버지가 노오랗게 잘 익은 살구를 잔뜩 담은 광주리를 들고 나왔다. 보기에 살구를 팔러 나온 것이 분명했다. 일행들은 가는 길을 잠시 멈추고 살구를 사기위해 할아버지 곁으로 다가갔다. 살구를 사겠다고 영어로 의사를 표현하니 그 할아버지는 전혀 영어를 못 알아듣고 의사불통이다.

이럴 때는 세계적인 공통의 언어, 바디 랭귀지가 최고다. 손짓 발짓 다해가며 서로가 얘기하다보니 뜻이 통하고 말이 통했다. 그러나 살구 값으로 내밀은 유로화(돈)를 보자 그 할아버지는 거절의 손사례를 친다. 체코의 화폐 외에는 유로화를 받지 않겠단다. 할 수 없이 먹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고 버스로 되돌아오는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이러한 광경을 주시하고 있던 가이드 레디, 최선생이 잰 걸음으로 할아버지 앞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역시 만국의 공통 언어 바디 랭귀지로 의견을 교환하고, 마침 비상금으로 갖고 있던 체코의 화폐로 살구를 잔뜩 사들고 버스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사 갖고 온 살구를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히 푸짐하게 나눠주었다. 최선생님이 손님들을 위해 한턱 쓴 것이다. 모두가 최선생을 향해 손뼉을 치고 환호하며 감사를 표했다. 받아든 살구를 맛보니 입이 벌어질 정도로 너무나 달고 맛있다. 공해 없이 자연 속에 자라고 익은 살구 맛은 세상의 어느 과일보다도 맛이 있었다. 이런 것을 두고 둘이 먹다 한사람이 꼴까닥 해도 모를 정도라는 말이 이러한 상황에서 생겨난 말인가보다.

살구, 살구는 옛부터 우리나라에서 사람들과는 아주 가까운 나무열매였다. 한국 사회에서는 살구와 개를 연관시키는 속설이 두가지가 있다. 개가 살구씨를 먹으면 죽는다고 하여 살구나무 밑에 개를 묶어놓으면 개가 죽는다는 속설, 그리고 개고기를 먹고 체했을 때 살구 또는 살구씨가 특효라는 설, 참고로 흥부전에서 “배앓이 난놈 살구 주고”라는 대사가 있다. 개고기 파는 음식점(보신탕집)에서는 개고기를 먹고 난 다음에 살구씨를 먹으면 탈이 안 난다며 카운터 데스크에 살구씨를 말려서 얇게 썰어 손님들에게 나눠주던 모습을 본 기억이 떠오른다. 살구씨는 행인(杏仁)이라는 한약재로 쓰이는데 동의보감을 비롯해 각종 한의서와 본초서에서 개를 중독시키고, 개의 독을 푸는(殺狗毒) 효능이 있다고 기술되어있다. 살구나무는 잎보다 꽃이 먼저 핀다. 씨는 쓰거나 달다.

한국의 도입 시기는 확실치 않으나 삼국시대 이전부터 중부 이북지방에 야생한 것으로 본다. 살구는 살구나무의 열매이고, 터키, 몰타, 이란, 아르메니아가 주요 생산국이다. 살구이름은 악귀를 쫓는다는 신인 방상씨가 괴견(怪犬) 반호를 물리친 것을 기념해 개를 매달아 죽인 나무의 열매를 살구(殺狗)라고 부른데에서 생겼다고 한다.

공자는 자신이 살기위해서는 먼저 남을 일으켜 세워야 어진(仁=착하고 선한)사람이라고 했다. 살구나무를 보면서 늘 공적인 것을 먼저하고 사적인 것을 나중에 한다는 공자의 선공후사(先公後私) 정신을 되새겨본다. 나의고향 내 집 정원에 내가 심었던 살구나무는 아마도 이젠 죽었겠지만, 영원히 나의 마음속에선 매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나의고향 살구나무처럼 세상의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속에 자라는 나무 한그루가 있게 마련이다. 마음속에 자라는 나무 한그루를 평생 공부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반드시 살구처럼 맛있고 달며 아름다운 결실을 맺는 보람된 인생이 될 것이다.

며칠 전 동유럽 체코의 어느 평화로운 농촌마을에서, 촌노(村老)가 갖고나온 바구니에 탐스럽게 담겨진 살구를 보면서 돌아가고 싶은 유년시절이 생각났다. 한편의 그리움이 되어버린 내 고향의 우리 집 살구나무 생각에………….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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