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 기행문> 가을 구경, 그리고 힐링 여행 <3>

<김명열 기행문> 가을 구경, 그리고 힐링 여행 <3>

가을이 절정을 향해 숨가쁘게 달려가고 있다. 빨간 고추잠자리의 날개 위에 가을이 숨을 고르고 있다. 짙푸른 녹색의 대지가 노란색깔의 물감을 먹음은 붓놀림에 하루가 다르게 주황색, 노랑색으로 덧칠을 가해간다. 염색이라도 하듯이 변해져가는 가을의 풍경들이 나를 부른다. 가을의 조화속에 아름답게 치장된 들판과 산야, 호수와 강물이 나를 부른다. 나에게 오라고, 나에게 오라고. 시도 때도 없이 아침도 점심때도 저녁때도. 심지어는 깊은밤에도 귀뚜라미를 동원해서 잠을 설치게 하며 나를 오라고 유혹하고 있다.
이러한 가을의 부름과 유혹에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다. 가을의 길은 혼자서 걸어도 좋고 둘이서 걸으면 더욱 좋다. 거기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어도 좋고 말없이 하염없이 바라만보아도 좋으며, 때로는 코스모스 줄지어 늘어선 프라타나스 그늘 밑 먼지나는 신작로를 걸어도 좋고, 아치처럼 둥그렇게 하늘을 가린 숲길 오솔길을 떨어지는 낙엽을 밟으며 걸어도 좋다. 이렇게 단풍이 물들어져가는 오솔길이나 산길 신작로를 걷다보면 자꾸만 자꾸만 가을속 깊은 곳으로 빠져들어 그리운 얼굴들이 떠오른다. 보고 싶은 얼굴들도 떠오른다. 그러고는 인생을 생각하게 되고 삶을 생각하게 되고 고독이나 사색에 빠져들게도 된다. 이 가을에는 낙엽이 떨어져 외롭게 서있는 나무들처럼 우리들의 마음에도 외로움과 고독이 찾아든다. 한없이 정처없이 길을 걷다보면 다리가 아파 길가의 돌섶이나 벤치에 앉게 된다. 송긋이 이마에 돋아난 땀방울을 훔쳐내며 파아란 하늘을 올려다보면 내 마음에 그리움처럼 뭉게구름, 솜털구름 한조각이 그리움을 하나 가득 안고 바람을 동무삼아 어깨동무하며 저쪽으로 흘러간다.
세상에는 많은 유혹이 있다. 이 유혹중에는 선한유혹도 있고 악한유혹도 있다. 주일날 교회에 가면 많은 목사님들이 이구동성으로 세상의 유혹에 빠지지 말라고 경고하며 선도를 하는 설교를 한다. 물론 그 유혹은 죄와 연결되는 악한유혹을 뜻한다. 그런데 지금 나의 곁에 찾아와서 밖으로 나와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선물한 자연의 조화와 풍광을 만끽하라며 채근하고 윙크하고 보채는 유혹은 악한유혹인지? 선한유혹인지? 분간을 할 수가 없다. 그런데 나는 지금 곁에 와서 나를 잡아끄는 이 가을의 유혹을 선한유혹으로 보고 싶다.
나는 이제껏 세상을 살아오면서 각종의 유혹, 수없이 많은 유혹들을 겪었고 때로는 그 유혹의 노예가 된 적도 많았다. 그중에서 악한유혹들은 대부분 물리치고 이겨냈으나, 그런중에서도 맛의 유혹, 여행의 유혹, 계절의 유혹, 취미생활의 유혹 등은 이겨내지를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일년 4계절 중 특히 내가 좋아하는 계절, 가을의 유혹은 해마다 뿌리치지를 못하고 그 유혹에 넘어가 끌려나가고 불려나가기도 하며, 자연과 산천을 벗삼아 여행을 즐기는 것이 연중행사이고 내 인생의 낙이기도 하였다. 재작년 가을에는 애리조나주의 세도나와 그랜드캐년을, 작년에는 알칸사스주의 핫 스프링을, 금년에는 테네시주, 죠지아주, 켄터키주, 인디애나주 등을 두루 두루 둘러보고 구경하며, 추수감사절을 전후해서는 캘리포니아주의 새크라멘토지역을 포함, 엘로스톤과 록키산맥의 여러 자연녹지구역을 방문하여 구경하고 둘러볼 예정이다.
이번 여행은 조금전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시카고를 출발하여 여러개주의 농촌과 자연경관, 주립공원 등등을 발길 닿는 대로 자동차를 이용해 다녀올 계획이다. 나를 오라고 초청하는 사람이나 회사도 없고, 꼭 그곳엘 가봐야 한다는 책임감이나 필요성도 없이 그저 그렇게 여행의 목적지도 정하지 않은채 모험삼아 경험삼아 정처없이 지도 한장 달랑 손에 들고 천천히 차를 몰고 시카고 다운타운의 집을 나섰다. 때를 맟춰 삼시세끼 식사를 하지못할 것에 대비하여 비상식량으로 라면과 간식, 과일, 음료수 등의 식재료들을 트렁크에 충분히 싣고, 집사람이 정성껏 준비하고 만들은 밑반찬도 지프락이나 깨끗한 용기에 담아서 아이스박스에 넣었다. 여행을 하다보면 어느때는 산길, 공원, 계곡이나 산책로를 따라 발길 닿는대로 걷고 구경하다 보면 음식을 사먹을만한 식당이나 마켓, 편의점 등을 만나지 못하는 외지고 멀리떨어진 곳을 여행할 때가 많이 있다. 주변의 경관이나 아름다운 자연의 조화에 도취되어 그것을 감상하다보면 식사때를 잊을떄가 종종 발생한다. 이러한 때를 대비하여 등뒤에 짊어진 배낭에는 언제나 허기진 뱃속을 채워줄 음료수와 과자류, 빵, 과일 등을 필수로 챙겨 짊어지고 길을 떠난다. 정해진 산책로를 따라 이곳 저것, 볼것 구경할 것 다 보고 즐기며 천천히 여정을 마치고 돌아와 공원의 벤치나 산속의 물가 계곡의 나무아래서 버너에 불을 피우고 라면이나 핫덕, 돼지고기를 구어 먹는 맛은 정말로 천하일미이다. 집에서나 일반 식당에서 먹는 맛과는 대조적이며 맛과 식향(食香)이 다르다. 누구나 느껴본 감정이고 그 맛이겠으나 밖에 나와서 산속이나 계곡, 또는 공원이나 경치 좋은 산림속에서 먹는 음식 맛은 집에서 먹는 음식과는 같은 종류의 음식이라도 차이가 난다.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도 있듯이 주위의 경관에 도취되어 부지런히 움직이고 걷다보면 시장끼가 발동하여 무엇을 먹어도 꿀맛이다.
자동차여행의 진수는 좀 힘들기는 하지만 매일 그날의 일정부터 시작하여 모든 준비를 나 자신이 직접하는데 그 의의가 있다고 본다.
각종 안내책자와 지도, 그 지방의 특색 있는 명소나 관광지등을 참고로 하여 자기의 취향과 체력에 맞는 전체의 일정표를 작성하고 이것을 토대로 매일의 여행일정을 소화하는 재미는 이를 해보지 않은 사람은 도저히 맛 볼 수없는 성취감이다. 모든 여행은 감성을 자극한다. 여행지에서 온몸으로 보고 느끼고 배우는 역사와 문화, 지리, 전설과 그 지방 특유의 삶의모습들과 풍경, 음식, 향기 등의 체험은 아주 좋은 인생의 소중한 무형적 재산이 된다. 무엇보다 현지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보고 듣는 이야기는 인상 깊고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다. 특히 많은 여행중에서 느낀 소감인데, 각 지방의 가는곳,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꿈을 위해 인생을 던질만큼 도전적이고 진취적이며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 나의 주변에는 없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연연치 않고 언제나 시간이 나고 생각이 나면 나 혼자서라도 여행을 떠난다. 그렇게 떠나고, 보고 싶고 원하는 여행의 목적지에 도착하면 그 여행지에서 그들을 만난다. 남녀노소 할 것없이 그들은 하나같이 여행을 즐기고 좋아하며 인생에 투자한 사람들이다. 그들과 어울려 얘기를 나누다보면 어느 사람은 몇년간 자동차를 몰고 전국을 순회하며 지방 곳곳, 산촌, 도서, 해변을 가리지 않고 일주를하고, 또 어느 누구는 직장없이 유목민처럼 돌아다니기도 한다. 또한 어떤 사람은 바쁜 일상중에도 틈을 내고 시간을 쪼개어 여행을 즐기는 사람도 많다. 여행은 기본적으로 내가 잘알고 익숙한 것들, 즉 삶과 생활의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의 나의 경우처럼 자동차여행의 경우에는 길 찾는것, 숙소찾는것, 목적하고 보고자 하는 곳을 찾아 가는것, 등등 모든 것의 하나 하나가 낯설고 새로운 난관이며 문제이다. 한번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 낯선 지방을 무작정 여행을 한다는 것은 여간한 모험심과 도전정신이 없으면 감히 엄두도 못 낼 일이다.
사람들은 대개들 잘 알려지고 유명하고 편리한 유명관광지나 명소를 찾아간다. 그러나 나의경우는 그러할 때 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평범하고 낯선 곳, 사람들의 토속적인 체취가 묻어있고 그 지방의 향기가 묻어나는 시골이나 산촌, 향촌 같은 평화롭고 정서가 깃든 농촌마을을 선호한다. 가을이라고 하지만 아직은 낯의 햇살은 살갗을 태울만큼 따갑고, 아침저녁으로 서늘하게 불어오는 선들바람은 들꽃으로 모자이크를 만들어 수놓은 듯한 들길을 걸어가며 이마에 솟아나고 맺힌 굵은 땀방울을 식혀주기에는 역부족인 듯하다. 그러나 끝없는 지평선위에 파란 하늘이 맞닿아있고 그 위에 한가로이 바람에 날려가는 솜털구름을 바라보며 황금빛으로 물든 들녘, 노랗게 채색된 콩밭 뚝을 걸어가는 낭만속에 빠져 현실을 잊고, 꿈속의 수레를 타고 가을의 벌판을 달려가는 내 마음의 가속페달을 제어하지는 못했다. <칼럼리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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