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부모님의 사랑과 은혜

<김명열칼럼> 부모님의 사랑과 은혜

몇 년 전에 미국, 버지니아 어느 시골마을에서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다. 어떤 어머니가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어려운 살림 속에서도 갖은 희생과 노력으로 딸을 잘 키웠다. 그런데 이 딸이 성장을 해가면서 공부에는 취미가 없고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결국은 곁길로 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나중에는 학교공부도 때려치우고 가출해서 대도시로 나갔는데, 들리는 소문으로는 몸을 파는 곳에 가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가슴이 찢어지고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딸을 찾아 나섰다. 어머니는 딸이 사는 동네에 포스터 전단을 붙이는데, 딸이 보면 창피할까봐 딸 대신에 자신의 사진을 포스터에 붙였다. 그리고 전화번호도 써 놨다. “잃어버린 어머니를 찾습니다”. 딸이 어느 날 골목을 지나다가 자기 어머니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 이 포스터를 보고 딸은 자기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오죽했으면 어머니가 자기의 사진을 여기에다 붙여놓았을까. 내가 보라고. 내가 창피할까봐, 이 타락한 딸의 체면과 자존심을 세워주기 위해서………. 결국은 그 딸이 회개하고 엄마 앞에 와서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빌었다고 한다. 그리고 참으로 좋은 딸이 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자식을 사랑하고 생각하는 부모님의 마음이다.

몇 년 전 옛 소련에 속해있던 아르메니아에서 대 지진이 일어났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부상을 당한 대 참사였다. 그때 9층짜리 아파트가 무너지면서 생긴 철근과 콘크리트 틈새에 스잔나라는 어머니와 가이아니라는 네살된 딸이 가까스로 목숨을 유지한채 구조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처럼 빨리 구조되지 않고 힘들고 괴로운 고통 속에 일주일이 지나갔다. 두 모녀는 너무나 기진맥진하여 이제는 사경 속을 헤매게 되었다. 그때 어머니 스잔나는 언젠가 TV에서 조난당한 사람들이 먹을 것 마실 것이 없자 피를 나누어마시던 장면이 생각났다. 스잔나는 주변에서 유리조각을 찾아 자기의 팔뚝을 그어 흐르는 피를 사랑하는 딸의 입에 떨어뜨려 넣어주었다. 그렇게 수일을 더 버틴 후 극적으로 그 모녀는 구조대에 발견되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어머니 스잔나는 과도 출혈과 기아로 인해 그만 숨을 거두고 말았다. 죽음을 감수하면서까지 어린 딸을 위해 헌신한 어머니 스잔나의 고귀한 모성애의 사랑이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큰 감동을 주었다.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에 어머니가 아이를 낳을 때는 3말8되의 응혈(凝血)을 흘리고, 8섬4말의 혈유(血乳)를 먹인다고 했다. 자식의 괴로움을 대신 받길 원하고, 자식생각에 애간장이 녹아내린다. 자식, 세상에서 부모에게 가장 아름다운 꽃은 자식이라는 꽃이다. 이 꽃은 사시사철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오랜 세월이 흘러도 영원히 색깔이 변하지 않으며, 퇴색되지 않는 향기로움으로 가장 향기롭고 그윽한 향기를 온몸 전신 가득히 퍼지게 만드는 건 바로 이 자식이란 꽃이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그 사랑의 가장 보배로운 결실을 확인받을 수 있는 것은 자식이란 아름다운이름이 주는 편안하고 아늑한 행복감이다. 이 세상을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세상의 어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절대적인 소중함의 처음과 마지막에는 늘 언제나 자식이 있다. 때문에 따듯한 태양은 구애됨이 없이 세상의 어느 곳이나 함께 하는 것처럼 부모는 자식의 가슴 안에 늘 함께 하고 있다.

부모은중경은 부모님의 높고 넓음을 가르치고, 이에 보답할 것을 가르치는 대승불교의 불경이다. 이것은 출가하여 깨달음을 얻으라는 불교의 가르침이 중국을 거쳐 전래되면서 유교적 효(孝)를 배척하지 않고 불교적인 효도를 설(說)한 경전이다. 한국 및 중국이나 일본에 널리 퍼져있으며 한국에서는 유교가 성행하던 조선시대에 널리 읽혀졌고, 유교의 효경은 효도를 강조하지만, 부모은중경은 은혜를 강조한다. 석가모니는 진리의 삶이란 부모를 잘 섬기고, 처자를 사랑하고 보호하며, 자신의 직업에 충실하는 평범한 가운데 있다고 말했다. 그중에서도 부모님에 대한 효도는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변해서는 안 될 인간의 근본윤리라 할 수 있다.

2천6백여년전 석가모니(부처님)는 불설대보 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에서 부모님의 크신 은혜에는

다음과 같은 10가지의 은혜가 있다고 했다. 1)나를 잉태하고 지켜주신 은혜. 2)해산할 때 고통을 겪으신 은혜. 3)자식을 낳고서 근심을 잊으신 은혜. 4)쓴 것을 삼키고 단것을 뱉어 먹여주신 은혜. 5)진자리 마른자리를 가려 뉘여 주신 은혜. 6)젖을 먹여주시고 키워주신 은혜. 7)깨끗하지 않은 것을 씻어주신 은혜. 8)멀리 길을 떠난 자식을 걱정해주시는 은혜. 9)자식을 위해서 모진 일도 서슴치 않으신 은혜. 10)최후까지 자식을 연민히 여기시는 은혜. 이상의 내용처럼 부모님의 은혜에 대한 설명을 표현했듯이 부모님의 자식사랑과 은혜는 한도 없고 끝도 없다. 그런데 그 사랑과 은혜를 입고 사는 자식들은 그 깊고 넓은 부모님의 사랑과 은혜를 모르고 사는 경우가 많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뻐(사랑)한다는 말이 있다. 자식에 대한 내리사랑은 물이 흐르는 것처럼 모든 생명체의 원초적 본능이라고 말하고 싶다. 즉 자식에게는 원인이나 이유가 따르지 않고 저절로 우러나와서 사랑을 하게 된다는 얘기다. 반대로 자식의 부모사랑은 굳은 결심을 하지 않으면 하기가 어려운 일이다. 우선 제가 낳은 새끼들과는 달리 늙으신 부모님은 저절로 예쁘게 보이거나 사랑을 쏟기가 쉽지 않다. 좀 추하게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추하게 보이는 부모님을 저절로 사랑을 하기란 쉽지가 않은 일이다.

부모에 대한 사랑을 효라고 하고, 효를 행하는 일을 효도(孝道)라고 하는데, 이는 효도하기가 도(道)를 닦는 일만큼 어렵다는 뜻일 것이다. 이처럼 자식에 대한 사랑과 부모에 대한 효도는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있어 보인다. 부모가 죽으면 땅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그 차이를 단적(端的)으로 말해주고 있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076>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