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이 아름다운 5월에…………..
내가 오랫동안 살았던 시카고는 Sun Belt지역인 플로리다나 루지애나, 조지아 등의 주들보다 훨씬 늦게 봄을 맞이한다. 그래서 T.S엘리엇의 ‘잔인한 4월’이 지나야 하인리히 하이네의 ‘아름다운 5월’이 다가오는 것이다. 시인은 5월을 맞아 세상의 모든 꽃봉오리가 터질 때 가슴속에 사랑의 싹을 느낀다. 그래서 그에게는 놀랍도록 아름다운 5월인 것이고, 새들이 찬연한 봄을 노래할 때 사랑을 고백한다. 찬연한 봄, 아름다운 봄, 꽃의 향연이 펼쳐지는 봄의 달, 계절의 여왕, 등등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수식어의 표현으로 대변되는 5월이 우리들 곁으로 다가와 서있다.
3월과 4월이 오랜 시간동안 겨울과 다투고 싸워서 이긴 결과의 덕분으로 5월은 이렇게 푸르게 살아 돋아나서 우리를 품어 안고 우뚝 서있다. 3월과 4월이 찬 눈, 비바람의 시샘 속에 그토록 힘든 여건 속에서도 수많은 꽃을 피워내며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을 명심하라며, 세상의 모든 권세와 명예, 재산, 탐욕들이 영원할 수는 없다는 것을 교훈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우리의 곁에 찾아온 이 5월은 민낯을 보여주었던 황량한 대지를 초록으로 물들이며 계절의 여왕으로서 승승장구하는 그러한 달이기도하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말을 듣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이 5월은 봄과 여름의 사이에 끼어있어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아서 사람들이 생활하기에 좋고 활동하기에도 좋은 달이다. 거기에 날씨와 따사한 태양이 조화를 이루니 온갖 생명력 있는 동, 식물들이 생육하고 약동하기에 너무나 좋은 계절이기도하다. 여기에 더불어 아름다운 꽃들이 장미를 비롯해 라일락, 튤립, 아카시아, 철쭉, 살구꽃 등등의 꽃들이 연달아 피어나 대지를 울긋불긋 아름답게 수놓고, 향기로운 꽃향기는 우리의 콧속과 두뇌 속을 자극하며 그윽하고 기분 좋은 엔돌핀을 양산시켜주고 있다.
5월의 숫자인 5는 우리말로 다섯으로 닫고 서다(閉,立)라는 뜻이니, 어두운 지하의 삶을 닫고 지상으로 솟아나는 새싹의 돋음을 의미한다. 이 5월달에는 한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나라의 축제의 달이기도하다. 5월달이 되면 세계 여러 나라는 각종의 축제가 벌어지고 생의 찬미를 노래하며 축제 속에 푹 빠져들기도 한다. 한국적인 내 나라 민족이 지키는 의미 있는 날도 이 5월달에는 여럿이 섞여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부부의날, 성인의 날이 있어 이러한 날의 의미는 결국‘사랑의 관계를 솟아나게 하자’는 인간들의 공통된 약속의 표현이 함축되어 내재되어있다. 그래서 5월을 가정의 달이라고 하기도 한다.
인간에게 가정은 세상사의 모든 관계 중 최소의 단위로서 동양에서는 가정(家庭)의 家는 한 지붕아래의 식구들을 의미하며, 庭은 그들이 함께하는 공간을 뜻한다. 서양에서도 Home이란 Family와 House가 합쳐진 뜻으로, 동서양이 가정의 의미에 공감하고 있다. 가정 또는 Home은 인간의 자격을 가르치는 최소의 교육단위이기도 하다. 육신의 생존법과 구성원간의 정서적 관계를 체득하고, 바람직한 인격이 형성되는 가르침이 존재해야 한다. 우리말의 가르치다는 가르다(磨)와 치다(育)의 혼성어로 윗세대가 정성을 다하여 아랫세대의 몸과 마음을 닦고 육체적 인격적인 성장을 돕는 것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은 바람직한 인격이란 어떤 것일까? 이것의 의미는 의식이 성장을 더하여 더 큰 조직에, 즉 자신과 민족과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가치관을 형성하고 실천하는 인격인 것이다.
사람들은 대개 신의모습을 닮은 고결한 인격을 지니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러한 고결한 인격은 신이 거저 내리는 선물이 아니며 우연의 산물도 아니다. 그것은 올바른 생각을 가지려고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로 얻게 되는 자연스러운 성품이다. 줄곧 천박하고 야만스러운 생각을 하다보면 결과는 야비한 인격의 소유자가 되는 것도 당연한 결과이다.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로 살아갈 것인지 파괴자가 될 것인지는 모두가 자신의 생각에 달려있다. 마음이라는 생각의 공장에서는 자기 자신을 파괴할 무기를 만들 수도 있고 강인함과 기쁨, 온화함이 가득찬 아름다운 인격을 만드는 훌륭한 도구를 생산할 수도 있다. 올바른 생각이 바탕이 되면 고귀한 품성을 지닌 숭고한 인간으로 높이 날아 오를 수 있지만, 오로지 사악한 생각만 하는 인간은 타락의 밑바닥을 헤매게 된다.
이 양극단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종류의 인격 중에서 유일한 인격을 창조하는 사람이 바로 자기 자신, 그 성격의 주인인 것이다. 따듯한 햇살, 맑은 하늘, 투명한 푸르름과 빛과 그늘, 짙푸른 초록이 대지를 덮어가는 이 아름다운 5월이 우리들 곁에서 숨을 고르고 있다. 지금 이맘때쯤에는 내 고향 산야에서는 그윽한 향내를 풍기는 아카시아 꽃이 만발하여 온 산을 장식하고 있을 것이다. 옛날 나의고향마을 시골에서는, 헐벗고 굶주림과 가난에 시달리던 때에, 헐벗은 국토에 등장해서 산림을 살리고 폭풍의 저격으로 생을 마감하는 박정희 대통령을 닮은 나무라고 비유하기도 했던 나무들이 있었다. 조선 소나무가 울창했던 우리 집 뒷동산을 제외하고는 동네의 산이란 산은 거의다가 민둥산이었다. 봄부터 좀 모질게 거센 빗줄기라도 쏟아지는 날이면 산등성이로부터 쏟아져 내려오는 싯뻘건 황토물이 도랑에 넘쳐났다. 장마철이 되면 이산, 저산이 빗물로 인해 깊은 계곡이 생겨나는 것은 예사였다. 토사(土砂)를 막는답시고 정부에서는 사방(砂防)공사를 했는데, 사방공사용 나무심기의 수종(樹種)이 대부분 아카시아나무, 오리나무, 리기다소나무였다.
그중에 오리나무나 리기다소나무는 열악한 환경의 토양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고사(枯死)하는 경향이 많았으나 유독 뿌리 뻗기를 잘하는 아카시아나무는 금세 산을 뒤덮었고, 땔감이 모자라는 동네사람들은 산 주인의 눈을 피해 지게를 지고 아카시아나무를 베러 이
산 저산을 몰래 옮겨 다녔다. 집집마다 아궁이를 갖고 있던 동네사람들이 산에 가서 제일먼저 쉽게 자르는 나무 또한 아카시아나무였다. 가시가 너무 많아 손을 찔리고 자르기가 힘들었지만 땔감용으로는 그만한 나무가 없었다. 땔감이 없을 때 밥을 지어먹게 하고 황폐한 민둥산을 그린색으로 살려낸 주역이 바로 이 아카시아나무였다. 화력도 좋고 그 당시에는 아카시아나무에 피어난 아카시아 꽃이 어린이들에게는 유일한 주전부리 감이었고 밥을 굶는 어린이들에게는 생명을 부지할 수 있는 간식용이었다. 또한 단맛을 내기위해 늘 사용하는 사카린 대용으로 아카시아 꽃에서 채밀되는 꿀은 피곤한 농민들의 유일한 밀원(蜜源)이었고, 건강을 지켜주는 건강식이었다. 그래서 그 당시 보릿고개를 없애준 박정희 대통령의 통치를 감사하며, 이렇게 양수겹장으로 사람들에게 유익함과 도움을 주는 아카시아나무를 박정희 대통령의 나무라고도 별명을 지어 부르기도 하였다.
아카시아 나무, 겉보기에는 쓸모없이 보여도 모든 사람들에게 유익함과 도움을 주었던 그 나무, 우리도 겉의 외모를 중요시하지 말고 내면적으로 인격이 성숙된 올바른 자아의 성품을 지닌, 그리고 이 사회에서 쓸모 있고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서 세상을 보람되고 알차게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이맘때 5월에 내 고향에 피어난 아카시아 꽃을 생각하며 지면위로 그것을 옮겨보았다. <칼럼리스트 / 탬파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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