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칼럼> 오늘밤이 가기 전에

<목회자 칼럼> 오늘밤이 가기 전에

김호진 목사(올랜도연합감리교회)

톨스토이의 단편 소설 “세 가지 질문”은 인생에 중요한 세 가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한 나라의 왕이 있었는데 그에게는 풀지 못하는 세 가지 질문이 있었습니다. ‘내게 가장 중요한 시간은 언제인가?’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누구인가?’ ‘내게 정말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이 대답을 찾기 위해 그 나라의 성자를 찾아갑니다. 그러나 성자는 아무런 답도 주지 않습니다. 결국, 포기하고 돌아가려는데 보니까 그 늙은 성자의 집에 땔감이 없습니다. 측은한 마음이 들어 땔감을 패주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상처를 입은 사람이 그 집으로 피해왔습니다. 왕은 그 사람을 잘 치료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사람은 왕을 죽이려 한 자객이었습니다. 왕이 성자의 집에 온 사이 왕궁으로 침입했지만, 왕은 없고 상처만 입어서 피해온 것입니다. 성자의 집에 땔감을 패주느라고 지체하여 그 자객의 칼을 면한 것입니다. 심지어 자기를 죽이려 했던 자객인지도 모른 채 치료를 해준 것입니다. 이때 성자가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합니다. 인생에 가장 중요한 시간은 바로 지금입니다. 인생에 가장 소중한 사람은 바로 당신 곁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인생에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지금 그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인생을 잘사는 비결은 바로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소설에만 있지 않습니다. 성경에 보니 예수님이 어리석은 부자를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이미 부자였습니다. 충분히 행복할 조건을 갖추었지만 모른 채 그냥 열심히만 살고 있었습니다. 지금이란 시간을 놓치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이 사람에게서 우리는 행복하게 잘 사는 세 가지 비결을 볼 수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 지금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제게 상담을 하면서 미국 와서 고생한 말씀을 합니다. 처음 미국 와서 연봉이 5말 불 정도밖에 안 돼서 얼마나 고생하면서 살았는지 모른다고. 그때부터 20년간 이 악물고 열심히 일해서 지금은 연봉 20만 불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듣고 저는 뭐라고 위로를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5만 불 연봉이 고생할 액수인지. 상담하는 목사 연봉이 5만 불 저 밑에 있는데, 5만 불에 행복하지 않았던 사람이 20만 불 번다고 4배 더 행복한지. 5만 불이면 충분히 행복하고도 남는 액수인데 그걸 다 날려버린 겁니다. 20만 불 만드는 20년 동안 행복할 수 있는 그 좋은 복을 하나도 누리지 못한 것입니다. 부자이긴 하나 어리석은 부자요 허송세월한 인생입니다.

예수님이 이래서 어리석다고 하셨던 것 같습니다. 이미 부자인데 기뻐하지를 못합니다. 그해에 소출이 풍성하게 되었는데도 감사하기는커녕 이 많은 곡식을 어디에 쌓을까 또 다른 고민과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연봉이 올라가면 그때 행복해야지, 비즈니스가 좀 더 커지면 그때 행복해야지, 애들이 좀 더 크면 그때 행복해야지. 그러다가 정작 연봉이 오르면 행복은커녕 어떻게 세금 덜 내고 남는 돈은 또 어디로 투자할지 걱정에 걱정이 꼬리를 뭅니다. 비즈니스가 커지니까 더 많은 사람이 속썩인다고 불평을 하지요. 애들이 크면 또 다른 일로 걱정하고 더 나가 손자가 생기면 또 이것까지 새로 걱정 시작하지요. 걱정하느라 바빠서 죽지도 못합니다. 어리석은 우리의 모습입니다.

지금 당신의 삶은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을 갖췄습니다. 이것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하나님이십니다. 믿음이란 렌즈로 볼 때에 지금 내 인생에 주신 하나님의 축복이 보입니다. 내 삶은 그대론데 보는 눈이 달라지니 지금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행복이 코앞에 있었습니다.

둘째로, 일 중심 말고 사람 중심이어야 합니다. 어리석은 부자는 수확이 많아지자 창고가 없다고 걱정했습니다. 곧바로 더 큰 창고를 만드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말하길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누가복음 12:19) 일 중심이 되니까 자기 옆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놓치는 것입니다.

이민자들을 심방해보면 안타까운 게 이겁니다. 잘살아보겠다고 이민 왔습니다. 특히 애들 교육 잘 시켜보겠다고 왔어요. 그런데 부모는 일에 빠져서 애들은 뒷전입니다. 가족은 뒷전이에요. 하루도 마음 편하게 가게 문 닫고 여행은커녕 쉬지도 못합니다. 불안해서 그래요. 같이 일하던 아내나 남편이 아파서 병들어도 진통제 먹으면서 일을 놓지 못합니다. 자동차 엔진 오일은 제때 갈면서 자기 몸 관리는 안 합니다. 그렇게 살과 뼈를 깎아 돈은 벌수 있을 줄 모르지만, 나중에 몸 아프고 마음 아프고 가족이 아프고 온통 아픈데 투성입니다. 큰 병이라도 걸리면 벌었던 돈 한 번에 연기처럼 사라집니다. 일 자체가 내게 행복을 주지 않습니다. 그것을 함께 나눌 사람이 있어야 행복하지요. 바로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이 그래서 내게 소중한 사람입니다. 옛날에 떠나간 옛 애인도 아니고 전남편도 아니에요. 앞으로 만날 사람도 아닙니다. 대신 지금 바로 당신 옆에서 TV 보고 있는 그 사람, 나랑 같이 밥상에서 밥 먹는 사람, 같이 땀 흘리며 일하는 사람. 이들이 있기에 오늘 내가 있는 것입니다. 일 중심 말고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셋째로, 오늘을 마지막처럼 사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부자가 커다란 창고를 지어서 나중에 행복할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습을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누가복음 12:20) 한 마디로 ‘꿈 깨라!’는 것입니다.

잘 사는 방법은 내가 죽는 존재라는 것을 항상 인지하는 것입니다. 안 죽는 줄 착각하는 사람들은 막삽니다. 대신 자기 죽음을 맞대하고 있는 사람이 오히려 더 잘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른들이 윤달에 수의를 사놓으면 장수한다는 말이 일리가 있어요. 이걸 미신적으로 해석하는 게 아니라 자기 수의를 보면서 죽음을 계속 상기하게 됩니다. ‘아이고 내가 저거 입는 날이 오늘 밤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 잘 때 속옷도 깨끗한 걸로 갈아입게 됩니다. 매일 매일 심신을 더 단정히 하고 함부로 살지 못하는 예방이 되니 오히려 장수하게 되리라 제 맘대로 해석해 봅니다.

예수님이 이래서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누가복음 12:21) 죽는 존재임을 잊은 채 재물에만 힘쓰는 인생의 어리석음. 잘사는 인생은 하나님을 채우는 삶입니다. 곧 자신이 죽는 존재임을 늘 상기하고 오늘 내 삶에 하나님의 생명을 채우는 것입니다. 악을 버리고 선을 쫓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생명을 기대하고 바라보는 자입니다. 오늘 죽더라도 웃으면서 잘사는 인생입니다.

오늘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는 인생의 기쁨과 행복. 믿음으로 볼 때 비로소 볼 수 있는 이 놀라운 축복이 여러분들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멀리 찾지 마세요. 당신 코앞에 있는 그 축복 마음껏 누리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밤이 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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