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의 생활탐방이야기
정월 대보름
지난 2월11일, 토요일은 음력으로 정월 대보름날이었다. 미국에 이민 와서 살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자칫 이날이 대보름이었다는 것도 까맣게 잊고 지낸 사람들도 많이 있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바쁜 이민 생활속에 이역만리 미국 땅에서 한국고유의명절인 설, 추석, 단오, 정월대보름 등의 민속 4대명절중의 하나인 대보름을 기억하고 때맞춰 지키며 즐기기란 매우 힘든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자칫 우리의 기억 속에서 조차 사라져간 이 대보름날, 나는 같은 교회에 다니시는 한남순 집사님 댁에 보름맞이 잔치 식사 초대에 부름을 받았다. 평소에도 유난히 남들에게 베풀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는 이 한남순 집사님은 시골에서 태어나고, 친정어머니로부터 한국 전통의 고유음식을 만드는 비법이나 그 기술을 완전하게 전수받아서, 시간이 날 때마다 그러한 한국전통의 토속음식을 만들어 교인들이나 친구들에게 대접을 늘 해오신분이다.
이날도 정월 대보름을 맞아 어김없이 평소에 가깝게 지내는 친구나 지인 및 교인 10여명을 집으로 초대하여 푸짐하고 맛깔스러운 대보름 음식상을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차리고 준비하여, 방문한 손님들 모두를 포만감과 아울러 기쁨과 즐거움의 교제 속에 예수님 안에서 뜨거운 사랑과 횡적인 인간관계를 돈독하게 다지는 아름다운 화목의 결실을 수확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정답고 사랑스러운 교우나 친구들을 위하여 오래전부터 이날을 위하여 각종 나물이나 과일, 곡식류, 생선 등을 준비하고 만드느라고 정성과 마음, 사랑을 다 쏟은 그 음식들은 정말로 맛있고 정갈스러웠으며, 오랜만에 맛보게 되는 한국 고유의 토속적인 신토불이(身土不二, 몸과 땅은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뜻으로, 자기가 사는 땅에서 산출된 농산물이 체질에 잘 맞는다는 말)같은 산나물과 야채들을 실컷 잘 먹었다. 마치 옛날 어렸을 때 나의 어머니께서 정월대보름날 차려주신 그 추억의 그 맛이 그대로 담겨져 있는 그런 아주 좋은 음식들이었다.
정월 대보름, 또는 대보름은 음력 1월15일로 오기일(烏忌日)이라고도 하며 한자어로는 상원(上元)이라고 한다. 상원은 도교적인 명칭으로 상원, 중원, 하원 중 첫 번째이다. 1년 12달중 첫 보름달이 뜬다는 이날은 예로부터 우리조상들이 설, 단오, 추석과 함께 4대명절로 지켜왔다. 대보름에는 오곡밥(쌀, 또는 찹쌀, 보리, 조, 수수, 팥, 콩 등)을 지어먹으며, 아침 일찍 부럼이라고 하는 껍질이 단단한 과일을 깨물어서 마당에 버리는데, 이렇게 하면 1년 내내 부스럼이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부럼깨기), 또 귀밝이술을 마시고, 밤에는 뒷동산에 올라가 달맞이를 하며 소원을 빌고, 1년 농사를 점치기도 하였다. 즉 달빛이 희면 많은 비가 내리고 붉으면 가뭄이 들며, 달빛이 진하면 풍년이오고 흐리면 흉년이 든다는 옛날 나의고향 어른들은 이렇게 말씀들을 하셨다.
이날의 민속행사로는 보름새기(이날은 설날과 같이 수세하는 풍습이 있어 온 집안에 등불을 켜놓고 지새웠다. 주로 섣달그믐날의 풍습으로 알려져 있지만 지방에 따라 보름날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희어진다고 하여 누군가 잠이 들면 장난삼아 쌀가루나 밀가루 등으로 눈썹을 하얗게 칠해놓기도 했다) 더위팔기(보름날 해뜨기 전에 일찍 일어나 이웃이나 동네의 집집을 돌며 “내 더위 사가라”하고 더위를 판다) 그 외 달맞이, 달집태우기, 다리밟기, 지신밟기, 쥐불놀이, 널뛰기, 줄다리기, 연날리기, 농악놀이 등의 대보름날 민속행사놀이를 다양하고 재미있게 즐기고 놀았다. 특히 이날 대보름날에 차려먹는 절식(節食)으로는 부럼, 귀밝이술, 외에도 약밥, 오곡밥, 묵은 나물과 복쌈 등이 있다.
또 고사리, 버섯, 호박고지, 가지말랭이, 고구마줄기, 무시래기, 무말랭이, 그리고 산에서 채취한 묵나물, 취나물, 고사리, 더덕, 도라지, 산채, 등의 나물들을 말려서 보관해두었다가 이날 대보름날 무쳐서 상위에 올려 온 가족이 함께 먹는 것이 풍습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이러한 나물들을 대보름에 먹는 이유는, 그해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우리고유의 명절, 정월대보름은 음력을 사용하는 전통사회에서 각별한의미를 지니고 있다. 옛날 우리 선조들이 농경을 기본으로 하였던 우리문화의 상징적인 측면에서 보면, 달은 생생력(生生力)을 바탕으로 한 풍요로움의 상징이었다. 음양사상에 의하면 태양은 양(陽)이라하여 남성으로 인격화되고, 이에 반하여 달은 음(陰)이라 하여 여성으로 인격화되었다. 따라서 달의 상징적 구조를 풀어보면 달, 여신, 대지로 표상되며, 여신은 만물을 낳는 지모신(地母神)으로서의 출산력을 가진다.
이와 같이 정월대보름은 풍요의 상징
적의미로 삼국시대 이전부터 우리사회에 자리매김해왔다. 옛부터 우리조상들은 초승달이 점점 둥근달로 변하여 보름 만에 만월이 되고, 또다시 점점 작아지는 것을 곡식과 연관을 지어 생각을 했다. 씨를 뿌리고 자라서 여물고 또다시 씨로 돌아가는 것이 바로 달의 모습과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달은 풍요와 다산(多産)을 상징하게 됐으며 새해 첫달에 만월이 되는 정월보름을 대명절로 여기기 시작했다. 따라서 이날은 많은 사람들이 한해의 풍년과 가정의 안녕을 기원하며 가족과 이웃, 지인, 친구간에 음식을 나누고 정을 나누며 화목하고 즐겁게 보냈다. 오늘 대보름날 이러한 민속행사의 일환으로 푸짐하고 맛있는 음식들을 준비하여 친구 및 교우들을 위하여 음식을 대접해준 한남순 집사님은 이러한 전통의 민속을 잘 계승해오는 살아있는 역사의 증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나님께서도 베풀고 나누는 사람에게 축복이 따른다고 했듯이, 한 집사님에게는 가정과 가족, 손주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실 것이 틀림없다.
한편 이러한 정월 대보름날의 유래와 더불어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재미난 전설의 이야기가 있어 참고로 소개하여 드리도록 하겠다. 정월대보름과 관련된 전설 중에 사금갑(射琴匣)이 있다. 원전은 옛날 역사이야기, 삼국유사 제1편에 있는 신라시대 소지왕의 이야기이다. 신라시대, 소지왕이 정월대보름날 천천정으로 행차하기위해 궁을 나섰는데, 갑자기 까마귀와 쥐가 시끄럽게 울었다. 그리고는 쥐가 사람의 말로 이렇게 말했다.”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따라가보옵소서” 그러자 임금은 신하를 시켜 까마귀를 따라가게 했다. 신하가 까마귀를 어느 정도 따라가다가 어느 연못에 다다랐을 때 두마리의 돼지가 싸움을 하고 있었다. 신하는 돼지의 싸움을 보다가 그만 까마귀를 놓쳐버렸다. 조금 있으니까 연못에서 노인이 나타나서 신하에게 편지봉투를 주고는 (그 봉투안의 글을 읽으면 두사람이 죽을 것이요. 읽지 않으면 한사람이 죽을 것입니다)라고 말하고는 사라졌다. 신하가 궁에 돌아와 임금에게 편지봉투를 주면서 연못의 노인이 말한 내용을 전했다. 임금은 두사람이 죽는 것보다 한사람이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여, 편지를 읽지 않으려 했는데 옆에 있던 일관이 말하기를 “전하 두사람이라 함은 보통사람을 말하고, 한사람이라 함은 전하를 말하는 것이니, 편지의 글을 읽으시옵소서” 일관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임금은 편지의 글을 읽어보았다. 그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사금갑(射琴匣=거문고 갑을 쏘시오) 임금은 곧 거문고 갑을 향해 활을 쏘았다. 그리고 거문고갑을 열어보니 그 안에는 두사람이 활에 맞아 죽어있었다. 이두사람은 왕비와 어떤 중이었는데, 중이 왕비와 공모하여 한통속이 되어서 임금을 해치려했던 것이었다. 그로부터 정월대보름을 오기일(烏忌日)이라 하여 찰밥을 준비해 까마귀에게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생겼다고 한다.
정월대보름을 맞아 잊어져가는 민속의 명절날을 되새겨보며 이날의 재미난 전설의 이야기를 들려드렸다. 이미 금년에는 정월대보름이 지나갔다 하더라도, 다가오는 내년 대보름날에는 식구들끼리라도 오곡밥과 각종 나물을 먹으며 이날의 우리 고유명절인 정월대보름날을 기억해보는 것도 좋으리란 생각이 든다.
<사진설명> 정월대보름날 저녁에 집 뒤에서 보름달을 사진에 담았다. 한편 한남순 집사님께서 정성과 마음, 사랑을 다하여 준비한 정월대보름 잔치의 음식들을 사진에 담았다. 정월대보름날 새벽, 동녘에서 떠오르는 붉은 해도 사진에 담아보았다.
<1059/2017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