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 기행문<25> 사우스 다코다주, 카스터 주립공원(Custer State Park)

김명열 기행문<25> 사우스 다코다주, 카스터 주립공원(Custer State Park)
여행작가 및 칼럼니스트 /  myongyul@gmail.com

러시모어 산의 대통령조각상을 구경한 후, 우리는 역사적인 발자취가 담긴 카스터 주립공원으로 차를 몰았다. 카스터 주립공원으로 가는 길에는 길 양옆쪽으로 전나무와 소나무 숲이 끝없이 이어지고 주변의 경관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가는 도중에는 간간히 피크닉 에리어가 나오고, 곳곳에 여행자들을 위한 안내 표지판이 보기 쉽게 설치되어있어 길을 찾아가기가 참으로 편리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정식으로 제대로 먹었는데도 오후1시가 넘어서 그런지 배가고프다.
우리 일행은 가다가 경치 좋고 옆에 시냇물이 흐르는 피크닉장소에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했다. 여행 중에 식당이 없는 산간이나 외진 곳에서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하여 지혜롭게 허 여사(허원회 회장 부인)께서는 미리부터 이곳에 오기 전에 치밀하게 밑반찬부터 밥, 고기, 과일 등을 아이스박스에 챙겨 넣어 점심식탁위에 풀어놓았다. 텃밭에서 농사지은 오이와 호박, 고추, 깻잎, 상추, 당근, 파, 등등의 채소와 각종 밑반찬, 불고기무침 등 푸짐한 식단이 금방 선을 보였다. 언제 이렇게 완벽하게 정성과 마음을 다하여 준비를 해 오셨는지, 놀랍고 감사한 마음으로 사의를 표했다.
가스버너에 불을 붙이고, 끓이고, 익히고, 굽고, 볶고, 뒤집으며 여러 과정을 함께 협동으로 분담하여 조리하고 만들어낸 식사는 그야말로 진수성찬의 우아한 식단이었다. 여행을 할 때는 보고 즐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연과 더불어 그 속에 어울려서 맛있는 음식을 해먹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는 여행의 묘미다. 소낙비가 한줄금 퍼붓고 지나간 후의 파란하늘, 갓 목욕을 마치고 나온 수줍은 처녀의 몸처럼 물기서린 자태로 하늘을 향해 곧게 쭉쭉 뻗어 올라간 소나무와 전나무 숲에서 우리의 몸에 너무나 좋은 피톤치드를 흠뻑 들이마시며 함께한 점심식사는 건강과 진미를 곁들인 일석이조, 그야말로 환상과 낭만, 즐거움이 복합된 아주 행복하고 기분 좋은 무아경(?)속의 맛있는 식사였다.
포만감과 유쾌한 즐거움을 동반한 점심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목적지인 Custer State Park으로 향했다. 구불구불한 숲속 길을 따라 얼마를 가니 카스터 주립공원이 눈안에 들어온다. 이곳이 바로 인디언 토벌작전중 사망한 카스터(George A. Custer. !839~1876)의 이름을 사용한 사우스 다코다의 카스터 주립공원이다. 정부와 맺어진 모든 협정들을 위반하고, 잔혹하게 인디언을 학살하고 죽여 버린 그 장본인인 카스터 장군의 이름으로 된 공원, 그것도 샤이엔(Cheyenne)부족이 대를 이어 기우제를 지내던, 예로부터 북미 인디언들의 신성한 땅으로 불리우는 검은 언덕(Black Hills) 한가운데 이러한 카스터 주립공원이 있다는 아이러니가 그곳을 방문한 나의가슴을 아프게 자극해왔다. 이제는 빼앗긴 인디언의 옛 땅, 빼앗긴 땅, 피로 얼룩진 이 땅에도 봄은 오는지?……..옛날의 역사속 슬픈 이야기들을 머릿속에서 지워내며, 불쌍한 이 땅의 주인들이었던 인디언들에게 애도의 마음을 전하며 주립공원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공원 내에는 각종 야생동물들이 자유롭게 서식하고 있었으며 특히 보호종으로 지정된 들소(버팔로 소)떼들이 초원에서 한가로이 거닐며 풀을 뜯고 있는 모습들이 목가적이면서도 자연과 어우러져서 너무나 아름다워 보였다. 가는 길에는 간간히 사슴도 눈에 띄었으며, 그들은 자기들을 보기위해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을 이상하다는 눈으로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주립공원을 나와 2마일정도 더 운전해가자 왼쪽에 Custer State Park이라는 작은 길이 나온다. 이 작은 길로 얼마동안 가면 실반 레이크(Sylvan Lake)를 만날 수 있다. 호수에 다다라 수면 위를 보면 잔잔한 호수물위에 반사되는 경치가 거의 환상적이다. 호수에서는 보트놀이를 하고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도 보인다.
이곳은 완전 청정지역으로 캠핑도할 수 있다. 호수 주위를 한바퀴 산책하고 우리는 다시 87번 도로 남쪽으로 향했다. 지난번 기행문에 사진으로 보여줬던 각종 신비한 모습을 가진 여러 종류의 바위와 초목이 어우러진 니들스 하이웨이(Needles Hwy Scenic Drive)가 14마일에 걸쳐 펼쳐진다.
이곳을 가다보면 각종모양의 바위들이 그 모습을 드러내는데, 성당의 첨탑을 닮은 뾰족뾰족한 바위산은 성당바위(Cathedral Spires)라고 부른다. 이곳은 대통령얼굴을 조각하고자했던 최초의 후보지였다고 하는데, 조각가 보글럼의 현장 답사 후 마운틴 러시모어로 장소가 변경되었다고 한다. 가다보면 바위로된 산을 뚫어서 만든 바위굴 터널을 몇개 통과하게 되고 또 주위 산에는 바늘 귀(영어의 표현은Needle’s Eye)바위가 있는데 이곳을 영어로는 바늘 눈이라고 표현을 한다. 영어로 쓰여진 성경말씀의 마태복음19장24절도 영어로는 Eye of Needle라고 쓰여 있다. 그 내용을 보면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그런데 이곳의 바늘 눈은 낙타가 그 바늘 눈 속으로 들어갔다 나올 만큼 구멍이 크니, 역시 미국의 큰부자는 통이 크고 자선사업도 많이 하여 천국을 가는 데는 아무 이상이 없나보다.
키스톤 방향에서 카스터 주립공원으로 내려오려면 지금 지나는 87번 남쪽 니들스 하이웨이나 16A번 남쪽 아이언 마운틴 하이웨이를 이용해야 하는데, 두 길 모두가 터널이 각각 3개씩(합하여 6개)있다. 그중에 두개는 쌍방향 통행이 되지만 네개는 일방통행이다. 행여 반대편에서 차가 진입하지 못하도록 짬짬이 클랙션을 빵빵하고 경적을 울려주며 통과하라고 터널입구에 Sound Horn이라는 표시판이 있다. 1백여개가 넘는 각종모양을 갖고 각기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바위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인상적이었다.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이라고 하는데, 10여 년 전에 북한의 금강산을 관광하며 그곳의 만물상을 보았지만, 거기에 못지않게 이곳의 바위형상들은 그야말로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신비롭고 기괴한 장관의 모습들이었다.
바위산을 뒤로하고 오면서 우리는 야생 그대로 자연 속에서 살고 있는 야생마를 만날 수 있었다. 이 말들은 주인이 없이 독자적으로 대 초원의 자연 속에 야생으로 살아가는 말들인데 사람들에게 길들여져서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않고 사람이 가까이 접근하면 먹을 것을 얻어먹으려고 목을 빼고 가까이로 다가온다. 이 녀석들이 즐겨먹는 것은 풀이나 나뭇잎들이 아닌 사람들이 즐겨먹는 빵이나 과자류, 또는 과일종류들이다. 우리가 그곳에 갔을 때 녀석들은 어김없이 우리 곁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서 다가왔다. 마침 주전부리로 준비해간 과자나 과일, 칩 종류들이 차안에 많이 있기에 나는 그것들을 봉투째 여러개 들고 나와 곁으로 다가온 말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주었다.
야생말이라 처음에는 겁이나 경계를 했는데 오히려 그들이 더 친근감을 갖고 내손에 머리를 비비고 손을 핥고 하며 기대 와서 부담 없이 과자류와 과일들을 주었는데, 순식간에 칩이나 과자 몇봉지를 뚝딱 여러 마리가 먹어치웠다. (말들에게 주전부리를 다줬으니 우리는 뭘 먹지? )하는 허회장님의 농담 섞인 말을 뒤로한채 말들이 다가와 친근하게 먹어주는 재미로 차에 있는 과자류는 거의 다 주고 말았다.
구경을 마치고 호텔로 오는 길에 차안에 먹을 것이 모두 없어져서 다른 분들에게 여간 미안한 게 아니고 뒤통수가 가려워서 전전긍긍? 했다. 그러나 배고픈 야생동물들에게 자선한번 베풀었다는 것이 여행을 끝내고 지금 기행문을 작성하면서도 후회(?)는 없다. 주전부리를 없앤 죄로 저녁은 내가 샀다.
어쨌거나 카스터 주립공원을 보면서 느낀 감정은, 푸르다 못해 검게 빛나는 아름다운 숲과 야생화가 가득한 산정호수(허회장님이 지은 임의적 이름)는 밤이면 선녀가 내려와 목욕이라도 할 것 같은 착각이 드는 병풍 같은 바위들로 둘러싸인 이 호수 물, 아울러 허회장님은 이곳을 한편으로는 ‘선녀탕’이라고 명명하여 부르기도 하였다. 환상적인 경관과 맑은 호수 물에 밤이 되면 정말로 선녀라도 내려와 목욕을 할 것 같은 착각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이 아닌 듯싶다. 숲속의 산길, 오르락내리락, 이리 비틀, 저리 비틀, 꼬불꼬불, 아슬아슬한 절벽위의 좁은 도로, 하늘이 25센트 동전만하게 보이는 길 양편의 하늘을 찌를 듯이 치솟은 바위들, 해발 6천피트를 넘나드는 산봉우리에 당장 숨이라도 막힐 듯, 협소한 계곡의 절벽사이를 뚫고 지나가는 터널 등, 이곳에 정말 관광, 구경을 잘 왔구나 하는 기쁜 마음과 함께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한국 사람들은 관광여행을 하면 빠른 시간 안에 여러 곳을 찍고 찍고 하는 벼락치기, 번갯불에 콩볶아 먹는 식의 관광을 하는데, 내 생각에 많이는 못 보더라도 차분하게 여유를 갖고 이런 곳을 관광한다면 더욱 여행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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