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참외서리와 원두막

<칼럼리스트 / 탬파거주>
나의 소년시절, 참외와 수박을 유난히도 좋아하는 나를 위해 어머니와 아버지는 근처 골밭에 몇고랑의 밭에 참외랑 수박을 심어서 실컷 따먹도록 해주셨다. 막내인 내 위로 두 누나와 형이 있어 우리들 5남매에게 매년 여름에 사주는 참외 값이 보리쌀 한가마 값이 훨씬 넘다보니 아예 나의부모님께서는 자식들을 위해 해마다 참외와 수박을 심어서 자식들이 실컷 먹도록 도와주셨다. 그리고 이웃사람들에게도 때때로 따온 참외를 나눠주곤 하셨다. 참외를 받은 이웃들은 옥수수를 갖다 주든가 아니면 열무, 호박, 배추 또는 복숭아 등등 다른 야채나 과일들로 답례를 해주기도 했다. 시골에서만 볼 수 있는 정겨운 이웃사랑 나눔의, 끈끈한 인정을 주고받는 아름다운 미풍양속을 서로가 실천하는 좋은 모습의 표본이 되는 장면이기도하다.
나는 집에서 이렇게 넉넉하게 먹을 만큼 참외와 수박을 심어서 풍족하게 먹고 지내는데도 불구하고, 가끔씩 친구들과 어울려 스릴 넘치고 가슴이 쾅쾅 뛰는 참외서리와 수박서리를 재미삼아 한적이 여러번 있었다. 참외농사는 다른 농작물보다 소득이 많고 이익이 많이 남는 장사라 그런지 몰라도 그 당시 우리 동네 근처에는 참외와 수박농사를 지어 5일장이 서는 날에 그것을 마차에 싣고나가 모두 팔고 돈뭉치를 들고 웃음을 먹음은채 집으로 오는 사람들이 여러명 있었다.
참외나 수박을 심은 밭에는 으레 밭을 지키기 위하여 밭머리나 밭 가운데에 원두막을 짓는다. 원두막은 기둥 4개를 세우고 그 꼭대기에 보리 짚으로 이엉을 엮어 지붕을 마들고 그 밑에 판자나 통나무로 높게 바닥을 만든다. 위의 둘레사방은 보릿짚이나 밀짚을 엮어서 상하로 열고 닫을 수 있게 만들며, 더우면 막대기로 바치어 열도록 되어있고 땅에서는 사다리를 놓아 오르내리도록 하였다.
이른 봄 일찍 온상재배로 참외를 심어서 초여름에 남보다 일찍 출하를 하는 경우도 있고, 어떤 경우는 대개 보리나 밀을 베어내고 그 밭에 주로 참외와 수박을 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원두막을 지을 때는 보릿짚이나 밀짚으로 짓는 경우가 흔하다. 원두(園頭)라는 말은 원래 참외, 오이, 수박, 호박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로 이중에서 수박이나 참외, 딸기 등은 현장에서 따먹기 쉬웠고 또 옛날에는 짓궂은 마을청년들의 서리하는 버릇을 막기 위하여 원두막을 짓고 지켰다. 이렇게 참외밭이 생겨나면 그 근처 동네소년들이나 청년들의 최대관심거리로 등장하게 되며 참외와 수박이 익어갈 때쯤에는 참외나 수박의 도둑질(서리)을 막기 위하여 원두막이 세워진다. 여름철의 참외서리와 수박서리는 고향친구와 함께 어린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즐거웠던 추억거리다.
오후에 학교에 갔다 오는 길에 참외밭이 곁에 있는 개천가에서 멱을 감으면서 원두막의 동향을 살핀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올 때쯤에는 점심에 먹은 도시락도 모두 소화가 되고 뱃속은 출출하고 무엇이라도 먹고 싶은 허기증이 생겨난 때라, 푹 꺼진 배를 쓰다듬으며 멱을 감던 또래의 아이들은 의기투합하여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모두가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참외밭으로 기어들어간다. 두서너 명은 원두막에서 낮잠 자는 주인의 동향을 살피고 나머지 인원들은 살금살금 기어가서 밭 가장자리에 가서 보이는 대로 참외를 두서너 개를 따서 줄행랑을 친다. 그리고 헉헉거리며 냇가 개천뚝방 후미진 곳에 모여앉아 익지도 않은 새파란 참외를 이빨로 아삭아삭 거리며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이 먹어치운다. 요행히 걸린 잘익은 참외는 달고 꿀맛이다. 그러나 어쩌다 잘못 얻어걸린 풋참외는 쓴맛이 난다.
그래도 공짜로 얻은 참외가 아까워서도 참외꼭지까지 다먹어치운다. 그렇지만 참외꼭지는 왜 그렇게 쓴지 지금껏 먹었던 맛있던 맛은 금세 사라지고 모두들 퉤퉤하면서 우거지상이 된다.
참외서리는 번번이 성공만하는 것은 아니다. 개구쟁이들이 참외밭근처에서 멱을 감고 있으면 원두막위에서 망을 보고 지키고 있는 할아버지는 끝까지 개천에서 멱을 감고 있는 아이들을 주시하고 있다. 그러면 아이들은 허기진 배를 쓰다듬으며 아예 포기하고 집으로 일찍 돌아간다.
그런데 어쩌다 배고픔과 참외의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고 참외밭에 몰래 숨어들었다가 재수 없이 붙잡히기라도 하면 그날의 운수는 억세게 재수 없는 날이 된다. 멱살을 잡혀서 집으로 끌려가 어머니, 아버지에게 일러바쳐 종아리를 수없이 맞고, 더욱 재수가 옴붙으면 학교 선생님에게까지 알려져서 반에서는 참외도둑놈이라는 놀림을 받고 낙인이 찍히고 만다. 나는 요행이도 그렇게 걸려본 적이 없었는데, 재수 없게 걸린 친구들은 수업시간에 쫓겨나서 두손을 들고 복도에서 무릎 꿇고 반성하는 모습들을 본적이 몇 번 있었다.
좀 더 성장하여 여름방학이 되어 서울에서 공부하다 시골에 내려오면 친구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데리고 참외밭으로 참외서리를 간적이 여러번 있었다. 장난기 많고 개구쟁이 청소년들에게는 해가지고 난 캄캄한 밤이 되면 참외서리를 하기 좋은 시간이 된다. 저녁을 먹고 더위와 모기를 피해 동네한가운데 느티나무 아래로 또래의 모든 청소년들이 십여명 마실 나온다. 저녁으로 먹은 보리밥은 방구 몇 번 뀌고 나면 금세 소화가 되어 뱃가죽은 꺼지고, 개울가로 몰려가 물장난 치며 멱을 감고 몸을 씻는다. 멱을 감고 있는 백여 미터 윗쪽의 물여울에는 동네아녀자들이 땀에 젖은 몸을 씻으며 재잘대고 수다를 떨며 난리들이다.
이윽고 여자들이 목욕을 하고 모두가 집으로 돌아간 으슥한 밤이 되면, 개구쟁이 청소년들의 마음은 참외밭으로 향한다. 행동대원인 꾼? 들을 선정하고 그 가운데 뜀박질을 잘하는 돌격대가 옷을 홀랑다 벗고 알몸의 용사가 된다. 어둠속에서 잘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모두가 개천가의 진흙으로 온몸을 검게 위장을 한다. 그러고는 참외밭근처까지 기어간다. 발 빠른 또 다른 친구 두세 명은 원두막근처 밑에까지 잠입하여 주인이 잠자는지 어떤지를 돌멩이나 따놓은 참외를 집어서 밭두렁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는 행동대원 친구들에게 힘껏 집어던져서 알려준다. 돌멩이를 던져주면 주인이 잠들어있다는 신호이고 아무 연락 없이 조용하면 주인이 깨어 있다는 신호이다. 주인이 잠들어있다면 서리꾼들은 주저 없이 모두가 참외밭으로 기어들어간다. 손으로 참외를 톡톡 쳐서 툭툭하고 둔탁한소리가 나는 잘 익고 달콤한 참외만을 골라 따서 담는다. 땡땡 소리가 나면 안 익은 참외다. 어쩌다 너무 서두르다가 소리가 요란해 밭주인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주인은 자리에서일어나 밖을 향해 큰소리로 “다른 참외는 상하지 않게 조심하고 먹을 만치 적당히 따가라”고 하고서는 그냥 내버려둔다. 그때 나의 고향 친구들 사이에는 참외서리의 불문율이 있었다. 서리를 하되 주인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 해야 한다. 서리해온 참외는 두고두고 먹는 것이 아니라 먹을 만큼 따와서 당장에 먹어치운다. 그것으로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밤참의 간식정도로 요기나 하며 스릴과 재미를 곁들여 하는 오락으로 끝내야한다.
그리고 한집에 계속해서 서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면서 골고루 적당량만 따온다.
요즘처럼 무더운 여름철 밤이 되면 잊혀지지 않고 떠오르는 옛날의 청소년시절 고향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참외랑 수박서리를 했던 추억이 떠오른다. 그것이 재미였건 취미였건 간에 그건 아주 못되고 나쁜 행동이었음을 깨닫고 뒤늦은 후회와 자책감으로 마음이 아프다. 여하간 지나간 옛날이야기지만, 원두막과 참외서리는 오늘날 같은 삭막하고 메마른 인정 속에 오아시스 같은 마음의 여유를 주는 풍속이었다. 원두막은 예로부터 참외밭을 지킨다는
구실이외에도 동네사람들의 좋은 피서지가 되었고 사랑방이 되었으며 또 길손들에게는 땀을 식혀가며 출출한 배를 채워주는 좋은 휴식의 장소가 되었다.
서리가 도둑이 아니던 시절, 참외밭주인은 알고도 모른 척 속아주던 농심이 있었기에 더욱 정겨운 추억으로 남아서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머릿속에 아름다운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지금에 이렇게 참외서리를 한다면 그것은 서리가아니라 절도이고 도둑이 되는 것이다. 교도소에 가기 딱 알맞은 행동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른다. myongyul@gmail.com <989/0826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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