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여자의 일생

<칼럼리스트 / 탬파거주>
조선시대의 여류시인인 허난설헌(許蘭雪軒=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의 누이동생)은 자신의 삶에 대한 한(恨)을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한다.
그 하나는 자신이 여자로 태어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조선 땅에서 태어난 것이라고 한다. 그녀는 조선여인이기에 겪는 인고(忍苦)의 길을 참을 수 없었고, 결국은 그것 때문에 27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이것은 옛날 조선시대의 수많은 여인들의 삶과 비애를 함축하여 표현하는 슬픈 사건이었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남자는 하늘, 해, 양지, 씨앗, 근본 등으로 비유되고 여자들은 땅, 달, 음지, 밭, 등으로 비유됐던 것이 남자와 여자에 대한 우리나라의 전해오는 전통적 관념이었다. 선사시대에는 한 여인이 여러 남성을 거느리는 모계사회의 과정을 거치기도 하였으나 그 이후 사냥과 농사, 그리고 많은 전쟁을 치루면서 점차 힘을 앞세운 남성본위의 사회로 바뀌어갔다.
신라시대에는 동양최초의 여왕이 나올 정도로 남-녀 간의 차별은 없었고, 고려시대의 여성은 가정 내에서 차별이 전혀 없어서 남편이 죽으면 여성이 호주가 되어 공평한 상속과 재산의 분배를 받는 것이 관행으로 되어 있었으며, 부모님의 제사도 아들, 딸이 돌아가며 지냈고 이혼도 서로 합의하면 허락되었으며 개가(改家)하여도 아무런 불평등이 없었다.
그러나 유교국가인 조선시대에 와서는 철저한 가부장제(家父長制)라는 가족제도에 의하여 남존여비(男尊女卑)라는 차별을 받게 되었고, 따라서 여성은 벼슬자리에 나갈 수도 없고 장사도 할 수 없으며 집밖의 나들이조차도 할 수가 없을 정도로 어려운 실정이 되었다.
남자는 여러 명의 첩을 둘 수 있었으나 여성은 시집가기 전에는 아버지를 모시고, 시집을 가서는 남편을, 그리고 남편이 죽은 뒤에는 자식을 따르는 삼종지도(三從之道)로 일생을 보내는 것이 여인들의 숙명이었다.
일반가정에서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쉼 없이 가사에 매달렸고 억울한 일이나 기쁜 일, 혹은 슬픈 일을 당해도 겉으로는 이를 내색할 수 없었다.
두 번 이상 시집을 갈수도 없었고 시기나 질투도 할 수 없는, 따라서 조선시대의 여인상은 자신의 감성적 욕구를 숨겨 놓은 채 자신의 존재는 없는 듯 처신을 해야 하는 예속적 신분이었다.
그리고 자손을 번식시키기 위한 씨받이로서 항상 건강한 체질을 유지해야하고 인내심으로 자신을 억제해야하고 대를 이을 아들을 잘 낳을 수 있어야 했다. 그렇지 못하면 결격여인으로 낙인찍혀서 눈물로 일생을 보내야했다.
조선의 법전(法典)인 경국대전에의하면 남자는 15세 이상 여자는 14세 이상이면 결혼을 할 수 있었는데, 아들을 둔 가정에서는 집안일을 도울 일꾼을 얻고 자손을 빨리 두기위해 어린 아들을 일찍 혼인시켰고 딸을 둔 가정에서는 식구를 줄이기 위해 빨리 출가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대개는 어린신랑과 나이가2~3세 더 많은 신부가 만나 결혼하는 게 상례였다.
그러다가 현대에 이르러서는 보편적으로 신랑은 신부보다 3~4세 이상의 연상커플이 가장 이상적인 결혼커플로 인정을 받고 상례화 되었다. 남자가 연상이 되다보니 당연히 여자는 남자(남편)를 모시고 순종하는 입장이 되고 순종이나 복종의 미덕은 그 여인(아내)을 착하고 가정에 충실한 현모양처나 양처로 표현하기에 이르렀다. 실상 그 내막의 사연은 그것의 반대적인 상황이 많았었는데도……..

오래전 한국에서 1968년도에 유행되었던 대중가요의 여왕 이미자씨가 부른 여자의 일생이란 노래가 있었다. “참을 수가 없도록 가슴이 아파도, 여자이기 때문에 말 한마디 못하고, 헤아릴 수 없는 설움 혼자 지닌 채, 고달픈 인생길을 허덕이면서, 아~ 참아야한다기에 눈물로 보냅니다.(여자의 일생)” 이하 생략.
이러한 노래가 만들어지고 특히 여자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동감을 얻게 된 내면에는 바로 여자들의 일생이 인내와 차별에 고통을 당하며 살아왔기에 더욱 많이 불렸는지도 모른다.
전통적으로 여자들은 남자에 비해 많은 것을 인내하고 차별을 감수하며 살아야했다. 지독한 남존여비사상으로 인해 여자는 태어나면서부터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아들에 비해 뒤로 밀려난 존재로서 보이지 않는 차별 속에 자라야했고, 성년이 되어서는 조건에 맞춰 원하지도 않는 상대와 결혼을 하는 경우도 허다했으며, 결혼 후에는 이른바 시집살이의 험난하고 힘든 생활과 핍박 속에 또 남은인생을 참고 견디며 살아야만했다.
때문에 모든 것을 가슴속에 꾹꾹 담아두며 참고 사는 것이 미덕이었던 시대의 여인들은 한(恨)이라는 정서를 대표하는 존재가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나의 어머니가 그랬었고 나의 누님이 그러한 일생을 보내야했으며 많은 세상의 여인들이 같은 일생을 보내야했다. 그러한 한과 원한이 증폭되고 희석되는 가운데 세월이가고 시대가 바뀌면서 여성들의 가정이나 사회적 지위 또한 변하게 되었다.
이제는 시대가 변하면서 여성들의 경제적, 사회적 활동이 점차 늘어나고, 심지어 여성들의 지위나 계급이 남자들의 그것보다 우위에 놓여 한국의 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여성이 되어도 그것이 결코 낮선 풍경이 아닌 시대가되었다.
어쩌면 지금의 젊은 여성들은 우리들의 어머니와 할머니들처럼 딸이라고 차별당하고 여자라 멸시당하는 것이 아니라 여자라서 더 귀하게 대접받고 보살핌을 받으며 살 수 있는(물론 아직은 갈 길이 멀지만) 첫 세대를 경험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열 아들 부럽지 않게 잘 키워진 딸들은 무조건적인 인내와 희생을 감수할 필요가 없어졌으며 공평한 남-녀 평등시대의 살기 좋은 사회가 펼쳐진 것이다.
과거나 현재에도 거만하고 못된 마음으로 자신들이 여자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남자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생명을 가져다준 어머니가 없었다면 자신이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임을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
자신의 우월성을 주장할 때 그 남자는 바로 자기의 어머니를 격하시키는 것이다.
이런 말이 있다. “남자가 여자를 격하시키거나 학대하면 그것은 자기 자신을 격하시키고 학대하는 것이라고”, 남성은 여성(남편은 아내)을 높이지 않고서는 동시에 자신을 높일 수는 없는 것이다.
오늘부터라도 우리는 모든 여성과 아내를 사랑하고 존중하며 인격적인 상대자로서 정중하게 예의를 지키고 잘 예우하며 살아가야겠다.

myongyul@gmail.com <976/0520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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