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아내의 내조(5월 10일, 어머니날을 맞으며….)

<칼럼리스트 / 탬파거주>
훌륭한 남편, 성공한 남편의 배경에는 반드시 훌륭하고 헌신적인 부인의 내조가 밑받침되었다. 아무리 제 잘나고 성공했다고 뽐내는 남자들에게도 그 내면에 숨은 노력과 뒷받침의 헌신적이고 자기희생적인 아내의 내조와 협력이 없었다면 그 남편의 오늘날과 같은 명예와 권력, 또는 부의축적이 이루어질 수 없었다고 장담하여 말할 수 있다.
즉 아무리 훌륭한 인간의 업적이라도 성장과정 안에 드리워진 따뜻한 조력이 없이는 가능하지가 않는 것이다. 사람이 제구실을 할 수 있을 때까지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조력과 정성이 필요한 것인지를 생각할 때, 사람은 자연히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다.
개인의 성장과정에 듬뿍 담긴 부모, 스승, 친구, 이웃 등의 정성어린 도움이 있어 비로소 개인이 제구실을 할 수 있는 바탕이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니까 아무리 훌륭한 인간의 업적이라도 그의 성장과 정안에 드리워진 따듯한 조력이 없이는 가능하지 않고, 따라서 인간관계자체가 가치 있는 조력을 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한 조력적인 인간관계속에서도 남편의 뒷바라지에 헌신하는 아내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시비가 많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 중요한 까닭은 도와주어야할 사람이 바로 일생최대의 업적을 표현해야할 장년기 남성이기 때문이다. 그 시비되는 이유는 격변하는 시대에 따라 여성의 역할이 크게 변하고, 부부간의 관계가 또한 미묘하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내조의 정형에서 우리가 배워야할 것은 너무나 많다. 안사람이 치리(治理)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명백히 규정되어있었던 까닭도 있었겠지만, 한국의 아낙네들은 그 내조의 역할에서 참여해야하고 안해야하는 구분을 잘 지켜주었다. 무슨 일에나 나서기를 꺼려했고 그래서 안팎의 일이 상충하는 일은 내조의 덕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첫 번째는 한국여성의 내조는 구겨진 것을 펴주고, 거친 것을 부드럽게 해주며, 상한 것을 어루만져주고, 모자라는 것을 채워 주는 데에서 비롯되었다. 그것이 남편의 마음이었든, 또는 밖의 일이었든, 그 주변의 일이었든 간에 내조하는 일은 천부의 여성적인 부드러움에서 비롯했었다. 피폐하고 실의하고 황량하고 공허한 심신의 상태에서 얼마나 많은 남편들이 아내의 도움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었던가…….오늘의 내조가 흔히 시비되는 것은 우선 현대사회에서의 안팎의 역할이 분명하지 못하다는 근본적인 이유는 있겠으나 어쨌든 아내의관심사가 여성적 역할을 곧잘 벗어나는 데에 있기도 하다.
남편이 하는 일을 속속들이 다 알아야하고 동참해야한다는 태도는 내외간을 위해서나 사회적 기여에 있어서나 별로 이롭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둘째로는 현대여성의 요구수준이 높아지는 것은 좋으나 그로해서 남편의 보다 높은 무리한 성취를 강요하는 것은 극히 해롭다고 본다. 각박한 논쟁으로, 짜는 듯한 압력으로, 애소하는 듯한 짜증이 내조하는 일단의 표현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 상조(相助)관계의 극치인 부부간의 현대적 능력의 표현정형이 하루속히 정립되어야겠다.
며칠 전에 어느 여자분인 독자께서 나에게 전화를 주셨다. 아내로서 남편과 아이들을 뒷바라지하며 힘겹게, 낮에는 직장에 나가서 일하고 저녁에 퇴근해 와서는 집안일에 몰두하다보니 너무나 힘이 들고 고달프며, 특히 힘이든 가사일 보다는 직장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집안일은 전혀 돌보지 않고 자기만의 휴식을 취하며 방관자가 되어버리는 남편이 더 얄밉고 보기 싫으며 그것을 감내하며 참아야하는 자신은 더욱더 정신적인스트레스가 너무 많이 쌓여서 우울증에 시달리고 당장 집을 뛰쳐나가고 싶다고 한다.
이러한 실정이 유독 자기 한사람뿐이 아닐 텐데 이러한 불합리한 사정을 글로 써서 불쌍한 아내들의 실정을 대변해주고 ,희생과 헌신적인 아내의 내조를 몰라주는 남편들을 계몽시켜달라면서 하소연과 함께 힘없이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분의 전화를 받고난 후 나는 지금까지도 나의 마음이 편치가않다. 그것은 그 여자분뿐만 아니라 나의 아내, 나의 어머니께서도 그러한 생각을 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어쩌면 수많은 한국혈통의 여자분들께서 똑같이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기에 더욱 신경이 쓰인다.
나 역시 남자의 한사람과 남편의 일원으로서 집사람의 어려움을 헤아리지 못함이 몹시도 부끄러우며 어머니께 효도 못해드렸음이 너무나 후회가 된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아내나 어머니들이 하시는 일들이 왜 그렇게도 많은지 모르겠다. 아내로서 출퇴근하는 남편을 뒷바라지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어머니로서 아이 낳아 키우고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고, 아이들의 운전수 노릇을 한다. 가정부처럼 요리하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집안청소를 하다보면 하루가 훌쩍 가버린다. 제대로 한번 허리 펴고 소파에 앉아 휴식을 취할 여유도 없다. 여기에 직장생활을 하는 여자분들은 더욱더 힘이 든다. 아무리 피곤해도 집에 돌아오면 저녁식사를 준비해야하고, 설거지를 해야 한다. 아이들이나 남편이 벗어놓은 양말이나 셔츠, 옷들을 정리하고 빨래를 하다보면 밤이 늦어진다. 혼자서 살 때나 결혼하기 전에는 내 몸 하나 간수 하면 됐는데 시집을 오고난 이후로는 시부모님이나 일가친척, 시누이, 시동생까지 신경을 써야한다.
단둘이 살림을 나와 결혼생활을 한다고 해도 어떤 때는 퇴근한남편의 분풀이상대가 되기도 한다. 누가 봐도 할일이 너무 많고 억울하다. 남편이 알아서 아내를 조금이라도 도와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속이 터진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고 속이 끓어오르는 경우가 다반사다. 참으로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생각에 여자로 태어나게 하신 하나님이 원망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남녀평등사상이 강한 미국에 살아도 한인을 남편으로 둔 여성들은 별로 도움을 받지 못한다.
어느 부인이 동창회에 갔다 와서 입이 문어입이 되어서 돌아왔다. 남편이 물었다. “당신 왜 그래? 밍크코트, 다이어반지라도 차고 온 친구라도 있었나?” 아내가 대답한다. “아니 됐어요.” “도대체 왜 그래?” 남편이 재차 묻자 아내가 대답한다. “다들 남편이 없는데 나만 남편이 있어서 일찍 나왔잖아요”
이건 순전한 농담으로 만들어낸 이야기지만 세상의 모든 아내들이 이렇게 생각한다면 세상살이가 너무나 쓸쓸해진다. 만약 어느 아내가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큰일날일이다. 혹시 당신의 아내께서 외항선 남편을 가진 친구를 부러워하고 남편이 아침에 눈뜨지 않기를 바란다면 세상에서 이렇게 슬픈 일은 없을 듯싶다.
창세기에는 하나님께서 남자를 돕기 위해서 여자를 만드셨다고 말한다. 종이 아니라 파트너로 지은 것이다. 오는 5월 10일, 두 번째 일요일은 미국에서 지키는 어머니날이다. 그동안 한인들의 아내로서, 또는 어머니로서 고생하고 수고하시는 모든 아내들과 어머님들께 고개 숙여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 버리고 차버리고 싶은 마음을 달래면서 걱정덩어리, 말썽꾸러기, 큰 아들 같은 부족한 남편을 돌보아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어머니날을 맞아 아내들과 어머니들의 고통과 괴로움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한없는 사랑과 축복을 모든 여성분들께 베풀어주시기를 손 모아 기도드리겠다. 세상의 아내, 어머님들 정말로 감사합니다.
myongyul@gmail.com <974/0505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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