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봄의계절, 4월

<칼럼리스트 / 탬파거주>
4월은 봄의 절정의 달이다. 3월처럼 꽃샘추위가 찾아와 겨울을 연상케 하지도 않으며 5월처럼 갑작스레 찾아오는 초여름의 철이른 더위를 연상케 하지도 않는 완연한봄이다. 봄은 참으로 사랑스럽고 따듯함을 배우게 해주는 고맙고 아름다운계절이다. 이 4월의 봄은 겨울의 매서운 추위를 떨쳐버리고 따듯함을 가져오는 계절이며 겨우내 움츠러들고 땅속에서 동면을 하던 모든 초목들이 움트는 시기이다.
사계절의 시작인만큼 모든 생명체들이 새로운 약동을 준비하는 시기이며, 새롭게 출발하는 생명들에게 따듯한 기운을 불어넣어주는 약진과 생동감을 일깨워주는 희망의 계절이다. T.S엘리어트는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표현했다. 왜 그는 이 아름답고 모든 만물이 소생하며 생의축제로 환희에 들떠있는 대지의 4월을 잔인하다고 했는지? 의문이 생겨난다. 생명의 시작이 잔인해서인가? 아니면 그 생명의 삶이 잔인해서인가. 그는 4월이 잔인하단다. 겨우내 숨죽여있던 생명들이 깨어나고 움트는 이 4월이 잔인하다고 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다시 근원으로 돌아가고 모든 생명들은 근원에서 나온다. 그것처럼 나와 세상의 모든 이들은 언젠가는 돌아갈 것이고, 내가 숨 쉬고 살아서 활동하는 이세상은 잠시 머물며 산책하는 공간일 뿐………아름답고 따듯한 4월이, 결코 잔인하지 않는 눈부신 4월이 지금 내 곁에 와 있다. 지난겨울, 1. 2월달은 정말로 혹독한 추위와 눈보라로 미중서부를 비롯한 동부지방, 특히 보스턴지역은 정말로 잔인한 달이었다. 그런데 그 잔인한 달, 결코 봄이올 것 같지 않은 암흑 같은 기나긴 겨울이 물러가고 진짜 실감나는 봄, 4월이 된 것이다.
이 4월은 확실한 봄을 말하는 달이다. 더 이상 고난의 겨울로 되돌아가지 않음을 말한다. 그뿐 아니라 이 4월에는 기독교인들이 축제로 삼고 있는 부활절이 있으니 그 의미가 한층 높아 보인다. 나는 부활의 의미를 믿고 구세주인 예수님이 세상의 죄인을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부활을 믿는다. 그런데 타종교 인이나 무종교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는다. 믿거나 말거나 어쨌거나 기독교에서의 부활절은 교회력 절기중의 하나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절기를 가리킨다. 옛날 초창기의 부활절은 3~4월경에 불규칙하게 지켜져 왔다고 한다. 주후325년 로마 카톨릭교회가 니케아공의회에서 동방교회에서는 유대인이 지키는 유월절과 같은 날 즉 닛산월 14일에 부활주일을 지켰고 서방교회는 예수그리스도가 일요일 날 부활하신 사실을 중시하여 춘분후 만월 다음에오는 일요일에 지키고 있어 부활주일의 날자 문제는 오랫동안 일치된 해결을 보지 못하고 있었으므로 이 문제를 니케아의회에서 서방교회의 손을 들어 정하였는데 부활주일은 춘분 후 만월후의 첫 일요일에 지키기로 정하였다. 이에 따라 태양력기준으로 3월22일부터 4월25일까지 사이에 부활절주일을 지키게 되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최근 기독교내에서 부활절의 의미가 점점 희석되어, 부활절을 하나의 연중행사처럼 치르는 모습을 쉽게 목격하게 된다. 토끼모양으로 새겨진 초콜릿을 먹고 색색으로 채색된 달걀을 굴리거나 먹으며, 먹고 마시고 즐기는 1년에 하루만 기념하고 지나가는 절기 정도로 가볍게 여기고 있다. 이런 행사는 부활절의 본질이 아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골2:16~17)” 라고 말했다. 절기자체는 오실 예수님에 대한 그림자로, 절기의 본질은 예수님이라는 의미이다. 지난 4월 5일 주일, 하루를 특별히 부활절로 지키는 이유는 365일이 부활절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하기위해서이다. 따라서 그날 하루만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생각하지 말고 1년 열두달 매일같이 부활의의미를 삶속에 적용시켜 예수님이 명령하신 지상사명을 수행하는 복된 크리스천이 되기를 기독교에서는 강조하고 있다.
봄은 자연 속에서 보는 부활의 계절이다. 추운 겨울이 되어 얼어붙어 생명의 흔적이 사라졌던 대지에 얼음과 눈, 추위가 사라지고 이를 헤집고 파란생명의 화사한꽃들이 활짝 웃는 얼굴을 내어놓는 계절이다. 그 때문에 우리들의 가슴에 희망과 기쁨의 노래를 선물한다. 이것은 암울한 죽음을 이긴 생명의 찬미이기도하다.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다. 저 아무렇지도 않은 땅에서 저토록 아름다운 빛깔의 꽃들이 피어나는 것을 보면 도대체 저 땅속에는 얼마나 많은 형형색색의 물감들이 숨어 있기에 저렇게 아름답고 다채로운 자연의 조화를 이루어 낸단 말인가?………
봄이라는 말의 어원이 ‘보다’에서 나온 것이라는 설(說)이 있다. 봄은 새롭게 볼 것이 많은, 보는 계절이라는 의미이리라. 이설에 따른다면 우리말의 봄은 다소 정적(靜的)이고 여성적인 어감을 갖는다. 봄바람, 봄비, 봄나들이, 봄처녀 등 봄이 붙는 말에는 그윽한 향내와 함께 은근한 설렘이 내포되어있는 것 같다. 그러나 서양의 봄, 즉 Spring은 솟아오르다, 도약하다는 뜻으로 활력, 도약, 탄력, 생동감 등의 동적(動的)이고 남성적인 어감을 갖는다.
4월의 봄은 나보다도 남을, 이웃을, 그리고 그들의 슬픔과 아픔을 이해하고 격려하는 계절이어야 할 것이다. 밀어올리고 뚫고 나온다는 것은 상대를 모르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내 마음을 먼저 활짝 열어 모두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는 이해와 사랑을 줄 수도 받을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를 바로 알아야 할 것 같다. 나라는 존재, 나라는 실체를 정확히 알지 못하고는 사랑하는 것도, 이해하는 것도, 제대로일 수 없음이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함으로써 내가 나로서 잎을 피우고 꽃을 피우는 것을 내 스스로 알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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