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칼럼> 약 40년 전의 마이애미지역 동포사회 (2)
그러고서 한동안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동안 이곳 지식 층 동포 몇 분을 만나면서 한인회 얘기를 자주 주고받았다.
모두가 한인회의 행태가 문제가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개선 방안을 제시하는 분은 찾을 수 없었기에 슬쩍 필자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사회의 흐름을 바꿔 놓는 데는 신문 이상 효과적인 게 없다, 신문을 만들어 보자”고 하자 모두가 “옳은 말인데 하지만 신문을 만들 줄 아는 분도 없고 모두가 최저 생활을 하는 터라 재정 능력도 없다”면서 오직 ‘침술사’로만 알려진 필자의 말을 황당한 것으로 일축했다.
그동안 이 분들에게 입 밖에도 꺼내지 않았던 필자의 기자 경력을 밝힐 수밖에 없는 때가 되었음을 실감하면서 “실은 서울에서 기자 생활을 하다 왔기에 신문 제작방법은 내게 맡기시고 십시일반으로 재정 면에서 뒷받침만 해 주신다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고 했더니 모두가 반신반의 하면서 놀라는 표정들을 짓다가 그 중 한 분이 “그럼 신문을 만드는데 드는 예산 등 상세한 내용을 작성해서 다음 번 모임에서 밝혀 줄 수 있느냐?” 고 주문했다.
이번 모임에서 오랜만에 실타래를 풀 끝마디를 찾아 낸 듯한 느낌이었다.
때마침 이 곳 교역자가 ‘8인회’분들에게 ‘여러분들은 이 고장 동포 사회를 이끌어 가는 분들이니 이제 막 이민 해 온 서민층 동포들께도 따뜻한 손길을 보내 달라’고 요청했는데 ‘8인회’측은 ‘유력한 인사들끼리만 어울리지 말라’는 뜻으로 받아 들여 교역자와 ‘8인회’가 껄끄러운 관계가 형성되고 있었기에 교역자를 따르던 이 분들이 모두가 필자의 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것으로 생각되었다.
당시는 컴퓨터가 보급되지 않았기에 한글 타자기를 구입하는 등 준비 과정으로 많은 시간이 흐른 후 동지들의 적극적인 협조로 드디어 ‘우리소식’이라는 A4 용지보다 3인치가 더 긴 ‘리갈싸이즈(Legal Size)’의 조그마한 신문이 4페이지~8페이지 씩 매 격주간으로 발행되기 시작했다.
당시의 작은 동포사회에 최소한도의 비용으로 만들 수 있는 싸이즈를 선택한 것이다.
작은 신문이라도 내용만 알차다면 그런대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게 신문 아닌가.
동지들은 교정, 광고, 발송, 홍보 등 신문 제작 일선에 참여하고 필자는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서 기사 취재와 작성, 논설, 편집 등 주로 신문 제작의 핵심부분을 책임졌다.
인건비가 필요한 신문이 아니었기에 제작비는 타자기 구입 후 용지대, 인쇄비, 발송비, 운송비 등 최소한도의 비용이 들 뿐이었고 그 보다는 기사취재, 작성, 교정, 편집 등에 소요되는 시간이 하루 평균 3~4시간씩 투입되는 게 가장 큰 노역이었다.
그간 한인회의 문제 점 등을 알게 된 아내도 신문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데에는 동의하면서도 그 일(신문제작)을 누군가 다른 분이 해주길 바랐다.
옳은 일을 하면서도 남에게 욕먹는 일을 누가 좋아 하겠는가. 그러나 신문에 경험이 있는 분이 없으니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는 필자의 몫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소식’은 영향력을 의식해 주미대사관을 비롯해서 애틀랜타 총영사관 등 요로는 물론 미주 내 동포들이 몰려 사는 대도시의 신문 방송에도 한 부씩 발송했다. 그 결과 엘에이, 뉴욕, 시카고, 워싱턴 디씨 등 큰 도시의 동포 신문 및 방송은 ‘우리소식’ 기사를 거의 대부분 인용 보도해서 그 보도를 통해 현지 동포들이 마이애미 지역의 아는 동포들에게 수시로 ‘이러이러한 기사를 봤다’며 전화로 알려 왔다.
‘ 우리소식’ 기사 내용이 좋았던지 올랜도한인회에서 협조 요청이 왔다. 동포들에게 한인회 소식을 전달하는데 ‘우리소식’을 활용함이 최선책이라는 것이었다.
운영난을 타개하기 위해 좋은 아이디어라 생각해서 그곳 동포사회 뉴스도 크게 다루어 페이지를 10~12페이지로 늘리면서 신문 발행을 위한 재력을 강화해 나갔다.
마이애미 동포들을 목표로 했던 것이 전 플로리다로 확장되어 가는 계기가 된 것이다.
한동안 시간이 흐르면서 예상한 대로 ‘8인회’가 긴장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돈 없는 제까짓 것들이 신문은 무슨 신문’하는 자세였으나 매월 두 번씩 나오는 조그마한 신문이 시간이 갈수록 지면이 늘고 배포지역도 확장되며 ‘미국내 동포 사회는 민주화되어야 한다’는 내용의 사설과 까십 까지 실어 동포들의 의식화를 꽤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으리라.
‘우리소식’이 나오고 처음 열리는 광복절 기념식 및 한인회 총회에 필자가 취재를 위해 나갔을 때 총회의 사회자가 뜬금없이 “우리소식 김 아무게 기자를 한인회 이사로 추대하니 박수로 지지 의사를 표해 주세요”해서 깜짝 놀랐다.
필자는 박수 소리가 나는 중임에도 벌떡 일어나서 “신문 만드는 사람은 언론 본연의 직무 수행을 위해 이사가 되어서는 안 되니 없던 일로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하고 앉자 장내는 쥐죽은 듯 조용했다.
아마 ‘이곳 동포사회에서 큰 감투인 이사직을 감지덕지 좋아하지 않겠냐?’ 또는 ‘골치 아픈 기자를 8인회가 포섭해서 자기네에 유리한 신문을 만들자’는 등 꼼수를 부리는 구나 싶었다.
그렇다면 필자의 이사직 수락 거부 발언은 ‘8인회’ 멤버들에게는 괘씸하고 불쾌한 것일 수밖에 없었으리라. (계속) kajhck@naver.com <2012-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