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동칼럼> “그건 너 바로 너 때문이야” 

<김원동칼럼> “그건 너 바로 너 때문이야”
“그건 너 바로 너 때문이야”라는 노래는 60년대 후반에 가수 이장희가 불러 히트를 친 유행가 제목이다.
“어느 날 비가 오는 종로거리에서 우연히 마주 친 동창생 녀석”이 당시 그 노래의 주제 인물이었다면 이번에는 막말의 주인공 나꼼수의 김용민이 선거의 패배를 불러 왔다고 해서 회자되는 “그건 너 바로 너”의 주인공이다.
예상을 뒤엎은 4.11총선결과를 두고 하는 말이다. 다 이긴 선거나 다름없는 야당을 선거 막판에 쫄게 만들면서 꼴대 앞에서 헛 발길로 관중석에 환호 대신 재를 뿌린 경기말이다.
그러나 박근혜의 역전드라마를 안겨주며 승리의 월계관을 헌상(獻上)한 김용민에게만 책임의 전부를 돌릴 수만은 없다.
저널리즘이 아닌 너절리즘의 대명사가 된 나꼼수에 미친 젊은층을 의식한 나머지 그를 선거용으로 상품화한 오만과 오판으로 일관한 한명숙을 비롯한 무뇌 집단인 야권사령탑을 질타하며 나오는 소리다.그리고 야당에게 패배를 안겨주고 새누리에 자리를 내준 이번 선거의 일등공신 반열에는 김용민 외에도 또 있다. 선거기간동안 같은 배를 탄 또 하나의 배다른 이복형제 같은 진영의 후보 입에서 터져 나온 소위 해적(海賊)발언이다.
국군을 해적으로 표현한 그 해적녀 덕분에 군심(軍心)은 완전히 야권에 등을 돌렸다. 9개의 선거구가 있는 군 밀집지역인 강원도에서 민주통합당이 전멸하고 새누리가 싹쓸이한 개표결과가 이를 말해 준다.
“해적”발언이 군에 동요를 부추기는 와중에 터져 나온 북한의 광명성 발사라는 미사일의 발사 초읽기와 때마침 동해안에 북의 상어급 잠수함기지가 부상했다는 사실 또한 천안함의 악몽을 되새기면서 군인들의 동요가 왔다.

양대 정당 모두 무이념 정당이며 보수정당이 실종된 상황에서지만 그래도 새누리가 로고와 당복을 빨간색으로 염색하고 나왔을 망정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로써 박근혜는 해적발언 덕분에 손도 안대고 코풀었다. 군표(軍人票)에 무임승차하는 행운을 얻었다는 말이다.
게다가 국가안보는 안중에도 없는 2대에 걸친 철저한 반미 종북세력으로서 낙동강을 먹겠다고 큰 소리 치던 백만 꽃송이 민란의 주인공인 배우 문성근의 남북연합정부 설립 운운하는 외골수 붉은 피의 전횡도 국가안보의 공포와 불안을 느낀 적잖은 군인들은 물론 부도덕에 극치를 이룬 현정권의 심판론에 기대했던 사람들까지 돌아서게끔 만들면서 패배를 유발한 기폭제 역할에 일조 했다.

그래서 문성근의 낙선을 축하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선거에 미칠 파장을 예견 못했던 종북세력들의 반군(反軍)선동은 이렇듯 빠른 속도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면서 총선 개표현황판을 곤두박질치게 했다.
총선과정에서 나타난 국민감정의 분포를 보면 여당에게는 때마침 불어 닥친 청와대의 민간사찰 파문으로 불신은 “분노”로 치달았고 야당은 막말을 비롯한 여러 가지 악제로 “불만”으로 점철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는 불신을 해소 회석시키는데 다소 성공했으나 야당으로 불리는 한쪽진영은 국민불만을 해소하는데 실패했다.
막말과 해적발언은 청와대의 대국민사찰극이라는 야당으로서는 엄청 호재(好材)를 조리 없는 일방 통행식 잔소리식 수준을 못 넘은 채 대안부재로 기회를 놓쳤다.
이제 대선에서 새롭게 전열을 가다듬고 심기일전 속에 나선다면 전화위복인들 왜 없겠는가! 촌 동래는 빼앗겼지만 수도권은 먹었지 않은가! 수도권에 지고 대선을 먹은 적이 없다.

“그건 너” 라는 노래를 제목으로 달고 칼럼을 치는 필자의 뇌리를 스쳐 가는 못 말릴 필름 한 토막이 떠오른다. 유신정권에 불만이 깊었던 동지들끼리 나무젓가락이 부러지도록 죄 없는 주전자 뚜껑을 두드리며 합창해 보던 단골노래가 통치자를 빗대어 조금 손질한 가사였던 “그건 너”였다.
그 때 그 울분 속에 소주잔을 들고 합창하던 음치들은 지금 살아있으면 어떻게 지날까? 파고다공원에 벌려진 정치 노점판에서 무보수 연사로 열을 올리고 있겠지, 안 그러고는 못 견딜 그 별난 성미들의 정겨운 얼굴들이 떠오르는 꼭두새벽에 “그건 너”를 흥얼거리며 친 글이다. <828/0418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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