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동칼럼>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진 두 사람의 거물 재일동포

<김원동칼럼>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진 두 사람의 거물 재일동포

▲ 지난 3월21일 별세한 이희건(95세) 신한은행 명예회장과 7일 지병으로 별세한 재일거류민단 박병헌(84세) 상임고문.

▲ 지난 3월21일 별세한 이희건(95세) 신한은행 명예회장과 7일 지병으로 별세한 재일거류민단 박병헌(84세) 상임고문.

망국의 한을 가슴 깊이 안고 살면서 모국에 대한 훌륭한 족적을 남긴 채 역사의 무대 뒤로 그들은 사라졌다.
성공한 거물급 재일동포인 한국 신한은행의 창업주인 이희건씨와 역시 자수성가한 엘텍기업 회장이자 재일 거류민단 상임고문인 박병헌씨가 최근 연이어 각각 지병으로 타계(他界)했다는 비보(悲報)다. 모국에 위기가 닥쳤을 때마다 도움에 맨 앞장 선 바로 그때 그 사람들이다.

북괴의 남침에 의한 6,25 동족상잔이라는 비극 앞에서, 600명이 넘는 재일동포 애국청년들이 의용군으로 풍전등화 같은 조국의 운명 앞에 From Japan 이라는 가벼운 견장 하나 걸친 채 주일미군과 더러는 한국군에 자원입대하여 인천상륙작전에서 흥남철수에 이르기까지 참전한 군번 없는 애국자들로써 조국강산을 지키게 한 장본인들이다.
그래서 국립현충원 16묘지에는 지금도 그들을 기념하는 위령비가 세워져 있다고 한다.

그리고 5.16군사혁명 후 조국근대화를 위한 외화 제로(0) 발란스의 위기 앞에서도 그들은 팔을 걷어 붙였다. 세속적인 말로 모국에 대한 그 무슨 반대급부를 노린 게 아니다.

“제2의 국치(國恥)는 안된다”는 진한 애국일념에서였다. 그래서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한국경제재건의 초석을 다지는 일에도 그들은 괄목할만한 기여를 했다.
그리고 88올림픽 주최권을 따놓고 행사에 따른 건설 자금문제로 고민하던 정부에 그들은 정부 수립 후 최대 규모인 541억원이라는 천문학적 숫자의 모금액으로 지원하는데 앞장섰던 인물들이다.
그리고 이어 IMF라는 국가부도사태를 맞은 암담한 현실 앞에서도 위기를 극복해준 기폭제로써 이들은 한결같이 모국사랑을 호소하며 발 벗고 나섰다.
고통분담차원에서 15억 달러를 모금하여 김대중 정부에 전했다. 금모으기 운동 등으로 350만명의 한국민들이 참여한 모금운동에 조금 모자라는 엄청난 금액이다.
이어 그들이 펼친 “Buy Korea 운동”으로 효율적이고 지속적인 측면지원도 빼놓을 수 없는 업적이며 북한 공민권자들인 재일 조총련계 동포들에게도 단체로 모국(남한)방문을 주선하여 민단으로 전향케 한 공로자들이다.

특히 이희권씨의 경우 일본으로의 국적 귀화 전에는 허용될 수 없는 일본의 인종차별적인 은행법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은행 대신 오사카에 조그마한 신용조합 하나를 세운 것이 오늘날 금융계의 대부(代父)라는 신화를 창조한 배경이다.
금융인으로 성공한 그는 모국으로 진출하여 1982년 250억원의 자산으로 신한은행을 설립했다.
지점 3개를 운영하는 소규모은행이었지만 남다른 서비스 정신으로 일취월장하여 관치(官治)금융의 높은 벽 속에서 “신한”이라는 한국최고의 순수 민간 은행으로 성장해 놓았다.

북미주 여러 한인밀집도시에도 신한은행지점이 설립됐다. 재외동포의 자산이라는 데서 외환은행이나 여타 다른 한국계은행과는 다르다. 동포에 의한 동포를 위한 동포들의 은행이 되어야 창업정신에 걸맞은 일일 진데 그렇지 못해 아쉽다고 한다.

동포들을 위한 사회 환원이라는 것도 유별나게 외면하는 곳이라고 들린다.
해외동포사회를 파고들며 지점망을 확장하면서도 그들은 신한은행이 한 해외동포에 의해 탄생한 은행이라는 역사적인 진실을 감춘 채 오히려 재외동포를 상대로 개업한 그들의 턱없이 높은 은행문턱은 동포라는 의미를 애써 외면하며 고답적 자세로 은행 업무를 치른다는 듣지 않은 것만 못한 소리다.
이 아이러니한 모습을 고인이 된 창업주 이희건씨나 그와 함께 신한은행 발족에 참여하고 지금도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재일동포 이사들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 의문이다.
왜 잘 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지느냐고 할 사람이 있을지 몰라서 하는 말이다.

광복과 동시에 귀국선에 몰려들던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그는 오사카에 남아 잔류하는 재일동포들의 열악한 환경을 극복해보는데 일조하겠다는 결심이 서면서 재일동포들을 위한 편의제공에 역점을 두고 금융업을 시작했다.
그 창업정신으로 북미지역으로 진출한 해외신한은행의 행보가 빗나가는 것이 아닌가 해서 악의 없이 짚어보는 말이다. 고인들에게 삼가 명복을 빈다.(kwd70@hotmail.com) <779/2011-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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