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살> 대통령을 역모에 끌어드리려는 총영사

대통령을 역모에 끌어드리려는 총영사
조선시대 같으면 단연 사약 감이다.
김 원동 (언론인/토론토)

고 스코필드 박사

고 스코필드 박사

G20에 참석하는 이 대통령의 토론토 방문을 앞두고 대통령 모시기에 혈안이 되어있다.
나름대로 국가이미지 재고와 한민족 위상설립이라는 대의를 그 목적으로 한다기에 그들의 우국충정(?)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그러한 와중에도 그 명분과 대의에 어긋나며 G20과는 전혀 무관한 이슈로 대통령의 일정과 행보에 먹물을 끼얹을만한 대 음모가 토론토에서 총영사의 진두지휘로 벌어지고 있다.
홍지인이라는 토론토 총영사를 중죄인시(重罪人視)하고 고발하는 이유는 그가 애국을 위장한 짝퉁애국자들인 일단의 음모꾼들의 왜곡된 감언이설에 속아 결과적으로 부화뇌동한 모양새로 귀결되었기에 그렇다. 그리고 스코필드 박사 동상 건립이 오늘의 총영사 고발의 모태이기에 간략하게 그 배경부터 설명한다.
필자는 동상 건립을 최초로 꺼낸 당사자로써 순수했던 나의 초심은 단순히 3.1운동의 유공자였던 스코필드 박사를 기념한다는 소박한 꿈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모금문제에는 전혀 재주가 없는 필자이기에 적임자들(앵벌이 전문가)를 찾았다. 그리고 필자의 위촉을 받은 자들이 궤도를 이탈, 모국 공관측과의 야합으로 나의 순수했던 뜻과는 달리 스코필드 박사를 상품화하여 거대한 동상과 함께 한국정원을 세운다는 계획을 발표하며 5년여가 넘는 긴 세월 하는 것 없이 모국 국고를 까먹으며 말썽만 피우고 있다.
그들은 교묘한 방법으로 접근을 시도해 모국 보훈처로부터 이미 80만달러의 국고를 빼먹은 상태이며 까먹을 후속 자금줄이 없자 때마침 토론토를 방문하는 모국대통령을 차제에 이용가치가 있다는 판단에서 향후대책이 전무한 일과성 해프닝인 동상제막식이라는 급조행사에 대통령을 끌어 내세우고 향후 모국정부로부터 국고를 더 빼먹기에 용이하다는 술책의 일환으로 대통령을 역모에 끌어들이는 위험한 작태를 연출하고 있다.
총영사를 비롯한 일단의 역모꾼들의 위험천만한 행위에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는 생각에 대통령도 사기극에 이용당하기 전에 청와대 정보라인을 통해 토론토 현지 동포사회 여론수렴을 하고 경계는 물론 위험한 함정에 빠져들지 말라는 권고의 말씀을 드리는 바이다.
동상건립용으로 2만5천달러만 모금하라고 했던 스코필드 기념사업회 회장인 나의 지시를 무시하고 총영사 관저에서 숙덕거린 끝에 그들은 멋대로 2만5천달러의 100배에 달하는 240만달러의 예산으로 둔갑시키며 스코필드 동상건립이 아닌 최종목적은 한국정원건립이라며 명칭을 바꾸더니 한국정부와 캐나다정부 그리고 동포사회가 각각 80만 불씩을 내는 매칭펀드로 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한국 정부 몫의 돈은 총영사관으로 도착했다.
그때부터 필자와 총영사관 사이에는 신경전이 벌어졌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총영사관도 그 돈을 한국정원 추진 측에 전하지 못하고 영사관 구좌에 오랫동안 동결됐다. 매칭펀드 조건으로 한국정부에서 온 돈이면 세 군데서 돈이 모두 들어온 소위 매칭펀드가 완료된 이후에 쓰기 시작해야 한다는 필자의 강력한 항의 때문이었다.
그 때부터 필자는 저희들 멋대로 내놓은 80만 달러의 캐나다 정부의 매칭펀드 부담액이라는 것도 절대 불가능하고 동포사회 모금 80만 달러도 어림없는 짓이라며 국고를 서울로 돌려보내라는 강력한 요구를 하며 당시 김성철 총영사(현 콩고대사)에게 압박했다.
캐나다 정부에서 매칭펀드 지원이 절대로 되지 않을 이유로 캐나다정부가 정부와는 전혀 무관한 일로 100년 전에 남의 나라에 가서 독립운동을 도운 한 선교사를 위해 거금 80만 달러를 지급할 이유가 절대로 없는 나라다. 그리고 스코필드 박사는 캐나다 태생이 아니었다.
우리와 똑같은 이민자인데 캐나다 태생처럼 한국과 캐나다정부를 속이려든다.
그리고 제 3국에 한국정원을 설립한다면 당연히 100퍼센트 한국정부 예산으로 해야지 왜 한국정원을 세우면서 제3국(캐나다)의 돈을 노리고 제3국의 국민이 된 해외동포들의 지갑을 열도록 노리는가! 다분히 사기라는 범죄의 구성요건이 충족된다며 국고를 한국정부로 반환하라고 연일 요구했다. 그리고 명칭을 한국정원이라 고쳤으면 한국을 상징하는 인물을 세워야지 왜 스코필드 박사 동상을 세우는가 한국을 상징할 대표적 인물이 그렇게 없느냐고 항의하며 한국 정원에 스코필드 박사 동상을 세우려는 것은 단순히 캐나다정부 돈을 뜯기 위한 사기성이 강한 술책에 다름 아니라며 지적했다.
그러나 짝퉁애국자들인 작당 패거리들은 자신들의 음모를 차근차근 진행시켰다. 거기에 총영사가 한패거리가 된 것이다. 음모를 꾸미는 작당들을 비호하고 나섰다.
모국 국고 보호차원에서 여론수렴이라도 해야 함이 당연하거늘 한쪽에만 치우쳐 국고가 난도질당하는 현장을 목도하면서도 진실을 상부에 보고도 하지 않는 국고낭비 방조의 직무유기를 했다. 국고를 빼먹으려는 위험한 장난질에 부화뇌동한 것이다.
한국정원을 짓는다면서 왜 캐나다 정부를 상대로 앵벌이 짓을 하느냐며 항의하는 동포들도 많다. 그러나 총영사는 이러한 여론수렴을 단 한차례 시도하지 않고 애써 외면했다.
모국 국고 보호차원에서 여론수렴이라도 해야 함이 당연하거늘 한쪽에 치우쳐 국고가 난도질당하는 현장을 목도(협조)하면서도 상부에 보고도 하지 않는 국고낭비 방조범으로써 조선시대 같았으면 사약을 받아야 마땅할 직무유기범인 것이다.
그가 직무를 유기하면서 까지 일단의 국고 빼먹기 사기꾼들에게 의도적으로 친근감을 표시하며 끝내 쉽게 한패거리가 된 대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총영사는 스코필드 박사를 은인이며 양부로 모시는 사람이 정운찬 국무총리라는 꾼들의 유혹에 귀가 솔깃해졌다. 잘하면 정운찬이 총리로 있는 한 스코필드 동상에 대한 공로로 대사 자리라도 얻어내는 즉 출세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잔꾀에서 그 무리의 일원이 되면서 국고를 탕진하는 현장의 중심에 섰다. 그 정도의 사심성 배팅이야 한국공직사회에서 흔한 관행이라 치자.
다만 이제는 감히 한-캐 양국 정상층까지 속이고 고귀한 스코필드 박사를 상품화하면서 국고를 빼먹으려는 위험한 장난질에 일과의 상당부분을 할애 하고 있다는데 있다.
필자는 이 땅 캐나다에 와서 사는 보람을 느끼며 그 분의 출생지는 아니지만 연고지라는 이유에서 10여 년 전 어느 날 <스코필드 기념사업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분이 검소했듯 기념사업회를 하면서도 그분을 추모하는 행사 등을 늘 검소하게 치러왔다.
동포사회를 상대로 금품을 요구하지도 모국정부나 캐나다정부를 상대한 앵벌이 행세도 한 적이 없다. 그 분의 생애를 담은 사진전을 열고, 그분이 섬기던 교회의 목사님과 신도들을 초청해서 다과회도 베풀고 3,1절이 든 주간에는 그분이 섬기던 교회를 찾아가 합동기념예배를 치를 때도 많은 참여를 바라는 글과 광고도 냈지만 지금 스코필드 때문에 세상에 태어난 발광하는 그 부류들은 전부 외면했다.
그런데 잘 하면 뭐가 좀 있겠다 싶은 판단에서인지 그들 변절자들은 이제와 목에 힘을 주고 설치면서 끝내 우리가 살아가야 할 제2의 조국인 이 땅과 두고 온 모국을 향해 분명 후환이 닥칠 위험하고 교묘한 짓거리로 날뛰고 있다.
스코필드 박사는 월급 없이 대한민국의 독립운동을 도왔는데 이들은 스코필드 박사의 이름을 팔아먹으며 국민 혈세인 보훈처가 송금해준 그 돈으로 월급쟁이까지 고용하고 태평양을 수시로 넘나들며 탕진하고 있다. 물론 총영사의 비호 없이는 불가능하다.
동상건립을 최초로 계획했던 필자의 입장에서는 솔직한 말로 누가 어떻게 세우던 동상만 세워지면 된다고 애써 자위하기도 했다. 단 그 분에게 누가 안 되는, 동상의 크고 작은 규모가 문제가 아니라 은혜를 아는 민족이라는 차원에서 또 그분의 생애를 참작해서라도 조용하게 말썽 없이 기념비적인 동상만 세운다면 뭐가 부족해 오늘 이 같은 장문을 토로하겠는가? 이렇게 말썽을 부리며 한-카 양국정부를 속이며 심지어 모처럼 찾아오는 모국대통령을 역모현장에 끌어드리려 드는 역모를 총영사와 함께 짝퉁들은 겁없이 진행한다.
그래서 시기적으로 대통령의 방문을 앞둔 이 시점에 여론화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는 판단에서 대통령을 함정에 빠트리려는 총영사와 역모꾼들의 정체를 폭로하는 진언이다.
이 나라 주류언론에도 물론 여론화하려고 노력중이다. G20를 얼마 남기지 않은 이 중차대한 시점에 필자라고 조국의 얼굴에 먹칠하는 일을 굳이 들춰내고 싶겠는가? 이 나라 주류언론에도 알려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기에 그렇다. 그리고 토론토에 이미 들어와 있는 대통령 의전단과 경호팀 그리고 각계 관련 책임자들이 동상제막식이라며 토론토동물원 한구석에 대통령을 내세우려는 황당하고 위험한 사기성 농후한 역사적 역모를 사전에 막아주는데 일조하기를 강력히 촉구한다. 2010년 6월 2일. <738/2010-06-02>
***********************************************************************
스코필드 박사
석호필이란 한국이름으로 부르기도 하는 ‘스코필드’ 박사는 영문 이름을 한국식으로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부르게 되어 화제가 되고 있는 스코필드(Frank W. Schofield 1888~1970.4.12)박사의 한국이름이다.
그는 기미년 3월 1일 대한민국의 민족운동이자 힘없는 백성들이 나라를 강점하고 있던 일제에게 무력으로 대항했던 그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한사람의 독립투사였고 민족의 대표였다.
’34번째 독립운동가’로 꼽히는 스코필드 박사는 1916년 세균학 전문 의료선교사를 자원해 한국 땅을 밟았다. 그는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에서 세균학 및 위생학을 가르치면서 이상재 이갑성 오세창 등 독립 운동가들과 교류해 3,1운동에 적극 참가했다. 그는 탑골공원에서 만세운동을 펼치고 있는 민중과 일제의 만행을 사진으로 찍어 해외에 알렸다.
유관순 등이 갇혀 있던 서대문형무소를 직접 방문하기도 한 그는 이듬해 3,1운동 목격담인 ‘끌 수 없는 불꽃’을 해외에서 출판하려다 출국 직전 암살당 할 뻔했다.
그는 카메라와 펜으로 무장하고 한국의 독립과 일제 강점기의 만행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쳤다. 1920년 조선총독부 당국에 의해 강제출국을 당할 때도 총독에게 청하여 옥고(獄苦)를 겪고 있는 이상재(李商在), 이갑성(李甲成), 오세창(吳世昌) 등 독립지사를 일일이 면회하고 격려했다고 한다.
강제 추방된 그는 캐나다로 돌아간 뒤 한국 상황을 알리며 1955년까지 토론토 병원에서 일했다. 해방 후 다시 한국을 찾은 그는 1969년 한국에 영구 귀국, 서울대 수의대에서 강의하면서 사비를 털어 장학금으로 쾌척하는 등 후학을 위해 많은 헌신을 했다.
스코필드 박사는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최초로 묻힌 유일한 외국인이다. 그는 고아들을 돌보고 독재 정권에도 항거했으며 1970년 지갑과 여권만을 유품으로 남긴 채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 정부는 그에게 대한민국 문화훈장(1960)과 건국훈장 독립장(1968)을 추서했다.

Top